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고독감 큰 신비로운 광선 따라
알 수 없는 고독감 큰 신비로운 광선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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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젊음의 광장 3



"박 선생님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네 그냥 조금 허위적거리면서 지냈습니다. 홍 선생은 줄곧 서울에 계셨나요?"
"그럼요. 서울에서 꼼짝을 않았어요."

"좀 어디든 다녀오시질 않으시구. 난 사실 한 2주 가량 미국엘 다녀왔습니다."
"무슨 볼일이 있으셨던 모양이죠?"
"그냥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쓸쓸히 웃었다. 그의 웃음은 신비로운 백발의 광채와 결합되어 알 수 없는 고독감을 풍겼다. 그는 백발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얼굴의 구석구석이 잘 다듬어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결코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으나, 섬세하고 깨끗한 얼굴이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있고 난 후 그의 사생활이 어떤 누구나가 다소간의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으나 본인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간만에 만났기에 반가웠고, 그래서 동석을 했지만 역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였다.

한국의 대학사회란 것이 이렇게 조금은 묘한 데가 있었다. 자유롭고 한껏 이상과 진리의 욕망으로 차 있어 구성원들 상호간에 깊은 인간적인 우애가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도 적지 않다. 더구나 전공학과가 다르다거나, 종합대학의 경우 단과대학 별로 컴퍼스가 다를 때는 동료의식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홍영희 선생은 자신의 연구실로 다시금 내려왔다. 고요와 햇볕이, 가느다란 먼지처럼 가라앉은 방이 자신을 맞아 주었다. 인터폰을 눌러 학과 사무실의 조교에서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커피를 옅게 타서 블랙으로 마셨다. 학과의 선생들은 오후에 얼굴을 내밀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을 기다린다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책상 위와 서가 속의 먼지를 털어내면서 책을 정리했다. 이제 다시 한 학기가 시작됐으니, 이들 책과 씨름하면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 새삼스럽게 주연식 교수가 소포로 보내준 선물이 시선을 끌었다. 왠지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자기를 잊지 않고 이렇게 근질기게 선물을 보내주는 그가 조금은 고마운 것이다.

주연식이가 듬직한 인간미와 완숙한 인격을 갖추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이런 호의가 결코 싫은 것은 아니었다. 대략 주변을 정리해 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다시금 강물 위에 반사된 광선이 연구실 유리창을 뚫고 자신의 책상 위로 번지고 있음을 느꼈다. 알 수 없는 고독감이 큰 신비로운 광선을 따라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다.

자신이 고독감을 느낄 이유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이 삶을 꾸려가기 위한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구조로 보아 자신은 고독을 느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고독감은 그렇게 절실하달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폐부를 찌를 듯한 고독감은 절대 아닌 듯했다. 순간 순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고독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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