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슈아르의 '알렉산더'
절대불멸의 '신화'를 파괴하는 과정만큼 지켜보기에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 어딘지 선정적인 흥분감이 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비밀'을 캐내어 미스테리를 해독하는 추리소설적 재미가 역사서적 내에서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자잘한 재미가 끊임없이 샘솟는 것. 새로 출간된 프랑수아 슈아르의 '알렉산더'도 바로 이 계열의 작품들 중 하나로, 주목할 만한 점이라면 동일계열의 서적들이 지닌 선정적 방향의 '그것이 알고 싶다'류 미스테리 추적을 가능한한 배제하고, '신화'와 '역사'가 과연 어떤 식으로 갈라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간극은 어떤 종류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했다는 점일 것이다.
프랑수아 슈아르의 '알렉산더'는 전체를 1, 2부로 나누어, 1부에선 알렉산더 대왕에 얽힌 '신화'들을 언급하고, 2부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과연 알렉산더라는, 탁월한 정치가이자 용맹한 정복자의 '실체'를 드러내어 살펴준다. 얼핏 노먼 메일러의 논픽션 클래식 '밤의 군대들'의 구성이 생각나는 대목이지만, 메일러가 '픽션으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픽션'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여주었던 것보다는 형식적 실험이 덜하고, 오히려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인물의 이모저모를 모두 끌어 안으려는 '집합체적 서적'의 인상이 더 강하다.
한번 슈아르가 이 책을 통해 알렉산더라는 인물을 어떻게 나누어 보여주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알렉산더는 원정 중에 끊임없이 새 도시를 건설하거나 기존 도시를 확장시켜 전설적인 도시 건설자를 자처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이 도시의 건설에 관해서도 많은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아리아노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도시의 건설에 관한 이야기는 내게 그리 신빙성 있게 들리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렇다. 알렉산더가 인부들에게 성채의 설계도를 넘겨주었는데, 마침 그들에게는 땅에 선을 그릴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자 한 명이 밀가루를 생각해냈다. 병사들은 커다란 통에 밀가루를 담아 와서, 왕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밀가루로 선을 표시했다. 그러자 점쟁이들, 특히 알렉산더에게 수차례 올바른 예언을 한 적이 있는 텔메소스人 아리스탄드로스는 밀가루로 설계도를 그린 도시라 하여, 이 도시가 장차 번영할 것이며, 풍부한 땅의 소산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 '세상 끝까지 가보았던 탐험가' 중에서
"알렉산더가 통치하던 시절, 디오메데스라 이름하는 한 가난한 자가 그 앞에 끌려왔도다. 손가락까지 모두 결박당한 채, 바다를 약탈하는 해적이었기에 마치 도둑처럼 그렇게 끌려왔도다. 사람들이 그를 왕 앞에 데리고 갔으니, 그를 사형에 처하기 위함이었도다.
"너는 어째서 바다에서 강도질을 하느냐?"
그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는 어째서 나를 강도라고 부르느냐? 내가 보잘것없는 쪽배를 타고 바다를 달린다고 해서 그러는 것이냐? 만일 나도 너처럼 큰 배를 타고 다닐 수 있다면, 나도 너처럼 황제가 되었으리라.""
- '고대 말기와 중세 - 알렉산더의 영'> 중에서
"몽테뉴는 '가장 탁월한 사람들' ('수상록' 2권, 36장)에서 알렉산더를 주저하지 않고 호메로스 다음으로 2위의 자리에 놓았다. 그는 무려 60줄이 넘는 긴 문장을 끝에 자신이 카이사르보다 알렉산더를 더 좋아한 것은 옳은 판단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이 왕의 공공연히 알려진 자질들을 찬양하고, 그에 따른 결론을 내렸다.
근면성, 통찰력, 인내심, 규율준수, 치밀함, 관대함, 단호함, 낙천성 등과 같은 많은 군사적인 자질들, 순수하고 분명하며, 의무와 질투가 배제된 그의 영광, 그리고 그 영광의 기간과 크기, 또 잘못을 사과하는 의지 등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처럼 큰 단체를 정의라는 규칙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생각할 때 더더욱 그렇다. 이런 인물들은 그들의 행동의 주요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전체적으로 판단을 받아야 한다."
- '프랑스의 16세기 - 비교적 쇠퇴된 시기' 중에서
'알렉산더'에 수록된 이 세 단락은 이 책의 성격을 단박에 드러내어 줄 수 있을 정도로 통렬하며 세심한 것인데, 먼저 '세상 끝까지 가보았던 탐험가' 수록 단락의 내용은 알렉산더 '신화'에 대해 저자 슈아르가 의구심을 품고 지켜본 내용, '고대 말기와 중세 - 알렉산더의 영광' 수록 단락의 내용은 알렉산더 '신화' 그 자체의 것이고, 마지막 '프랑스의 16세기 - 비교적 쇠퇴된 시기' 수록 단락은 알렉산더에 대해 후사가들이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이해하고, 결국 '신화의 창조'에 앞장서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알렉산더'는 독창적인 서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입장에서 한 역사적 인물을 다각도로 파악해낸 서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BC356년에 태어나 BC323년에 바빌론에서 숨지기까지 3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산 인물이 루이 14세, 나폴레옹, 빅톨 위고, 앤디 워홀, 테오 앙겔로풀로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가와 정복자, 군주, 예술가들을 과연 어떤 식으로 매혹시키고 경도시키게 되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흥미로운 '영향'의 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알렉산더'는 어째서 알렉산더가 씨이저나 징기즈칸과 같은 여타 정복자들과 전혀 다른 위상을 지닌 채 현대에 알려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힌트'를 전해주는 책이기도 하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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