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들이 인터뷰 할 때 꼭 받는 질문이 있지.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여러 사람이 등장하더군. 존경하는 인물은 대충 정해져 있어서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백범 김구선생, 도산 안창호선생, 유관순열사, 안중근의사 등 역사적 인물로 열손가락 내외가 되더군. 과문한 탓일까. 자기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대답은 거의 없었네. 불행한 아버지들이야.
위에 열거한 분들이 존경받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네. 훌륭한 분들이니까. 존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훌륭한 행동과 인격을 높이 평가해서 마음속으로 받드는 것이네. 자식들이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말에 왜 인색할까. 말하기가 겸연쩍어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 존경할 수가 없어서일까.
남에게 존경을 받는 것도 참 기분 좋은 일이지만 자식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부모 자식 간에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사랑과 존경이 같은 의미인지는 장담을 못하네. 50여 년 전 얘기 한마디 하지. 돈 많은 분이 국회의원에 출마를 했는데 아들이 불쑥 던진 말이 기억에 남네.
“아버지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하고 낙선하면 집이 망한다.”
돈은 많을지 몰라도 존경은 받지 못하는 아버지였네. 나도 자식들이 철들기 전에는 몰랐는데 머리가 커지고 사리분별 능력이 생겼다고 여겨질 즈음 이런 생각을 했네. 과연 내 자식들은 애비를 존경하고 있을까. 애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대답이 잘 나오지 않더군. 느닷없이 부자지간에 존경 얘기는 왜 꺼내는 것일까. 요즘 ‘시사 IN' 과 ‘한겨레신문' 이 취재한 김용철 변호사의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네.
이 나라 최고의 재벌이라는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도 놀랍거니와 특히 기사를 읽으며 문득 까맣게 잊어버리고 묻어두었던 오래전에 숙제가 생각난 듯 무척이나 마음이 무거웠네. 과연 자식들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애비일까. 자식들은 과연 애비를 존경하고 있을까. 대답이 나오질 않더군.
김용철 변호사는 ‘시사 IN’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네. 자기는 자식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애비라고. 삼성에 근무한 이후 자식들은 애비를 존경에 대상에서 지워버렸노라고. 김 변호사는 모든 것을 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네. 무척 비장했네. 자식한테 존경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애비의 심정이 어떻겠나. 더구나 삼성과의 싸움이네. 삼성이 어떤 곳인가.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란 조직이 갖는 해악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이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내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삼성에 있는 동안 양심을 잃어버려 이제는 자식들이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
“검사 때는 애들이 나를 존경했지만, 이제는 안 한다. 그리고 그곳을 거치면서 양심을 잃었다.”
“늙어서 아내 손잡고 산책하며 살려고 했다. 그런데 가정을 잃었다.”
김 변호사가 삼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고백하기로 결심을 한 것은 삼성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했네. 마지막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생의 끝을 의미하며 인간으로서의 최후네. 살아 온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이지. 그는 삼성을 너무나 잘 있는 검사 출신이 아닌가.
이처럼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됐다면 두려울 것도 없고 회피할 것도 없네. 문제는 지구보다도 더 무겁다는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걸만큼 삼성이란 조직은 바로 잡아야 할 사회악이라는 것이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네. 낮과 밤. 양지와 그늘, 정의와 불의, 사랑과 미움,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등등. 일일이 다 꼽을 수 없는 인생의 양면에서 인간은 한 쪽을 선택하며 살기 마련이네.
김용철 변호사가 검사에서 삼성을 택한 것도 스스로의 결정이라면 이번의 고백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침묵을 선택했다면 세속적인 의미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가 있었겠지. 그러나 그가 선택한 것은 고통의 길이었네. 사람들은 그 길을 양심의 길이라고도 하지.
나는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죠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떠올렸네. 대형(大兄)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는 사회, 개인은 없고 조직만이 존재하는 사회, 대형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언제든지 제거될 수 있는 낙엽 같은 인간이란 존재. 소름이 끼쳤네.
하나의 소모품일 수밖에 없는 거대조직에서 뛰쳐나온다는 것은 파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탈출을 결행했다는 것은 인간선언이라고 믿네. 삼성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 기업이지. 이 나라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부분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네.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기도 하고 삼성이 직장이라면 가슴 좀 펴고 다니는 그런 기업이지. 그것이 밝음이라고 하면 그 반대의 어둠은 이번 김변호사의 고백에서 들어 난 삼성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변호사는 왜 천주교정의사회구현사제단을 찾았을까. 그가 믿을 곳은 그 곳 밖에 없었다는 얘기지. 이 땅이 고난에 처했던 매 시기마다 천주교정의사회구현사제단은 잘못 굴러가는 역사의 수레를 제 자리로 돌려놓았네.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에 대한 독재정권의 반인간적 살인 만행도 정의구현사제단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어둠속에 묻혔겠지.
나는 천주교정의사회구현사제단이 이 땅의 양심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믿고 있네. 김용철 변호사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까지도 예감하면서 신부님들 앞에서 고백을 했겠지. 그는 양심선언이 아니라 자수라고도 했네.
자수는 죄를 진 사람이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네. 자신은 삼성과 공범이라고 고백했네.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많은 옳은 일들을 천주교정의사회구현사제단은 이루어 냈네. 이번 김 변호사의 고백도 사제단이 아니었으면 어느 누가 들어 주었을 것인가.
박 군.
자유당 시절만 해도 양심선언이나 비리고발은 언론사를 많이 찾았지. 자네가 올챙이 기자 시절에도 언론사에는 심심치 않게 양심고백을 하러 찾아오는 국민들이 있었지.
자네가 타계하기 얼마 전 나한테 한 말이 있네. 오늘의 언론은 언론이 아니라고. 그 때 자네의 침통한 얼굴이 잊혀 지지가 않네. 언론들은 왜 침묵을 하는가. 내가 만난 언론사 간부는 쓴 웃음을 짓더군. 그 웃음 속에서 난 한국 언론의 비극적 자화상을 보았네.
일등신문 조중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신정아의 알몸 사진까지도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용감무쌍하게 보여주던 문화일보는 뭘 하고 있나. 삼성관련 보도를 했다가 나중에 또 사과하는 망신을 당할까 겁이 났는가. 김 변호사의 고백은 국민의 알 권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가. 홍석현이 구속될 때 “회장님. 힘내세요.” 외치던 중앙일보 기자들은 김 변호사에게 힘내라고 격려해 줄 수는 없는가.
수백억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벌금을 내지 않는 동아일보 사주의 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가. 기자들이 만든 기자협회가 입을 열었더군. 안 열면 문 닫아야지.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지낸 백병규는 그동안 알권리와 언론자유 수호를 외쳐온 언론인들에게 말했네.
“정부의 기사송고실 통폐합 조치 등에 대해 언론탄압이라며 한국언론사상 두 번째로 모임을 갖고 '언론자유 수호'를 외쳤던 신문·방송 편집국장과 보도국장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그렇게 외친 분들이 어떻게 신문을 이렇게 편집하고 방송 보도를 이렇게 편성할 수 있을까”
“신정아의 '누드'까지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서비스했던 그 신문의 서비스 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출장 갔나.”
“정부의 기사송고실 통폐합에 맞서 투쟁까지 불사하던 기자들은 어디에 가 있는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위해 기자들이 떨쳐 일어나야 할 일이 아닌가. 지금 언론자유를 위해 탄핵할 자들은 누구인가”
언론노조도 언론인들이 궐기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네.
“정치권력을 향해선 막말까지 쏟아내며 비장한 비판자 행세를 해온 언론들이 재벌 삼성을 향해선 입을 쏙 닫아버린 처사를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권력 감시를 위해 정부의 취재 지원 개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던 대한민국 언론의 사명감이 고작 이 수준이었단 말인가”
이 나라의 언론이 이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어디를 다닌단 말인가. 신문기자들이 무슨 얼굴로 취재원을 찾아다니며 사회정의를 말 할 것인가. 이번 사건을 쥐꼬리만큼 보도하고 정론이라고 우길 터인가. 벼룩이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을 알기나 하는가.
“삼성, 검찰간부 40여명에 연 10억원 떡값”
“삼성 떡값 리스트’에 현직 판사·대법관도 포함”
여보게. 검찰 간부 40여명한테 연 10억 원의 떡 값을 제공하고 삼성 리스트에 현직 판사와 대법관도 포함이 됐다는 풍문만 있어도 언론은 당연히 취재를 해야 되지 않겠나. 정의구현사제단은 삼성의 총수가 로비지침까지 직접 내렸다고 했는데 기자들이 보도할 더 이상의 사건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삼성이라 겁이 나서 그러는가. 언론도 관리대상이었다는데 그래서 뭔가 뒤가 찔려서 못하는가.
신정아 사건 때 서부지검 안마당에 천막을 쳤던 철저한 기자정신은 어디로 휴가를 가셨나. 단풍이 고와서 단풍놀이를 갔는가. 기자협회는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하여 언론인들의 반성을 촉구했지. 기자협회는 성명서의 끝을 이렇게 맺더군.
“...회원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이번 사건은 크게 보도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기본이다. 지금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때다. 그것만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이다.
천주교정의사회구현사제단이 발표한 성명서는 비장함 마저 서려있네.
“삼성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절 중정, 안기부와 같다. 군사정권의 무기가 고문이었다면 삼성은 돈이 무기다. 특히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은 이건희 일가의 영구집권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삼성이 전략기획실을 해체할 때까지 목숨 걸고 싸울 각오가 돼 있다.”
“87년 6월 사제단은 군사독재정권과 싸웠다. 많은 신부님들이 안기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군사독재정권을 끝장낼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는 목표가 있었다. 20년이 지났다. 우리의 각오는 그때와 같다. 어쩌면 삼성은 군사독재정권보다 더 지독할 것이다. 우리는 정말 삼성이 잘 되기를 바란다. 이건희 일가를 위해 삼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나. 삼성의 뜻에 반하면 죽는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다. 이걸 깨려고 사제단이 나선 것이다. 경제민주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다.”
김용철 변호사는 검사로 일할 때 자식들로부터 존경 받았다고 했고 삼성에서 근무하면서 존경을 잃었다고 했네. 무슨 의미일까. 돈 잘 벌어 호강시켜 주는 것은 존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란 말이겠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을까. 삼성보도를 외면하는 언론사 간부들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존경할까. 떡 값에 자유롭지 못한 법조인들은 자식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까.
이제 김용철 변호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목숨을 버릴 마음으로 몸을 던졌지만 나는 그가 끝까지 살아 행복을 누리길 진심으로 원하네. 그리고 자식들로부터 다시 존경을 받기를 하느님께 기도하네. 하느님은 옳은 사람 편이라는 것을 이제 보여주셔야 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