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그렇지 기다린다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명코 아름다운 결과가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의 불행과 액운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일들이 아닌가요.
29일이 넘어서야 피랍된 동포 2명이 풀려나 귀국하는 것을 보면서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가 어찌어찌해서 구조를 받은 선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다리지 못하고 액운에 절명했다면 그 또한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요.
8월 9일에서 11일까지의 ‘교사 실학기행 2007’은 교사 30명에 전문가나 교수 및 함께하는 분들을 합해 46명의 기행단이었습니다.
10일 오전에 흑산도에 들어가 손암 정약전 유적지 등을 답사하고 11일 오전에 다시 육지로 나와 나머지 답사지역인 다산초당과 녹우당 등을 살펴보고 서울로 귀경하는 절차인데 11일과 12일 격한 풍랑으로 배가 출항하지 못해 48시간을 억지로 흑산도에 체류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말았답니다.
그러나 뜻밖의 날씨 탓으로 오히려 많은 토론과 강좌를 가질 수 있어 즐겁고 유익하기만 했다니, 기다리다보면 ‘꿈에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적중하고 만 셈입니다. 남녀 교사들과 전문가들이 어울려 화합의 장이 되었고, 실학기행의 참뜻이 발현되는 계기였다니 기다림은 그래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다산 정약용의 호는 ‘다산’, ‘열초’, ‘여유옹’, ‘균암’, ‘열수’, ‘열상노인’ 등 많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자신의 호는 ‘사암(俟庵)’이라는 호였습니다.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라는 경전의 글을 인용해서 지은 호입니다.
“백세토록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미혹함이 없으리라”라는 뜻인데, 자신이 연구하고 천착하여 세운 새로운 학설이나 학문적 업적은 먼 뒷날 성인을 기다려보아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 기다리는 자세에서 흐트러지지 않겠노라는 자신의 각오를 표현한 내용이라 여겨집니다.
18년 유배살이의 긴긴 기다림, 4서5경을 새롭게 주석하고, 일표이서의 방대한 경세철학을 창안하여 수립해놓고 불평 없이 뒷날을 기다린 다산의 위대함. 그런 기다림은 마침내 실학을 집대성한 최고의 학자적 지위에 올라 나라와 민족에게 밝은 빛을 발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역시 기다림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