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잠시 이번 학기에 강의해야 할 과목을 생각하고, 강의의 내용과 방법을 검토했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과목을 맡아 정성껏 강의하고, 학생들이 또 잘 따라주면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었다.
선생이란 역시 가르치는 사람이고, 그리고 잘 가르치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이다. 선생 노릇하는 사람이 가르치는 일과 연구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이미 선생이라 할 수 없으리라. 신학기에는 또 어떤 젊은이들의 얼굴이 나타날 것인가. 홍 선생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해가 바뀌면 언제나 떠나가고, 또 새로운 학생들이 나타나는 것이지만 새삼스레 기대가 되었다.
자신이 이제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기 때문일까. 가족과의 일상이 이제는 왠지 가끔가다가 풀려 버린 허리띠처럼 느슨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것이 귀하지 않다거나, 정겹지 않아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한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떤 때는 오히려 이 가족의 존재 앞에서 절벽을 느낄 때도 없지 않았다. 한 여자가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건 지아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그들을 키우면서 늙어가는 것, 그것은 가장 정형적인 삶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실 자체에 이질적인 감정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결국 인간의 운명에 대한 몸부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부부가 자식을 잉태하여 출산하고 자신들의 죽음 사이에 별다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넓고 길게 보면, 결국 인간은 자손을 출산하면 자신들은 죽어가게 마련이다. 금방 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조금 그 죽음이 유예될 뿐이지 출산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이 땅덩이 위에서 절멸하지 않고, 그 생존을 계속할 수 있다.
더더구나 이런 자손 잉태와 출산의 직접적인 모태인 여자의 경우, 자신의 임무를 다 치르고 났을 때 인생의 알 수 없는 공허감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깃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홍 선생은 오전에 잠시 다녀간 김영길이란 학생의 모습을 불현 듯 회상했다. 너무나 깔끔했고 너무나 육감적이었으며 아울러 너무나 꿈꾸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그것은 총체적으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그녀의 뇌리에 박아 놓았다. 무심코 대하고, 그리고 지나쳐 버리는 학생들과의 만남이다. 그것을 곰곰히 생각한다거나, 못잊어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학생의 경우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야들야들하면서도 투명한 듯했고, 여성적이면서도 강력한 남성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홍 선생 자신이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진반의 지도교수를 맡아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어느 틈엔가 기꺼이 김영길 학생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작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이 가슴 한 구석에서 머리를 들고 있었다.
홍 선생은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왠지 자신의 마음이 퍽 가벼워져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아무래도 자신이 새로운 서클을 지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듯했다. 게다가 그 인상적인 학생의 모습이 서너 번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이 강변 캠퍼스를 떠나 있던 자신의 마음이 이제는 지난 3개월간의 공백을 딛고 다시금 여기로 되돌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이 자신의 삶의 터전인가, 가족이 있는 서울이 자신의 진정한 삶의 터전인가 금방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강변 캠퍼스의 바람 부는 운동장에 서니 알 수 없는 감격이 가슴을 메워 왔다. 그것은 물론 격렬한 감정의 파동은 아니다. 미풍처럼 흘러가는 감격의 여린 흔들림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건, 어느 장소에서건 조금도 느껴 보지 못한 감동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