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에 대한 단상
18집은 한국전쟁 전후사의 인물과 민중을 그려내고 있다.
이시영시인의 표현대로 한국전쟁은 민족 대혼란이지만 대이동의 가장 폭발적 사건이다. 이시영, 『시인 고은과 이시영 대담』 창비 웹매거진, 2002년 2월호
북녘의 장정과 남녘의 아낙이 한 가정을 이루는 대이동과 대통합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표면적인 뒤엉킴 외에 이념의 뒤엉킴, 내부와 외세의 뒤엉킴의 1950년에 등장하는 고은의 만인들은 이렇게 살았다.
감자 꽃이 피었다
어제까지
개성은 대한민국
오늘 아침까지도
개성은 대한민국
비온 뒤
만월대 풀섶 나비떼 온데간데 없다
1950년 6월 26일 낮
개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계철규 옹은 남아 있었다
큰아들 창희는
해주 외숙 만나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 아들 창섭은
막 대한민국 백선엽 사단 신병으로 후퇴했다
어쩔거나
달 뜨는 밤 자랑스럽던 7천평 삼포도 감자밭도 아무 소용없다. 고은, 『만인보18집』, 창비사 2004, 13p「개성노인」 전문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시다. 개성노인 계옹의 대공황은 당시 한민족 대다수의 충격이었고 정신 대공황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역사의 축을 이끄는 당대세력들의 우왕좌왕은 그야말로 단편 블랙코미디의 연속이다. 시적 소재가 되는 군상(群像)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는 시인의 의도가 바로 역사의 해학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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