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지지 않는 역사인식과 창작인식
나누어지지 않는 역사인식과 창작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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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에 대한 단상



고은에게서 창작인식과 역사인식은 둘로 나눌 수 없다. 그것은 시인의 삶이 역사현장에서 한걸 비켜선 것이 아니라 인간투쟁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렇지만 그의 창작행위는 그저 투사의 경직된 모습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비록 1970년 새롭게 생명을 받아들인 후 삶과 문학의 일치를 추구해 왔다지만 그는 감성의 시인이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아침은 뚝새나물죽이었다 소금이 떨어졌다
오늘도 때나무 두 짐
오전에 한 짐
배가 고팠다
오후에 한 짐
배가 고팠다

십릿길에 장에 지고 간 나무 팔았다

장터국숫집 딸
그년만 보고 오면
그날 밤 수음을 했다
배가 고팠다

배고파도
꽁보리밥 먹고도
사랑은 이렇게 천박한 아픔과 함께 있어야 한다
두 홰 닭이 울어서야 멀리 나간 잠이 돌아와 선하품이 된다

숙희! 네년 때문에 나 죽는다
그런 소리 놓아두고
잠들었다
꿈속은 딴판
전주 오목대 냇둑을
둘이 지우산 받고 걸어가고 있었다
꿈속은 1.4후퇴도 모르고 중공군도 몰랐다

-고은, 『만인보18집』, 창비사 2004, 150p

「꿈」, 부분

전쟁의 와중에도 사랑은 꽃피었다. 굶주림의 척박한 가난가운데도 수음으로 달래는 사랑이 있었다. 역사는 그저 거창한 구호나 업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오히려 더 황량하다. 우리의 삶은 비록 둘로 나누어 분쟁할지라도 그 둘이 갈라진 줄도 모르고 쉼없이 왕래하는 순전한 사랑이 있다면 전쟁도 가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시인은 그 사랑이 ‘꿈’이라 하여 더욱 절망스럽게 했지만 결국 그 꿈은 누구에게나 품고 있는 찬란한 아침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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