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위의 입을 벌려 강제로 깔대기를 꽂고 사료를 막대기로 밀어 넣어 과식으로 부은 거위 간을 최고급 요리로 치는, '숲속의 뱀장어'라는 이름으로 은밀하게 뱀고기 요리를 즐긴, 파리 코뮌 당시 식량이 떨어져 개를 잡아먹은 바르도씨의 선조들과 그녀의 프랑스 동포들의 눈에서 '들보'를 찾아내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김학민. 그는 1974년 4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 공작에 의해 이른바 민중봉기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을 기도했다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7·80년대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민주화 운동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그의 이름 앞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혀야만 좋을까. 출판인? 음식 칼럼니스트? 아니, 어쩌면 그의 이름 앞에는 그러한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지도 모른다. 그저 '김학민' 하고 부르면 '아항, 그 사람' 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갈라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1975년 3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시인 김지하는 민청학련 사건에서 인혁당 관련자들이 겪은 혹독한 고문 사례를 폭로한 '죄'로 중앙정보부에 다시 구속된다.
중앙정보부는 김지하를 영원히 제거할 목적으로 '가톨릭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로 꾸며내는 한편, 김지하의 마지막 진술서를 '나는 공산주의자다'란 제목으로 5개 국어로 번역하여 전세계에 배포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완전 매장하려 획책한다.
-'밥이 하늘이다' 몇 토막
다시 말하자면 그 음식 혹은 그 음식점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잊지 못할 추억들과 에피소드 등을 마치 전주 비빔밥처럼 맛깔스럽게 비벼 놓았다는 것이다. 그 얘깃거리들은 '밥이 하늘이다'처럼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던 웃지 못할 그런 이야기들도 있고, 때로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음식을 낳게 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담아내기도 한다.
<한겨레 21>에 '김학민의 음식 이야기'로 연재되었던 이 글은 밥, 가루 음식, 해물, 찌개·국·탕, 육고기, 외국 음식 등 음식의 종류에 따라 모두 6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밥은 나눠 먹는 것', 제2부 '가루 음식의 엇갈린 운명', 제3부 '바다에 취하다', 제4부 '국물 있사옵니다', 제5부 '너무 좋아하진 말아요', 제6부 '그들 것도 맛있다' 가 그것.
우리는 산에서 내려온 다음 대개 수원 장안문 부근에 있는 한 허름한 막걸리 집으로 가는데, 이 집의 막걸리 맛이 끝내 준다. … 안주 차림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번 들르걸랑 복잡하지 않게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냥 불쑥 말하라. 그리하면 마이더스의 솜씨가 술꾼, 당신을 행복하게 하리라.
"아주머니, 막걸리 한 되 하고, 있는 거 중에서 아무거나 해주세요.!"
-'광교산에서 부르는 막걸리 찬가' 몇 토막
이 글은 등산을 좋아하는 글쓴이가 수원 용인 부근에 사는 시인 홍일선, 용환신 등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우공이산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광교산에 등산을 갔다가 산을 내려오면서 반드시 들른다는 '24시 해장국'집의 맛깔스런 안주와 꿀맛 같은 막걸리에 대한 예찬이다.
등산을 할 때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여 그렇찮아도 맛이 있는 그 막걸리를 더없는 꿀맛으로 변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래. 언뜻 들으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하찮게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도 뼈가 들어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 무언가가 더욱 빛이 나지 않겠는가. 비록 막걸리 한 사발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한창 위세를 부리던 70년대 어느 날 전주에서 하루를 묵었다고 한다. 이튿날 새벽 지난밤의 술로 헝클어진 속을 풀려고 경호원을 시켜 전주에서 유명하다는 콩나물 해장국집에 전화를 걸어 해장국을 배달해 달랬다 한다.
그러나 배달 대신 "술 처먹었으면 직접 와서 뜨끈뜨끈한 해장국을 먹어야지, 어떤 시러배놈이 배달해 달라는 거야!"하고 욕만 한 사발 먹어버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박정희가 직접 와서 해장국을 시켜 훌훌 맛있게 먹는데, 그것을 보고는 욕쟁이 할머니 왈 "박정희 같이 생긴 놈이 잘도 처먹는다. 이젠 속 풀렸지?"라고 했다나.
-'박정희 같은 놈이 잘도 처먹네' 몇 토막
물론 '믿거나 말거나'라는 전제가 달려 있긴 하지만, 박정희가 욕 한 사발과 함께 먹었다는 전주 해장국 이야기를 읽으면 절로 웃음이 삐져 나온다. 그래. 박정희를 앞에 앉혀두고 '박정희 같이 생긴 놈'이라고 했으니, 그 당시 민초들이 박정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슬그머니 엿보게 해준다.
이 외에도 비빔밥, 쌈밥, 빈대떡, 칡냉면, 막국수, 조개구이, 홍어, 청국장, 장국밥, 삼겹살, 족발, 개고기 등 우리 전통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잘 차려진 식탁처럼 풍성하다. 또한 보드카와 맥주, 와인, 스파게티, 중국 요리 등 외국 먹거리까지 맛깔스런 입담으로 술술 풀어낸다.
김학민의 음식 이야기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는 식도락가가 여유를 부리며 맛을 따라 전국 곳곳을 누빈 그런 음식 기행문이 아니다. 그저 그가 굴곡 많은 현대사를 살아내면서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며 하늘 같은 음식을 지인들과 함께 나눠먹으면서 뼈속 깊숙히 느끼는 삶의 진정한 참맛이다.
출판인이자 음식 칼럼리스트 김학민은 대학시절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된 뒤 7·80년대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에 앞장 섰다. 한길사 편집장을 거쳐 그의 이름을 딴 <도서출판 학민사> 대표로 있으면서, 인문사회과학 교양서 200여 권을 기획, 편집했다.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실행위원과 수원 월드컵 문화행사자문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세종문화회관 자문위원, 사단법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 청와대 인사보좌관실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길을 찾는 책읽기><564세대를 위한 변명><정본 백범일지><독재의 거리>가 있다. 요즈음 수능시험 끝낸 고3을 위한 '술 제대로 마시기' 강의를 벌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