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있기까지는 ‘사고처리반’이 있어 가능했다.” 김용철(삼성그룹 전 법무팀장) 변호사가 인사팀 산하 노사담당이 경찰의 지원을 받으며 위치 추적, 감청 등 불법을 저질렀다고 폭로한 내용 중 일부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불법은 대게 노조 탄압을 위해 사용됐는데, 일이 해결될 때까지 당사자를 납치와 감금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걸까. 이에 대해 전직 삼성맨인 이재용(48)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시사신문>이 지난 12월19일 경남 마산에서 그를 직접 만나 봤다.
인사노무팀 말단직원은 다른 일반부서의 과장급 대우
문제사원 ‘MJ사원’으로 정하고 강·중·약으로 나눠 관리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는 ‘사고처리반’으로 불리기보다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파견된 ‘00지역 사무국’으로 불렸다. 사무국은 노동조합 설립을 막기 위한 대책반으로 활동하면서 각 지역마다 있었다. 지역 사무국에서 해당 지역에 속한 사업장의 인사노무팀을 관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해고당하기까지 삼성그룹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미행과 도청을 당했고, 심지어 테러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당시 함께 근무했던 많은 근로자들이 ‘사고처리반’으로부터 자신과 같은 불법행위를 당했다는 주장도 덧붙이고 있다.
이씨는 “해고당하기 전 삼성중공업의 인사노무팀은 30여명에 달했고, 이 팀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럼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회사 위해 불법 마다 안 해
이 문제에 대해 이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일반 사업장에서 인사노무팀이 30여명이라면 많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업무 부서별로 인원 차이가 있겠지만 사실 노사문제를 제외하고서 인사노무팀이 하는 일은 없다. 삼성이 보는 관점에서 문제 사원을 선발해 ‘MJ사원’으로 정하고 강·중·약으로 나눠 한 사업장 당 20여명씩 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보통 인사팀이 직원을 채용하고 전체적인 인사관리와 배치, 이동을 담당한다고 하면 삼성의 인사팀은 노동조합 설립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조직인 셈이다.
“사업장에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위원장이 선출되기라도 하면 그룹에서 골드카드를 준다고 들었다. 노사문제에 관련해서는 결제 금액 한도가 없다고 하더라. 결국 판공비가 무한정이라는 얘기다. 인사노무팀의 말단직원은 다른 일반부서의 과장급 대우를 받았으며 해당 소속 직원들은 퇴직 후에도 삼성의 관리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사노무팀 소속 직원들이 그룹차원에서 관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씨는 “회사를 위해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씨의 경우 1993년 노동자협의회에서 위원장으로 출마해 노조설립을 공략으로 내세워 50%가 넘는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자 인사노무팀으로부터 관리대상에 들어갔다.
“위원장으로 당선되자 며칠 뒤 인사담당 이사가 집에 찾아와 아이 옷이라며 백화점 봉투를 하나 놓고 갔다. 어차피 사온 거 받아달라고 부탁하길래 별 생각 없이 받았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돈다발이었다. 액수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약 3~4천만원은 될 듯싶다. 다음날 이사에게 찾아가서 당장 찾아가지 않으면 회사 내에 공고를 붙이겠다고 했더니 바로 찾아가더라.”
이씨가 인사팀의 의도대로 포섭이 안 되자 인사팀은 갖은 회유와 협박을 시작했다고 한다. 외국 가서 편하게 살게 해주겠다, 베트남 현지 가면 골프장만 관리만 해라, 평생 일 하지 않아도 삼성에서 돈 주겠다, 5억 줄테니 그만 둬라, 도대체 얼마면 되냐 등 온갖 회유책이 동원됐다.
그러나 이씨의 결심은 돈으로 꺾기지 않았다. 문제는 이후부터 인사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이씨의 행방을 24시간 감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씨는 품속에 칼을 가지고 다녔을 정도로 삼성으로부터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삼성의 모략으로 김정일 생일축하 선전물과 연루돼 대공수사부에 11번이나 끌려갔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죽일 수도 있다” 협박도
“한 번 다녀오면 병신 돼서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던 시절이었다. 고문기계를 옆에 두고 뭐하는 물건인지 물어보면서 겁을 주더라.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인데도 다음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사람을 아주 미치게 만들었다. 당시 더욱 힘들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일반 사원들은 정말 내가 빨갱이인줄 알았을 것이다.”
이후에도 삼성의 압력은 멈추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밤중에 삼성으로부터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테러를 당하기 이전부터 인사담당 이사와 인사팀장이 “몸 조심하라”면서 노골적으로 “죽일 수도 있다”고 5~6차례에 걸쳐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위원장의 전용차가 있었다. 그 차를 타고 여직원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넷이서 저녁식사 후 술 한잔을 한 뒤 헤어졌는데, 술 좀 깰 겸 차 안에서 의자를 뒤로 뺀 채 누웠다. 그때 누군가가 차 뒷유리를 깨고 둔기를 휘둘러 머리에 맞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피를 많이 흘려 걷기도 어려운 상태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헤어진 줄 알았던 여직원도 누군가에 맞아 차에 같이 타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서 경찰에 바로 신고했다.”
이후 삼성에서는 이씨와 여직원을 불륜으로 매도하는 공고를 붙였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입장을 위원장의 이름으로 공고하려 하다가 거절당했다. 경찰마저도 사건을 파헤치기는커녕 여자관계를 운운하며 이씨의 도덕성을 지적했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경찰 조사 결과 차량에 아무런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누군가 폭력을 휘두른 뒤 지문까지 깨끗하게 지웠다는 얘기인 셈이다. 삼성의 계략일 것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경찰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내가 몰고 다니던 차에 내 지문이라도 나와야 정상 아닌가. 경찰서에 난동을 피웠다. 사실 구속되길 바랬다. 그래야 이 같은 사실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찰은 자신들의 말처럼 기물파손과 업무방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구속하지 않았다. 대신 사건을 종결시켜야 한다면서 진술서에 사인을 계속해서 요구했다.”
사건은 경찰의 무성의한 수사로 인해 마무리됐고, 이씨는 삼성에 노조를 만들겠다고 공식발표했다. 이후 삼성은 이씨를 수원으로 발령했으나 응하지 않자 이를 핑계 삼아 징계위원회를 열고 해고시켰다.
“경영진 책임지고 사퇴해야”
“지금 심정은 덤으로 산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경우 당사자가 포기할 때까지 지방이든 해외든 끌고 다닌다고 들었다. 사주를 받은 사람은 아마 내가 죽을 줄 알았을 것이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끝까지 싸워야 하지 않겠나. 삼성의 외면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국민들이 선호하는 우수기업이지만 내면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룹이다.”
이씨는 삼성이 아직도 수많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도청은 물론 협박과 미행을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때문에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이번 삼성특검을 통해 삼성의 부도덕한 관습과 문제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는 “삼성이 망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경영진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