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타임머신 속으로〉간 큰 처녀의 대담한 장난
〈사건 타임머신 속으로〉간 큰 처녀의 대담한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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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기는 속였는데 경찰은 못 속였네!

1979년 포항. 결혼을 앞두고 함을 맞아들일 생각에 고민에 빠져 있던 신부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함잡이들의 횡포는 신문에 날 정도로 심각했다. 이를 보다 못한 신부의 여동생은 언니를 도와줄 묘안을 떠올리게 되고 드디어 함이 들어오던 날 평소 장난이 심했던 그녀의 재치로 무사히 함을 들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장난 때문에 그녀는 다음날 경찰서 신세를 져야 했다. 함잡이들을 골려주려고 그녀가 꾸민 장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경찰서로 연행된 그녀의 운명은 … 사건을 재구성했다.

1979년 경북 포항의 한 가정집 맏사위가 인사 하러 온 경사스러운 날, 서먹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분위기 메이커 전옥석(22)씨가 입을 열었다.

함들이기 걱정마!

“형부, 남대문 열렸습니더?”
첫 인상부터 이게 왠 망신인가 싶어 얼른 바지를 확인한 예비사위는 멀쩡한 바지 지퍼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버렸고 어린 처제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연신 웃으며 예비 형부를 놀려댔다.

“형부, 얼굴이 그렇게 빨개지니 억수르 귀엽십더.”

장난끼 많은 22살 처자, 전옥석씨. 그녀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대학에서 비서로 일하는 맹렬여성이었다. 당시 전씨가 일하던 대학 사무실에 복사기가 새로 들어오고 복사기는 대학 사무실에서 인기만점이었다.

“이게 복사기라는 거가?”
“그래, 이것만 있으면 10장이고 1백장이고 똑같이 복사된다 아이가.”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씨의 눈은 호기심으로 불타올랐다. 호기심 많은 전씨에게 복사기의 등장은 새로운 놀이감의 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씨 언니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날 전씨의 언니는 그녀에게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함 받을 생각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내 친구는 함받는 날 대판 싸우고 파혼했다 하더라.”
“함값도 장난이 아니데이. 40~50만원은 족히 든단다.”
“내 석달치 월급 아이가. 도대체 함은 와 하는 거고?”
“니 형부 친구들 장난이 아니라 카던데 우야노.”
“걱정마라 내한테 기똥찬 방법이 있다 아이가.”

다음날 저녁 드디어 함꾼들이 그녀의 집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역시 듣던대로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힘깨나 쓴다는 장정은 버팅기는 말, 말빨 쎈 친구는 마부로 배치해 마음가짐을 가다듬었다. 이미 전적까지 화려해 두려울 게 없는 친구들이었다.

이들의 전적을 살펴보면 꼭지돌게 술 마시고, 차린 상에 침 뱉고, 비윗장 거슬리면 전봇대에 올라가 함 걸어놓고 삼십육계 줄랑 치기 일쑤요. 함 값으로 내민 봉투 슬쩍 보고 성 안차면 시궁창에 함을 빠뜨리기도 하는 악명 높은 그들이었다. 얼큰하게 오른 취기에 객기까지 보태지니 이들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 그들의 앞에 나타난 신부측 친구들. 그 면모 화려하니 미인계 앞에서 약한 것이 남자아니던가.
“먼 길 오느라 힘드셨지요. 목부터 축이세요.”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들을 넋빼놓고 바라보던 함꾼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노골적으로 봉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뭐 잊은거 없수? 봉투 봉투 열렸네.”
“암요~ 드려야지요.”

함 들어오는 날 이것이 빠질쏘냐. 전씨의 두번째 작전, 두둑한 함 값으로 유혹하기. 전씨는 5백원짜리 지폐로 손님들 행차하실 황금길을 만들고 대문까지 쭉 뚫린 탄탄대로 끝에서 어여 오라고 손짓했다.

통화위조 사범이라니?

함꾼 전적이 아무리 화려해도 이렇게 많은 돈으로 그들을 유혹했던 적은 없었다.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하는 생각에 함꾼들은 벌린 입 다물지 못하고 돈 길을 따라 일사천리 행군을 시작했다.

돈을 따라 대문 앞까지 홀린듯 걸어온 함진아비는 “힘이 들어 더 이상 못가겠다”며 마지막 버팅기기에 들어갔다.

“아이고~ 힘들어서 더 이상 못가겠네. 누가 나 좀 업고 가야것소.”

우리의 전씨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장정을 등에 업어 집안으로 들이는 괴력을 발휘했다. 함 값을 두둑히 받아 기분 좋은 함꾼들도 별 거부반응 없이 집으로 따라들어왔다. 너무 쉽게 무너진 것 같은 생각이 찝찝하기도 했지만 난생 처음 받아본 두둑한 함 값에 기분이 좋아져 그 길로 바로 뒷풀이를 하러 술 집으로 향했다.

얼큰하게 취한 채 술을 마시켜 뒷풀이를 즐기고 있는 함꾼들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우리 오늘 함 값도 두둑하게 받았으니까 환상의 밤을 지내보자고.”

같은 시각 전씨는 어찌된 일인지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경찰들에게 쫓기는 꿈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징조일까. 흉흉한 꿈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지난 밤 꾼 꿈과 똑같은 일이 그녀에게 닥쳤다.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혹시 여기가 어제 함 들어온 집 맞습니까?”
“예~ 맞는데예. 무슨 일입니꺼?”
이때 경찰이 내민 것은 5백원 짜리 위조지폐 다발이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십니까? 당신을 통화지폐위조사범으로 체포합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고 전씨가 통화위조 사범이라니 가족들을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짜 돈을 만든 사람은 전옥석씨가 맞다. 함이 들어오기 전날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5백원짜리 지폐 1백여 장을 복사한 것이다. 그용도는 함 값. 행패가 심한 형부 친구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장난삼아 저지른 일이었다. 하지만 술에 취한 함꾼들은 가짜 돈인지 눈치채지 못했고 그만 술 값으로 그 돈을 내버렸다. 이를 발견한 술집 주인은 아연실색해 곧장 경찰에 신고를 한 것.

“아이, 진짜 장난으로 한겁니더.”
“이봐요~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이건 중범죕니다. 중범죄!”

사건을 일파만파로 커져 전씨는 졸지에 위조지폐 사범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경주지검으로 송치됐다. 복잡한 상황에서 치러진 언니의 결혼식에 모인 친척들과 친구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결혼식 사진이 아주 가관이었다. 다행히 검찰에서는 정상참작을 해 전씨를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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