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책임론 벗기 위한 대선후보들의 ‘염불보다 잿밥’ 이중전략
총선책임론 벗기 위한 대선후보들의 ‘염불보다 잿밥’ 이중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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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진보진영 후보단일화 무산 배경

▲ 여의도는 대선에서 총선으로 빠르게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을 묻는 한편 4개월 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는 검찰의 BBK 수사 발표 이후 ‘당선’보다는 ‘얼마만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느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와는 반대로 범여권은 마지막 히든카드가 될 수 있었던 ‘후보단일화’를 일궈내지 못했다는 책임론에 휩싸였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 민주당 이인제 후보에게 거듭 단일화를 제안했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자신의 낮은 자세에도 불구, 문 후보와 이 후보가 단일화를 뿌리쳤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할 태세다.

정 후보는 ‘공동정부’를 내세우며 “12월18일까지 공동 정부의 가치와 신념, 구성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마지막까지 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대권헌상론’의 직격탄을 맞지 않기 위해서다.

문 후보와 이 후보도 후보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분주하다. 그들은 단일화 실패 요인으로 정 후보를 겨냥하고 있다. 문 후보는 “정 후보가 사퇴해야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명분’을, 이 후보는 “6:4 의결권은 중도개혁노선을 지향하는 민주당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는 ‘실리’를 들어 정 후보측의 ‘열린 문’이 실제로는 ‘좁은 문’이었음을 지적했다.

대선 실패의 책임 소재와 함께 정치권을 들썩이게 하는 것은 ‘총선’. 4개월여 차를 두고 진행될 총선에 정치권의 주판알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대선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여의도에 부는 바람에 실려오는 목소리는 한결같다. 이미 각 정파들이 대세가 확실시 되고 있는 ‘대선’보다 ‘총선’쪽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총선, ‘대선 책임론’부터


총선을 향한 소리없는 전쟁의 막은 이미 올라 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이미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창당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이 후보는 신당 창당 선언을 공식화해 총선에 대비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이 후보 선대위 내부에서도 “대선에 패할 수 있으나 게임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측도 ‘대선에서의 선전을 통해 내년 초 정계 개편과정에서 주도권을 쥔다’는 총선 구상을 내놨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대선 막바지에 대선후보에게 눈도장을 찍는 것보다는 자신의 지역구 챙기기에 분주하고 민주당도 총선에 대비한 물밑구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책임론’이다. 대선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그 실패의 책임을 질 ‘대선 실패 책임론’의 주인공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자칫하다가는 가만히 앉아 있다 된서리를 맞는 수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일화’ 네가 싫다며


범여권의 ‘대권헌상 책임론’이 향하는 단어는 ‘단일화’. 범여권을 기사회생시켜줄 ‘히든카드’인줄 알았던 ‘후보단일화’는 결국 망가지고 망가져 다시는 고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범여권에서 단일화를 향한 은근한 압박은 여의도가 대선구도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정동영 후보로 대선후보를 확정짓고, 문국현 후보가 창조한국당 대선후보, 이인제 후보가 민주당 앞에 서자 “하나로 모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치권 안팎에서 이들을 죄어왔다.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정동영 후보다. 거대정당의 후보로 ‘솔선수범’한 면도 있지만 문 후보와 이 후보가 ‘다른 생각’을 하기 전에 냉큼 하나로 모여 ‘단일화 효과’를 누리고 그 기세를 몰아 이명박 후보와의 양자구도를 원했던 것이다.


범진보세력 vs 범보수세력…막판 후보단일화 ‘쨍그랑’
대권헌상론=총선실패론 놓고 범여권 삼각싸움 치열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문 후보는 지지율 도약의 가능성을 재고 있었고 민주당과 추진했던 단일화는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의결권 문제로 파행을 맞았다.

이 후보는 후보단일화 실패의 이유에 대해 “신당과 정동영 후보가 국민 앞에서 선언한 합의를 헌신짝처럼 차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이제 더 이상 그들과의 재통합이나 후보단일화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측은 정 후보측의 단일화 요구에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조건은 ‘정동영 후보 사퇴’였다. “국민이 무능하다고 판단하고 외면한 정치세력”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한발 물러선 조건은 “참여정부와 대통합신당의 공과를 정확히 가리고, 정동영 후보의 사퇴요청에 대한 문제, 단일화 문제까지 모두 토론할 수 있는 ‘공개토론회’”였다.

정 후보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문 후보와 만났고 단일화에 대한 논의를 했다. 하지만 ‘공개토론회’가 문제가 됐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문 후보가 제안한 TV토론회에 대해 ‘불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협상은 끝끝내 무산됐고 이후 다시 민주당과 단일화 논의의 불꽃이 살아나는 듯 했지만 이내 사그라졌다.

계속되는 단일화 압박에 문 후보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미래창조 세력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자꾸 과거로 돌아가자는 단일화 공세를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 후보가 마지막으로 내세운 것은 ‘공동정부’. 정 후보는 “민주평화세력의 단일화를 위해 권력분점에 기초한 공동정부를 제안한다”며 ‘연정’을 제안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가치와 비전으로 뭉치고, 새로운 인물과 세력도 뭉치고, 다원화된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 공동으로 실천하는 정부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 후보는 “이명박 후보처럼 부정부패로 얼룩진 분이 대선후보로 있는 것도 수모지만, 그분들(신당)도 민심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지 말고 정권 연장 개념을 포기해야 국민이 용서한다”며 고개를 돌렸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도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은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려는 책략에 불과하다”며 비난했다. 이미 단일화 논의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나온 당근이었다는 것.


등 돌린 양대 보수진영


범보수진영에서도 ‘후보단일화’에 대한 ‘책임론’이 떠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향한 것이다. 이회창 후보 사퇴를 줄기차게 주장해 온 한나라당은 대선 후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제가 선택한 길이 올바르지 않다는 국민적 판단이 분명해지면 저는 언제라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며 후보단일화의 여지를 남겼다.

이명박 후보도 “이 전 총재가 정권교체를 위해 한나라당과 협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회유했다.

이회창 후보측이 창당과 함께 대선완주 의지를 밝히고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세력이 (자신이) 대선출마 선언을 하자 비난. 공격 등을 했지만 명예·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정직·신뢰를 세우기 위해 출마를 선택했다”며 “거짓말하고,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수단방법 안 가리고 돈만 벌면 된다는 사고에 빠진 사람은 정권교체도, 나라를 살릴 수도 없다”고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자 이명박 후보도 이회창 후보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명박·이회창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
신당·창조한국당·민주당 대분열…‘새판 짜기’


이명박 후보는 “그 분이 마지막 할 수 있는 길은 보수의 정권교체 명분에 협력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대통령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국민께서 안정적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강력한 국민 통합을 기반으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수 있다”며 “과반 이상 지지를 받고 싶다”고 외쳐왔다. 대선 이후를 고려한 발언이었지만 정치권은 이를 총선과 연관시키기도 했다. 이 후보가 외쳐온 ‘여의도 정치와는 다른 이명박 정치’의 실현도 총선에서의 승리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로 인해 보수 표가 분산되면 그가 원하는 과반 지지가 힘들어진다는 점을 의식한 듯 “새치기 한 사람은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 “12번 찍는 게 1번 찍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이회창 후보를 정 조준했다.


총선 앞으로 헤쳐 모여


대선과 4개월 간격을 두고 실시되는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 또 하나 있다. ‘후보단일화’가 대선후보들의 문제라면 대선이후 각 정당의 판세 변화는 정당간 승부다.

대통합민주신당은 BBK와 삼성 특검을 총선까지 연결시키겠다는 계산이고 문국현 후보는 대선에서 패하더라도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치를 내걸고 정계개편의 중심 축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수많은 정치세력이 얼기설기 엮여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해 대선 후 분열 움직임이 가속화 될 것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미룰 수 있는 대상만 생긴다면 ‘명분’이 있는 창조한국당이든 민주당이든 뛰쳐나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

문 후보측도 이를 기대하는 눈치다. 문 후보측 관계자는 “새로운 정치를 향한 열망이 있는 이라면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이미 사분오열돼 7석만 남아 있는 민주당도 총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의 지역당으로 20석만 얻어도 자신들의 가치를 원내에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선 이후 정계개편은 예정된 수순”이라며 “대선에 대한 책임론 문제만 해결되면 이해집산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거대한 지각변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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