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의 피리 부는 마술사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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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네미 마을의 기억 3



<금은화>

6월 중순. 해가 땅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 절후지만 동쪽 바닷가 외진 마을은 일찍이 그늘이 진다.

지금은 폐도가 된 국도로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나갔다가 집 언덕으로 올라서고 있는데 감미로운 향기가 콧속에 스며든다.

대체 어디서 놀라운 향기가 피어나는 것일까? 나는 엷은 땀에 젖은 몸으로 자전거를 받쳐놓고 폐부 가득 숨을 들이마시며 사방을 둘러본다.

눈앞에는 도랑이 있고, 도랑 너머에는 소루장이, 쑥부쟁이, 매운냉이, 제비꽃, 한삼덩굴, 칼퀴덩굴, 새콩줄기들이 어우려져 있는데, 거기 어디서 그 향기가 피어난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향기는 갯내와 고기냄새가 배어있는 6월 저녁 마을을 일시에 꿈속 같은 마을로 만든다.

나는 향기의 피리를 부는 마술사에 홀린 아이처럼 해지는 줄도 모르고 코를 벌름거리며 한동안 그 향기에 취하다가 누옥 서재까지 그 냄새를 머금고 들어와 알 수 없는 설레임으로 잠이 들었다.

이튼날 아침. 어제 저녁 여향을 잊지 못해 눈을 뜨는 대로 향기가 피어나던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밝은 아침, 옷소매를 긁는 한삼덩굴을 헤치고 도랑을 넘어가니 가느다란 하얀 은사실 수술을 물고 있는 가녀린 흰 꽃들이 긴 덤불에 수줍은 듯 맺혀있다.

향기는 거기서 피어나고 있었다. 꽃핀 덩굴 가까이 다가가 꽃덩굴을 살피는데 그것이 놀랍게도 금은화, 인동덩굴이다.

지난 가을 그 덩굴에 흑청색 동그란 종자가 맺힌 것이 아름다워 겨울 내내 지지 않던 푸른 잎과 더불어 그 풀줄기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덩굴이 이렇게 향기를 피운다.

인동꽃 향기는 이상하게도 나를 사춘기적 소년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갓 피어날 때는 흰빛이지만 이틀만 지나면 금빛으로 바뀌는 인동꽃!

6월 아침 나는 첫사랑의 달콤한 향기에 취한 소년처럼 아련한 행복에 젖는다. 이 세상 어느 금은 보화가 인동덩굴 향기처럼 영원할까? 인동꽃 향기를 맡은 행복이 사리 때의 바다처럼 내 가슴을 한없이 부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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