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비누냄새가 귀족이었다
「젊은 느티나무」
가슴갈비가 울었다
돌체다방 「시인과 농부」를 듣고
홍차 마시고 조용조용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군가가 참았던 가슴 복받치며
침 튀기며
사랑하고 싶다 쫓아가고 싶다는 말을
무지막지하게 바꿔 버렸다
썅년 쏴죽이겠다 고은, 『만인보18집』, 창비사 2004, 152p
「강신재」, 부분
전쟁의 기억은 사랑의 표현마저도 전투적으로 바꾸었을까.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황폐한지 낭창한 음악다방에서조차 불같은 사랑을 무지막지하게 바꿔버렸다. 시인은 이를 이성적으로 훈계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냥 사랑이 좋은 것이다.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고은의 창작 영토가
만큼 넓고 포근하다.
(전략)
전쟁에서 죽지 않은
직업군인 중사인데
야전삽 하나면
거뜬하게 막사짓는 중사인데
제대한 뒤
세상과 맞이 않았다
이발소에 가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뇌일혈로 쓰러졌다
아버지의 벌은
벽장에 가두는 것
이틀도 어둠속에 갇혀 있었다
아들 용준이 용구 용식이 삼형제가
아버지 시신 옆에 쪼르르 앉았다
삼형제 서로 싸우더니
오늘은 의좋게 앉았다
막내용식이 열한살
이발사 아저씨한테
이발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열한살에 세상살이에 성큼 나섰다 고은, 『만인보18집』, 창비사 2004, 154p
-「열한살 국민학생」, 부분)
상이군인의 아들의 삶은 피폐했다. 아무도 그들을 애국군인의 아들로 대접하지 않았다. ‘열한살 국민학생’의 삶은 전쟁 후유증으로 오히려 성큼 자라나는 역설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시신 앞에 쪼르르 모여든 아들들의 모습은 한 상이군인의 죽음이 자식들을 한 자리로 모우는 새로운 삶을 예고한다. 아프지만 아름다운 노래다.
만인보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노래하지만, 역사적 승자를 노래하지 않는다 역사적 패자를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끌어안고 함께 노래하고 있다. 행간 행간마다 고여 있는 한과 고통을 끌어안고 용서를 이야기한다.
전쟁 실상을 인물을 통해 극명히 그려내지만 그것은 뒤집어보는 애족愛族이었다. 그 누구도 한방에 단죄될 수 없는 다소 구차하지만 나름의 슬픔과 사연을 갖고 있음을 시인은 노래하는 것이다.
고은은 역사의 해학을 시적 해학으로 옮겼지만 그는 역사를 희화화하지 않았다. 인간의 정의가 어느 한쪽으로 쏠릴 경우 오히려 침묵으로 사랑했던 것이 더욱 감동을 주기도 한다.
아직도 한쪽에 줄서기를 강요하는 문학적 풍토가 이 땅에 있다면 그것은 아직 전쟁의 상흔이 문학적으로 완전히 용해되지 않았음으로 반증하는 것이다.
고은의 『만인보』는 혁명의 역사, 정상을 쟁취하는 투사의 노래이기보다 역사의 저변에 넓고도 길게 깔린 이름 없는 들풀들의 노래이다.
그 들풀들 사이에 피어난 각양각색의 들꽃들의 노래를 그저 조심스레 옮겨놓았을 뿐이다. 시인의 겸손이 경지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해준 서사시이다. 80년대를 상징하는 시인으로서 고은은 최근 자신의 문학과 삶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단절이 아주 심했다. 그러나 그게 그냥 단절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것으로 연결되는 끈이었다는 것을 이제 알 수 있다. 그 당시는 단절이었으나 무한히 다른 것으로 연겨로디어 있는, 그리고 연결되어야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 존재인 것 같다. 동작, 행위로서의 존재인 것이지”11) 문인앨범-고은 편, 『문학사상』, 2006 3월호 103p
고은은 이제 ‘만인보’를 통해 단절과 투쟁의 역사에서 한층 성숙하여 화해와 포용의 정신을 그려내고 있다. 대통합의 시대를 에언하는 선지자처럼 그는 사랑해야할 사람, 용서해야할 역사를 천부적인 시적 상상력으로 오늘도 쏟아내듯이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80년대는 곧 한민족 근현대사 100년사를 껴안은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