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의 역사, 역사의 해학
해학의 역사, 역사의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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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에 대한 단상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J 토인비는 “역사는 관념상으로는 있을 수 있어도, 실제로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역사와 관계를 갖는 것은 역사의 서술을 통해서이다”라고 했다.

고은의 시적 역사서술은 곧 평면적 혹은 수직적 역사 서술을 뒤집는다. 그것은 바로 역사 자체가 지니는 해학성, 아이러니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었다.

38선은 수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듯
개미들도 바빴다
들쥐들도 바빴다

1950년 3월
이승만계 독신 여걸 임영신은
국제정보 민완의 정보원 김기희(金琪熙)를 불렀다
현금 60만원을 주어
38선 이북 동태를 파악해라 했다

(중략)

김기희 보고는 놀라웠다
탱크 야포 그리고 대병력이 이동배치중
임영신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중략)

신성모는 시큰둥 딴전이었다

(중략)

임영신은 대통령을 다시 찾았다
이승만은 짜증을 냈다
그럼 네가 국방장관해 봐

(중략)

임영신은 한마디 남겼다
제 말 안 들어 후회할 날 있을 것입니다
임영신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조야에 국방 지원을 호소했다
1950년 6월
38선이 터졌다

1951년
신성모는 김기희를 총살했다
죄목도 없다
군재 신고문서도 없다
훈장은커녕 총살이었다
국제 스파이는 국내 스파이로 죽었다

고은, 『만인보18집』, 창비사 2004, 16p
「김기희 」, 부분



역사 중심이라고 믿었던 당대 인물들의 판단이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 해학적으로 보여준 시다. 그리고 그들의 무지는 민중들의 침묵을 분노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이승만 임영신 신성모 김기희는 1950년 당시 모두 미국을 등에 업고 권력을 누리던 이른 바 한 패거리 인물들이다. 시인은 이들의 판단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해학성을 시로 노래하는 것이다.

(전략)

김종원은
평양시민의 피난을 엄금했다
작전상 일시후퇴니 안심하라
후퇴하거나
피난 떠나면 총살이다

이 포고문을 선우휘에게 인쇄 배포하라 했다
거절했다
이 새끼가
이 새끼가 주고 싶으냐
이 자식아
이 자식아
평양시민 놔두고 너만 살려는냐
두 장교는 으르렁댔다

(중략)
선우휘 지휘로
강물 위 30미터 공중에서
4시간 작업으로 가교가 걸렸다

(중략)

이 다리는
누구의 강제도 없이
인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협력으로 고쳐져
자유를 찾아 건너가는
‘자유의 다리’입니다
그 평양시민 도강 광경의 사진이 뒷날 남았다

선우휘야 말로 6.25사변의 ‘인간’이었다
수복 뒤
그는 작가가 되었다
‘인간’이었다 고은, 『만인보18집』, 창비사 2004, 60p

- 「선우휘」, 부분

침착과 예감과 우수의 청춘
1924년생 본명 이승진
(중략)
토오꾜오 중앙대학생
학병피해
조선으로 돌아와 숨어 있었다 스물한 살이었다

1945년 해방직후 강영애와 결혼했다
장인 강문석은 일제말 항일투사
드물게 제주도에서
서울의 대학에 들어 간 사람

1946년 이승진은 제주도 모슬포에 내려와
대정중학 교사로 부임
공민과 역사를 가르쳤다
1948년 4.3사태 중심에서
이승진은 김달삼이 되었다

(중략)
그의 미남은 여성의 도구가 아니라
바람 치는 혁명의 도구였다
4.3사태 뒤
황해도 해주로 갔다
(중략)
6. 25사변 직전 태백산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4.3 사태와 함께
그의 행방은 아무도 몰랐다
(중략)
토벌군의 사기 올리려고
김달삼이 사살되었다고 발표했다
허위였다
오직 김익렬 사령관만이 확인된 바없다 했다

동지들에게 그는 죽지 않았다
전설이 되어
지리산지구에서는
태백산 지구에 있다
태백산지구에서는
지리산지구에 살아 있다 했다 고은, 『만인보18집』, 창비사 2004, 83p
「김달삼」, 부분

선우휘와 김달삼은 남과 북의 입장에서 전투했지만 그들은 아무 편도 아니었다. 선우휘는 자유의 다리를 놓았고, 김달삼은 양 진영의 사기를 살리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했다. 이념의 굴레는 처절했지만 초라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쟁의 가학성과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작은 이미지다. 여기서 시인은 역사의 해학을 노래하고 있다. 평양 대동강 가설다리의 이미지나 전설로 존재해야만 했던 엘리트 중학교사의 죽음은 시인의 가슴에는 그저 초라한 역사의 파편으로 보였다. 시의 해학성과 역사의 해학성이 일치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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