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마을에서 제일 처음 시작한 ‘아동논술공부방’
민통선마을에서 제일 처음 시작한 ‘아동논술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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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형! 낮은 곳을 보십시오 3

신학교 3학년에 다시 편입했으며 신학대학원도 다녔습니다. 특히 신학교 때는 잃어버린 나의 영성을 찾고자 노력했었습니다. 자식뻘 되는 <과>급우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놀았습니다.

등록금 걱정을 하며 라면도 먹고 김치찌개도 함께 먹었습니다. 그 모습은, 한때 일간신문사에서 논설위원을 지냈던 권위도, 방송국에서 시사만평을 하던 방송인도, 재야문화운동을 하던 관록있었던 저항시인도 아닌, 초라한 한 신학생에 불과했지요.

동생 같은 교수들에게서 수업을 들으며 나는<내 자신>을 버리려 애썼습니다. 모욕과, 괄시는 신학생시절에도 있었습니다. 총무과에서 젊은 아가씨한테서 등록금 독촉을 받으며 얼굴을 붉힌 적도 있었으며,



출석일 수 때문에 젊은 여교수에게서 심한 창피를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3~4년의 세월이 지난 뒤 나는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고, 나는 이 민통선마을에서 <빈민목회>를 자원하였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에 나를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는 노무현대통령이 후보시절, 민주당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만난 아내로부터 내가 목사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잠깐 회상에 젖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사람들은 나의 변신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13대 초선 국회의원시절에 <삼청교육대정화작전> 출판기념회에 축사를 해주었을 뿐 아니라, 부산에서 재야운동을 같이 하던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신학을 전공한 신학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당연한 목회 길을 두고 놀라워 한 것은 그동안 내가 정치권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고 사람들은 나도 그 길을 가리라 예측했던 까닭이었습니다.

나는 결국에야 모든 것을 버리고 이 길로 왔습니다. 이 길까지 오는데 꼭 2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제가 민통선마을에서 제일 처음 시작한 것이 아동논술공부방이었습니다. 민통선 아동들은 방과 후에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새벽이를 비롯한 서너명의 아이들을 모아 나의 신문사 시절 경험을 되살려 논술을 가르쳤고 밥도 함께 해먹었습니다. 없을 때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이제 그들과 울고 웃으며 공부한 지 3년여의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이 공부방엔 서른 명에 가까운 아동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우리 공부방 소식을 듣고 민통선 주변 이웃마을에서 조차 아이들이 계속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이중엔 결식아동도 있고 한 부모(편모,편부)가정 자녀들로서 저소득층 자녀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이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영화고 보고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하고 체험, 현장 학습도 다닙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예수님만큼이나 사랑합니다. 내 목회의 전부일 정도로 이 아이들이 소중합니다. 그리고 저는 놀랍게도 집착과 패기에 일그러져있던 모습에서 벗어나 내 생애가 지금보다 행복한 때가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물질에 허덕여도 모든 것이 충족되지 않아도 지금보다 행복한 때가 없습니다.

P형!

<버리십시오. 집착을 끊고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하십시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시간과 함께 행복은 분명히 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는 것만큼 그 절망을 포기하시고 다시한번 더 낮은 곳으로 눈길을 주십시오. 낮은 곳에는 분명히 희망이 있습니다. 집착을 포기할 때 낮은 곳도 자세히 보이는 것이지요.

P형!

지금까지 지루하게도 제 과거를 예로 들었습니다. 제 과거 속에서 P형의 갈 길도 도움 받았으면 합니다.

저는 제 과거 속에서 사기꾼/깡패/빨갱이와 같은 저주를 들으며 생을 이어왔습니다. 그 땐 이 소리들이 너무도 억울했지만 지금은 이 소리들마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주는 저주까지 사랑하게 될 때 내겐 행복이 됨을 깨닫습니다.

민통선의 바람이 차갑습니다. 지금은 바람이 이처럼 차지만 두세 달이 지나면 이 민통선에도 분명히 봄이 오고 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만개할 것입니다. P형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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