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삼성맨 특별인터뷰 1. 김병윤의 작심 토로
전직 삼성맨 특별인터뷰 1. 김병윤의 작심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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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 계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

삼성 관련 비리 의혹이 연일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삼성그룹 내부에서조차 검찰 수사와 이어질 특별검사 수사로 파장이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공공연하다. 아직까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정황을 뒷받침하는 ‘전직 삼성맨’들의 폭로가 줄을 잇고 있어 의혹은 자꾸만 부풀려지는 형국이다. 그럼 전직 삼성맨들의 삼성 비리 의혹이 봇물처럼 계속 터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호탄을 쏘아 올린 김용철 변호사(삼성그룹 전 법무팀장)를 비롯해 이어지는 폭로 당사자들 모두가 한결같이 ‘삼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 않으면 삼성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속사정을 책으로 엮어 내고 있는 김병윤(50·두레스경영연구소장)씨도 이런 전직 삼성맨 중 하나다. <시사신문>은 지난 12월5일 그를 직접 만나 내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사, 재무 쥐고 흔드는 가신이 큰 문제다”
“주총 때 주총꾼 차출되어 차명 주식 봤다”

김병윤씨는 1984년 5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2003년 7월까지 삼성에 몸담았다. 주로 해외영업 부서에서 근무했던 그는 ‘삼성전자 전략마케팅 그룹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당시 윤종용 사장(현 부회장), 최도석 전무(현 사장) 등이 매월 주재하는 회의에 정식멤버로 참석했을 정도로 삼성 내부 사정에 밝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 ‘전직 삼성맨’김병윤씨는 검찰이 수사중인 ‘차명계좌 비자금’의혹에 대해 자신의 경험담까지 예로 들며 ‘사실’임을 주장했다. <사진/맹철영 기자>
이런 그가 자신이 몸담았던 삼성을 향해 ‘비분강개’하고 있다. 때문에 저술한 책도 여러 권이다. 처음에는 회사 생활을 하며 경험한 것을 공유하자는 뜻에서 펜을 잡았지만 변화하지 않는 삼성을 보며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자고 마음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처음 삼성의 내부 문제를 공론화 한 책이 ‘삼성 신화 아직 멀었다’(한림원·2005년)이다. 내일의 신화를 위해 삼성의 현실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다음은 ‘고르디우스의 매듭’(두레스·2007년)이란 책이다. 이 역시 삼성의 문제점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빗대며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복잡한 문제일수록 근원을 찾아내 근본부터 차근차근 해결해야 한다는 그 나름의 해석을 담았다.

김씨가 두 권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꼬집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삼성의 가신’ 문제다. 그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불거져 나왔지만,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출발은 삼성의 소위 ‘가신집단’이 경영권을 가지고 흔드는 게 제일 큰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가신집단이 이건희 회장의 눈과 귀를 막고 그룹 인사나 재무 등을 쥐고 흔든다는 격한 표현까지 썼다.

게다가 검찰 수사가 한창인 ‘차명 계좌 의혹’, ‘비자금 의혹’에 대해서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까지 예로 들면서 “안에 (삼성 내부)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삼성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99%의 사람들이 1%의 가신들로 인해 잘못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공론화를 결심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삼성의 문제점 꼬집는 책을 계속 발간하는 이유는.

▲2003년 7월 삼성에서 퇴직하고 미국으로 1년 반 동안 공부를 하러 갔다. 처음에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것을 공유하자는 생각에 마케팅, 협상기술 등을 담은 책을 쓰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신 문제’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삼성에 근무하며 잘못했던 부분을 지적하고 삼성이 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는 안된다’, ‘삼성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느꼈다. 시스템이 잘못된 기업이 60년 이상 가는 걸 못 봤다.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하고, 재벌이 변해야 한다. 조직도 고인물이 썩지 않게 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 같아 경종을 울리려 했다.

-그럼 삼성의 가장 큰 문제를 무엇이라 보나.

▲경영권을 가져야 할 사람이 갖지 못하고 소위 ‘가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잡고 흔드는 게 문제다. 경영권을 가져야 할 사람이란 삼성을 운영하는 주체가 누구냐를 볼 때 분명 이건희 회장은 아니다. 거의 사무실에 나오질 않고, 위임을 하는 분위기다. 그럼 나오질 않더라도 밑에서 일어나는 일이 제대로 보고가 되던지, 그래야 모두 파악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게 아닐 경우 각 계열사 수뇌부, 예를 들어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항을 파악하고 자신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견제가 이뤄지고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는 것이다.

인사나 재무나 등을 전략기획실 이학수 부회장, 그쪽 가신집단들이 가지고 흔든다. 차명 계좌 문제만 봐도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나도 그것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이건희 회장이 모르고 있었다면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다. 책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런 병폐가 나타날 정도니까, 그 사람들이 썩었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도 이런 것을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신 문화가 삼성의 조직 문화라는 얘기인가.

▲그건 아니다. 현장에 근무하다 보니 전략기획실을 떼어놓고 보면 삼성은 그런 문화가 아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열심히 한다. 가신들이 사주를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그런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학수 부회장 등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게 문제다.

-차명 계좌 얘기를 구체적으로 하면.

▲차명 계좌와 차명 주식계좌로 나눠서 봐야 한다. 차명 계좌는 비자금으로 해서 현금을 집안(그룹 혹은 오너 일가)에서 쓰기 위해 관리하는 것이다. 차명 주식계좌는 탈세와 경영권 세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운영된다고 본다. 실제 나도 주총 때 주총꾼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가 98년인데, 참석해 보니 4천만 주 정도가 차명 계좌로 관리되고 있었다. 감춰져 있는 게 몇 배인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탈세이고, 불법이다. 경영권 승계할 때 조용히 하려니 저런 식으로 관리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태평로빌딩)26층인가 27층인가 ‘안가’ 비슷하게 만들어 놨다고 하는데, 나도 몇 층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곳을 가서 주총 때 역할분담을 했다. 전략기획실(당시 구조본)에서 나와서 ‘너는 뭐라고 말해야 한다’는 식으로 지시한다. 이학수 부회장이 직접 나오지는 않았지만 한번인가 직접 얼굴을 비쳤던 듯하다. 당시 12명인가 차출해서 4천만 주를 나눠줬다. 4천만 주에 대한 계좌는 알 수 없다. (김용철이 얘기했듯) 1천개 정도 된다는 거,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계열사들의 비자금 의혹을 어떻게 보나.

▲평상시에 항상 있었다. 그런 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내가 삼성인력개발원에 있을 때 공사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으로 공사가 결정 났다. 당시 팀장으로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견적을 최소한 두 세 곳 정도에서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했더니 고려 대상이 아니다 했다. 그냥 진행하고 나중에 공사대금 몇 십억 원인가 올라갔다. 조그만 것 작업하는 것도 몇 십억 원 올라가는데 필요에 의해서 마음껏 조정할 수 있다.

▲ 김씨는 삼성의 비자금 창구로 홍콩, 런던, 뉴욕 현지법인들 지목했다. 사실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실제 삼성에서 돈(비자금) 크게 관리하는 곳이 홍콩, 런던, 뉴욕 쪽이다. 거기가 큰 법인들이 있다. 특히 홍콩 쪽이 가장 큰 창구다. 세 군데는 지금 (얘기가) 따로 나오질 않는다. 충성을 맹세한 특정 사람을 보내 그곳을 관리한다. 각 계열사에서 대금 부풀리는 식으로 차액 모두 모이는 것이다. 해외에서 필요할 때 쓰는 돈들이고, 차입금 형태로 한국에 갖고 들어오기도 한다. 저런 게 명확히 밝혀지면 삼성의 경영성과는 더 좋게 나타나지 않을까 한다.

-이번 사태의 연장선에서 ‘경제 위기론’이 나온다. 어떻게 보나.

▲내 책에도 적었지만 본질은 ‘반기업 정서’가 아니다. ‘반기업인 정서’다. 삼성을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삼성에서 그런 쪽으로 유도할 뿐이다. 그런 분위기로 만드는 (삼성의) 위기 대처 방안이다. 언론들이 조직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예전 데모하는 장면만 찍어 보여주면 우리 사회 전체가 데모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생업에 종사했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삼성한테는 이번이 굉장히 좋은 기회다. 또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겠다’하고 바꾸면 삼성은 크게 기여하는 회사로 남고 발전할 수 있다. ‘적당하게 풀어보겠다’하면 삼성은 망하게 되어 있다. 그게 안타깝다.

-삼성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건가.

(편법 승계) 한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맞추다 보니 불법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조용히 넘어갈 것인데, 잔머리 쓰다 폭발력 있게 가게 된 것이다. 해결은 어렵지 않다. 이건희 회장이 나와서 ‘이렇게까지 심한 줄 몰랐는데 잘못한 것 같다’ 먼저 고백하고 TFT팀 만들어 (내부를) 투명하게 만들면 된다. 전략기획실도 불법이나 편법 쓰지 않고 그룹이라는 공통성을 갖고 역할분담만 하는 선에서 정말 축소된 기능을 갖고 운영하면 좋아진다.

김병윤씨의 주장은 그의 주장일 뿐이다. 김용철 변호사처럼 물증을 들고 나온 것도 아니다. 삼성에선 그의 책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7월에 발간됐을 당시 “답변할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주장이 나온 이후 맥을 같이 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특히 ‘삼성이 투명하게 변해야 한다’는 바람은 상통한다. 이제 여러 의혹의 진실은 수사 주체의 몫으로 남겨졌다. 다만 삼성도 이번 사태를 통해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내부 점검의 계기로 삼아 보는 것이 시간낭비는 아닐 듯 하다. 우리나라 GDP의 18%를 차지하는 삼성이라면 더 이상 ‘삼성만의 삼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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