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자에게 재계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기업인 출신이라 기업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데다 ‘친(親)기업정책’으로 각종 규제 완화가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금산분리나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특히나 규제 완화의 기대감이 높다. 때문일까. 재계에선 아무래도 MB의 당선에 가장 큰 안도의 숨을 내쉬는 곳으로 삼성그룹을 꼽는다. 삼성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의 수위가 조금은 낮아질 가능성이 있고, 여기에 10년 숙원(?)인 금산법 완화 기대감으로 김용철 변호사(삼성그룹 전 법무팀장)의 핵펀치를 피해갈 비법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사신문>이 속사정을 따라가 봤다.
금산분리 완화, 발목 잡혔던 지배구도 탈출구 찾나
부정적 여론형성, 파격적인 완화책 나오기는 ‘글쎄’

삼성그룹도 이런 정책이 크게 반가울 수밖에 없다. 특검을 앞두고 있어 공식적인 속내는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삼성그룹의 아킬레스건이 모두 이런 정책과 맥락을 같이하는 까닭이다.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몰고 온 삼성 관련 비리 의혹 역시 이래저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책의 돌파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금산법 왜 아킬레스건?
사실 삼성그룹에게 금산분리 완화는 10년 숙원이다. 지난 1997년 금산법(금융산업구조개선법)이 만들어지면서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25.64%)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7.2%)은 줄곧 법과 충돌하며 시민단체의 집중포화를 맞아야 했다.
이런 금산법이 완화되면 삼성그룹으로서는 막힌 숨통이 확 트이는 격이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지배구도가 금산법의 거대 벽에 막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산법은 그나마 올해 8월부터 조금 완화된 상태다. 개정 금산법을 보자면, 금융회사가 취득한 동일 기업 집단 내 비금융 계열사 주식 중 5% 초과분에 대해 1997년 3월 이전 취득분은 2년 유예 뒤 의결권을 제한하고 그 이후 취득분은 즉각 의결권 제한과 함께 5년 내에 자발적으로 매각하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순환출자 구조의 한 축인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 중 5%를 초과한 20.64%는 앞으로 5년 안에 매각해야 한다. 여기에다 다른 한 축인 삼성생명은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3% 가운데 5%를 초과한 2.3%에 대해서 2009년부터 의결권이 제한된다.
삼성그룹 전체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가 차지하는 지분이 4.54%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런 금산법에 따라 지분 매각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그룹 지배에 상당한 어려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 어려움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이런 지분으로 오너 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재용 전무 25.1%, 이건희 회장 3.7% 등 특수관계인의 보유지분이 90.23%에 달하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카드 보유지분에서 20.64%를 처분해도 당장 그룹 지배구도에 구멍이 뚫리지는 않는다. 또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13.34%를 비롯해 우호지분 35.62%로 삼성생명 지배에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삼성카드가 매각해야 하는 수천억 원대의 지분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만큼 그룹의 중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장악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삼성카드 매각 지분을 오너 일가가 어떻게 거둬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삼성그룹의 최대 숙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 그동안 증권가 등을 중심으로 삼성생명 상장이 가져올 손익계산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매각해 막대한 실탄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삼성카드가 처분해야 하는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사들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여기도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현재의 금산법을 놓고 보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금융지주회사법까지 위반하는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된다.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금융지주회사법이 또 다른 올가미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법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금융회사 지분이 총자산의 50%를 초과하면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이럴 경우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업종 이외에 다른 회사의 지배를 할 수 없다(제19조). 증권가 일각에서 ‘삼성금융그룹’과 ‘삼성전자그룹’으로 나뉘는 삼성그룹 지배구도의 지각변동이 점쳐졌던 것도 이런 이유다. 결과적으로 이재용 전무가 빠른 시간 안에 완전한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는 셈이다.
환영은 하지만 잘 될까?
결국 이런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한다는 기대감은 삼성그룹에겐 당연히 숨통을 조이고 있던 올가미를 벗는 느낌일 수밖에 없다. 금산법이 생기기 이전 보유하고 있던 주식에 대해서 만이라도 인정해 달라며 2005년 위헌소송을 냈던 삼성의 속사정이고 보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도 모자랄 터다. 지난 국감 때 논란을 몰고 왔던 ‘삼성은행 로드맵’도 단순한 검토가 아니라 당장 실현 가능한 현실일 수 있다.
다만 금산분리 완화 등 친기업정책이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이라는 점에서 차기 정부정책에 높은 비중으로 반영될 가능성은 크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시민단체 등의 부정적 여론형성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사례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 또한 파격적인 수준의 완화책으로 이어지긴 힘들지 않겠냐는 관측을 이끌어 내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