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잔뜩 흐렸다. 갑자기 단임골이 그리워졌다. 단임골에 사는 리영광씨의 근황도 궁금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삼년 전이다. 그는 북한에서 22살 때 귀순한 귀순용사다. 그 세월이 너무 오래라 이젠 귀순용사라고 칭하는 건 온당치 않을 것 같다.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단임계곡으로 향한다. 단임골은 정선군에서도 오지라고 소문난 곳이다. 단임골로 가려면 59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정선군 북면 나전리에서 평창군 진부면에 이르는 59번 국도는 오대천을 끼고 달린다. 오대천은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한 한강의 젖줄이다.
단임골로 가려면 59번 국도를 따라가다 숙암에서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가 흔치 않은 곳이라 찾기는 쉽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가면 벗밭이고 좌측으로 가면 단임골로 가는 길이 나온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다보면 민가 몇 채가 보인다. 민가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담임골이 시작된다.
길은 비포장이다. 비포장도로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반갑다. 읍내에서 어정거리던 안용현과 함께가는 길이라 입도 심심하지 않다. 안용현도 단임골은 처음이라니 마을 사정에 대해 아는 척 하면서 산길을 올라간다.
길은 지난 여름 수해로 곳곳이 파헤쳐져있다. 응급복구 상태라 길은 험하다. 수해가 났을 때 단임골 사람들은 열흘 동안이나 고립된 상태로 지냈다. 막힌 길은 군장병이 뚫었다. 상처난 계곡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십여년 전 단임골은 오지마을 탐사 코스였다. 당시 치과의사인 이승건씨가 트랙코리아라는 오지마을 탐사 전문업체를 차리고 외국인들을 데리고 왔다. 탐사는 다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왕복 육십리가 넘는 길이었다. 외국인들은 단임계곡을 걸으며 "뷰티풀!"을 외쳤다.
길에서 만난 다람쥐가 반갑게 인사하는 곳, 단임계곡은 물이 맑다. 가재는 물론이고 1급수에서만 산다는 산천어가 흔하다. 골 깊은 곳에서 발원한 물이 그렇듯 그냥 마신다 하여 몸 상할 일 하나 없다.
몇 해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집 한 채가 보인다. 펜션이다. 누군지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드는 집이다. 좀 더 올라가자 중장비가 길을 막는다. 중장비는 울퉁불퉁한 길을 고르게 정리하는 중이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계곡으로 나선다. 바람이 싸아하게 불어준다. 싱그럽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중장비가 길을 터준다. 그냥 지나치기 미안하다. 수인사로 미안함을 대신하고 길을 따라 올라간다. 차량에 있는 해발 고도가 700을 넘기고 있다. 경사가 심하지 않아 길만 정리 된다면 승용차로도 오를 길이다.
길 주변으로 단풍나무가 많다. 단임(丹林)은 붉은 단풍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을이라면 온 몸을 붉게 물들일 곳이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겨울이 낫다.
마을로 들어서자 리영광씨가 살고 있는 집이 보인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폐교를 포함해 집은 네 채 뿐이다. 길은 눈이 하얗게 깔려있다. 오후 세 시를 갓 넘겼지만 저녁처럼 어둑하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리영광씨의 부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리영광씨는 음식을 보관하는 광의 문짝을 만들고 있었다. 지난 가을부터 하려던 것을 오늘에야 만드는 중이란다. 그것도 불현듯 들이닥친 우리 때문에 손을 놓는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요. 방해 받고 방해하고..."
리영광씨가 웃으며 말한다. 말투는 북한 말씨 그대로다. 외양은 나와 비슷하다. 긴 머리에다 콧수염과 턱수염까지, 둘이 서니 형제 같다. 리영광씨 부인이 방으로 안내한다. 작은 토방에 찻잔이 놓인다. 술 담배를 전혀 안하는 리영광씨라 차 대접이 최상의 대접이다. 그동안 어찌 지냈냐고 물어본다.
"지난 봄에 금강산을 다녀왔어요. 남쪽으로 넘어오고 난 후 처음 고향 땅을 밟았어요."
"고향 땅을 밟은 기분이 어땠나요?"
"눈물이 핑 돌면서 한동안 아무 말도 안 나오더군요."
"몇 해 만의 귀향이었나요?"
"낼 모레면 환갑이니 거진 40여년 되나봐요."
리영광씨의 말끝이 촉촉하게 젖어든다.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학성군이다. 지금은 김책시로 바뀌었단다. 학성군은 학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리영광씨는 지금도 학을 좋아한단다. 금강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그의 고향이다. 한달음에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는 리영광씨의 눈에 이슬 같은 게 맺혔다 사라진다.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벽에 걸린 설피를 보며 묻는다.
"한겨울에 설피 없으면 움직이지도 못해요. 특히나 산에서는 필수품입니다. 옛날 개마고원에서도 설피를 많이 신었지요."
"개마고원이라면 백두산이잖아요?"
"육이오 전쟁 때 피난을 개마고원으로 갔어요."
개마고원엔 그의 외가가 있었다고 한다. 학성에서 오백리 길이다. 학성에서 마천령을 넘으면 개마고원이 나온단다. 성진이 조선시대부터 해안 방어의 요충지라 전쟁 때 고향도 큰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개마고원으로 피난간 그는 그곳에서 설피도 신어보고 직접 만든 스키도 탔다고 한다.
"금강산 많이 가야합니다. 그래야 통일 되지 않겠습니까."
그의 대화는 다시 금강산으로 넘어간다. 나도 얼마 전 금강산을 다녀왔다고 하니 고맙다며 손을 잡는다. 남쪽 사람들이 금강산을 자꾸 가야 그나마 통일 기운이 샘솟지 않겠냐는 그의 말에 나도 동감을 표시한다.
"많이 가야지요. 북핵이다 뭐다 말이 많지만 백성들이 무슨 죄랍니까. 가고 싶으면 갈 수 있게 해야지요."
내 말에 리영광씨의 얼굴이 환해진다. 함께 온 안용현이 나무를 패겠다며 마당으로 나간다. 찻잔을 비우고 리영광씨와 나도 따라 나선다. 리영광씨의 부인이 목장갑을 챙겨준다. 줄곳 총각으로 살던 리영광씨를 구한 부인은 부산에서 왔다.
십여년 전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자살을 결심하고 있는데 TV 화면에 홀로 살고 있는 리영광씨가 나왔다는 것이다. 부인은 저 사람을 만나보고 죽자, 라는 생각으로 부산에서 정선까지 물어물어 천리길을 왔다.
이틀을 묵은 후,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날 부인이 리영광씨에게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리영광씨가 트럭 빌리는 값으로 15만원을 부인에게 건넸단다. 부인은 며칠 만에 단임골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고 지금 껏 살아간다.
"그 당시 돈은 얼마 있었어요?"
"통장에 25만원 있었어요."
"그럼 10만원 남았는데 지금은 얼마나 있나요?"
"한 20만원 정도 되려나?"
"그럼 그동안 10만원 버셨네요?"
따로이 돈벌이를 하지 않는 리영광씨 부부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쓰고라는 식의 삶도 아니다. '있으면 쓰고'는 애당초 없다. 가난이라는 말은 생각지도 않고 산다.
텃밭에 있는 것들만 키워도 굶지는 않는단다. 절반은 새가 먹고 절반은 리영광씨 부부가 먹는다는 텃밭엔 마른 잡초가 무성하다. 전기세 7천원과 전화세 1만원 정도만 해결하면 걱정이 없다는 리영광씨 부부다.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눈발이 비춘다. 단임골의 풍경이 신선의 세계 같다. 방문객인 우리를 빼곤 리영광씨도 그의 부인도 자연의 한 풍경이 된다. 안용현이 나무를 패다 소나무 안에 있는 벌레를 발견한다. 굼벵이다. 소나무 진을 먹고 자라는 벌레는 겨울잠을 자는지 통통하다.
"구워 먹읍시다."
안용현이 고단백이라며 구워먹잔다. 리영광씨도 예전에 먹어본 일이 있다며 거든다. 리영광씨가 아궁이에 불을 땐다. 그 사이 벌레는 세 마리로 늘어난다. 리영광씨 부인이 밥을 짓는 동안 벌레를 굽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벌레는 송진 냄새가 은은하다. 노릇노릇 구워진 벌레를 입안에 넣는다. 진한 향이 입안에 감돈다. 톡 터지며 넘어가는 벌레는 맛도 좋다. 어릴 적 매미는 구워 먹어 보았지만 벌레를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리영광씨가 선입견만 버리면 보약이 따로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리영광씨가 사진은 싫단다. 카메라에서 나오는 레이저 광선 같은 게 영 거북한 모양이다. 사진을 찍으려던 내가 오히려 미안해진다. 죄송하다며 카메라를 접는다.
부인이 밥이 다 됐으니 저녁식사를 하란다. 한 일도 없이 밥을 축내는 건 방문객의 예의가 아니다. 어둠이 더 짙어지기 전에 돌아가야 겠다고 한다.
"밥을 많이 했는데 들고 가세요."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와서 두 그릇 먹겠습니다."
눈발이 날리는 계곡을 나선다. 리영광씨 부부가 아쉬운 듯 따라 나선다. 방문객의 차가 출발하자 부부는 집으로 돌아간다.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뒷 모습이 아름답다. 다음에 올 때는 간고등어라도 챙겨 가지고 와야 겠다. 눈발이 굵어진다. 59번 국도에 나왔을 때 안용현이 말한다.
"어디 딴 세상에 갔다 온 거 같네요?
그래, 분명 우린 신선이 사는 곳에 다녀왔다. 꿈결처럼 아득한 곳에 단임골이 있고, 단임골엔 두 분의 신선이 살고 있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이런 사실을 속세에 발설하기 싫어진다. 이러다 벌 받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