지난 시즌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는 말은 명불허전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연극의 재미는 소극장 무대의 한계를 깨고 우리 주변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들이 쉴새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모텔 특유의 일회적 관계성을 새끼줄 꼬듯이 잘 엮었다는 데 있다.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신문지를 데스크에 떡 치듯이 던져놓고 내빼는 신문배달원을 보는 순간에 관객들의 긴장감은 스스르 풀려나가 바로 ‘웃음모드’로 급전환한다.
모두 해서 여섯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연극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려면 배우들의 자질과 열정이 없으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로비>의 성공은 배우들의 역량과 순발력을 관객들이 인정한 것이다.
<미스터 로비> 시즌1부터 무대에 서 자연스럽고 관객의 반응과 호흡할 줄 아는 배우 맹주영만 하더라도 철가방, 게이 패션디자이너, 전라도 쌩양아치 도박꾼, 현상수배범, 뇌물에 익숙한 119요원, 불륜남으로 숨가쁘게 변신하며 무대가 터지라고 누빈다.
변신이 완벽해서 잠깐 있다 맹주영이 다른 역할을 하고 나오면 저 사람이 아까 그 깡패놈이었냐고 되물을 정도. 배우 맹주영만 그런 게 아니다.
특히 사장부인 손미자, 다방레지 미스박, 애기보살, 여중생 등의 역을 번갈아 맡았던 박성연 배우의 파워는 대단했다. 박성연 연기의 특징은 천연덕스러움에 있다. 관객의 몸을 휘감는 듯한 연기력을 과시, 관객의 찬사를 많이 받았다.
또 체신머리라곤 고성능 확대경을 들이밀고 찾아보아도 아니 보이는 모텔 사장 역의 이일구는 어떤가. 여자와의 섹스와 돈 밖에 모르는 공처가에서 바람난 유부녀가 공들인 ‘불량 섹스머신’으로 길러져 모텔 출입을 화장실 가듯 하다가 섹스촉진용 천장거울이 머리통에 떨어져 죽다 살아나는 기막힌 배역만 두루 맡았다.
전형적인 사기꾼이자 회피성 면피성 변명성 발언의 달인으로 허영기 많은 여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오정필 역의 안상우는 광기에 찬 무소속 대통령 후보, 맹인 거지로 숨가쁘게 둔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하나의 캐릭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모텔 데스키지기 김봉수 역을 맡은 정청민 뿐이다.
김봉수는 90분 동안 이 연극에서 벌어지는 온갖 웃지 못할 사건의 목격자이면서 사건 중심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것은 소심하지만 성실하게 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뽕수’의 눈에만 ‘선녀’로 보이는 모텔 사장의 딸 때문이다.
‘적금만기’만 되면 서연에게 프로포즈하겠다는 김봉수는 어느 날 난데없이 출현한 겉만 멀쩡하게 생긴 자칭 시인이면서 때때로 국세청 직원도 되는 오정필이 나타나면서 핑크빛 러브는 키스 한 번 못해 보고 박살날 불안에 좌불안석이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텔의 딸 이서연은 자칭 시인 오정필를 보는 순간 특유의 허영기가 발동, 예술가와의 로맨스에 후끈 몸이 단다. 이서연과 오정필, 본질적으로 다른 욕망의 평행선을 달리는 이 두 사람 사이로 다방레지 미스박이 들이닥친다.
미스박과 오정필은 과거에 죽고 못 살던 사이였다가 자식한테 들려주기 힘든 사연으로 헤어진 사이. 갈수록 꼬여가는 복잡다단한 관계.
한국에선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교과서엔 실리지 않은 법칙이 있듯이 미스박에게 미쳐 있는 이일구 사장은 외동딸의 애인 오정필과 연적 관계가 돼버리고 마는 기막힌 현실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인물들이 얼키고 설켜 돌아가는 우리의 얼굴을 닮은 '모텔 코리아나'에서는 양념 역할을 하는 부수적인 캐릭터들도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린다. 신문지를 데스크에 내팽기치듯이 던지고 음울하게 사라지는 궁둥이가 쓸쓸해 보이는 신문배달원, 동자신보다 더 어려보이는 애기보살에 마침내 저 불멸의 대사는 관객의 꽁꽁 닫힌 마음을 헤풀어놓는다. “…도를 아십니까?”
어디 이뿐이랴! 모텔에 왔다가 자기 몽타쥬가 찍힌 수배전단을 뜯어가는 수배자부터 원조교제에 미쳐서 간과 쓸개를 다 내놓을 수밖에 없는 쓸쓸한 노신사, 약 먹고 자살하겠다며 빈 방을 애타게 원하는 비련의 여인, 도박빚 대신 콩팥을 내놓으라고 으름장 치는 장기투숙 전문도박꾼에서 바람난 아내와 함께 호텔을 불태워버리겠다는 방화범까지 등장한다.
뜨내기성을 배제할 수 없는 모텔이란 무대에 우리 이웃들의 이면을 한데 버무려놓은 듯한 <미스터 로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연출가는 잽을 던지듯이 찍어 재현해 보인다.
일회성의 순간 망으로 얽히고 설킨 '모텔 코리아나'에서 정신없이 연쇄웃음을 터지게 하는 희극적 사건과 인간들을 보면서 관객들이 마음껏 웃으며 동감할 수 있는 것은 무대 밖 현실에서 느끼는 관계의 불안이란 실존적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웃음작열, 웃음아이콘 <악어컴퍼니>가 기획한, 이희준 작 김운기 연출의 <미스터 로비 시즌2>는 대학로 '허밍스아트홀'에서 내년 3월2일까지 장기상연된다.
〈미스터 로비 시즌2〉, 웃음의 돌풍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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