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 나방,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유리병 속 나방,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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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현 장편소설

지난 1990년, 이른 바 '김영현 논쟁'을 문단에 불러일으키며 민중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중견 작가 김영현(52)의 새로운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이 나왔다.

"나는 늘 일회적이고 덧없는 생의 너머에 그 무언가, 신이든 별이든, 혹은 다른 어떤 이름을 가진 것이든,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다. 그것을 헤겔 식으로 이성(reason)이 자기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역사라고 믿기도 했고, 때로는 초월적인 어떤 것, 우주의 심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절대적인 자유 같은 것을 꿈꾸기도 했다." - '작가의 말' 몇 토막

지난 2002년 끝자락, 장편소설 <폭설>(창비)을 펴냈던 작가 김영현이 4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을 펴냈다. 언뜻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家(가)의 형제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물신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과 그 탐욕에서 벗어나 새로운 별(희망)을 찾으려는 인간 존재의 뿌리를 샅샅이 파헤친다.

'어떤 죽음', '존속살인범', '늙은 신학생', '오래된 기억들', '어둠의 심연', '요한 신부', '죄의 근원', '바보 기덕이', '대동여인숙', '안개 속으로', '증오의 기원', '사건의 재구성 혹은 생의 의미에 대한 몇 가지 질문', '그리고 미소를'이 그것.

작가 김영현은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 한, 마치 유리병 속의 나방처럼 결국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언제나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차라리 탐욕과 악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훨씬 가까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모든 경전은, 성경을 포함하여, 인류가 지닌 탐욕과 피의 기록 이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꼬집는다.

이 소설은 조용한 소읍에서 살아가는 최문술(전직 마을금고 이사장)이 자신의 집에서 칼에 찔린 뒤 목 졸려 죽은 것으로 시작된다. 강력계 반장 장국진은 탐문 수사 끝에 최문술의 전처가 낳은 큰아들 최동연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최동연은 결국 존속살해범으로 체포된다. 하지만 최문술의 사십구재에 둘째 아들이자 최동연의 동생인 성연이 나타나면서 사건은 새롭게 이어진다.

최성연은 그의 형 동연이 범인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홀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성연은 최문술의 추악한 과거를 밝혀내고 형 동연도 깊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직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성연은 깊은 고뇌와 번민으로 괴로워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사건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파국으로 치달아가고...

김영현의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은 사람들의 속내에 깊숙이 감추어진 두 가지 본성, 즉 선과 악에 대한 뿌리를 더듬는다.

신에 대한 끝없는 물음과 무신론과 유신론, 지상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에 대한 고뇌, 이복형제와 새 어머니와의 원초적 갈등과 욕망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상극과 상생의 끄나풀을 쥐락펴락 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생은 과연 가치 있는 그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안긴다.

작가 박완서는 발문에서 "악령의 화신 같은 인간에게도 선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고, 평생 순명을 맹세하고 성직자의 길을 가던 아들은 그 길에서 구원을 찾지 못하고 고뇌한다"며, "한 핏줄을 나눈 개개인의 이런 극심한 자기분열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家(가)의 형제들>을 방불케 한다, 어쩌면 작가도 그것을 의식하고 썼을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시인이자 소설가 김영현은 1955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984년 창작과비평사 <14인신작소설집>에 단편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망명정부>가 있으며, 장편소설 <풋사랑> <폭설>이 있다. 시집으로는 <겨울바다> <남해엽서> <그후, 일테면 후일담>, 시소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펴냈다. 1990년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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