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합민주신당은 마지막까지 범여권 대통합이나 후보 단일화를 이끌어 내지 못해 대권을 한나라당에 헌상했다는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대책안 마련에 부심하다. 신당의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힌 수많은 파벌의 집합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 “흩어지면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분열의 움직임을 막고 있지만 ‘노무현 책임론’이 고개를 들며 친노와 비노의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창조한국당은 대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임과 동시에 총선을 겨냥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민주당은 당 쇄신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인제 후보는 ‘백의종군’을 외쳤고 임명직 당직자들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키로 결의하는 등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도 국민의 판결 앞에 자성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침울한 분위기에 빠진 범여권이지만 이들의 표정은 이후로도 그리 밝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이 이미 “총선에서는 과반을 넘자”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데 반해 범여권은 ‘책임론’과 ‘당권’으로 갈등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여 제 몸 추스르기에도 바쁜 상태라는 이유에서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총선. 하지만 범여권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기만 하다.
대통합민주신당 “흩어지면 죽는다” 책임론 앞서 당 화합 먼저
창조한국당 “130만표 밑천삼아 총선서 새로운 대안세력 될 것”
범여권에 북풍한설이 휘몰아치고 있다. 대선 패배에 따른 ‘책임론’과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못해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도왔다는 ‘대권헌상론’이 범여권 곳곳을 떠돌고 있다.
고개 숙인 신당 “분열은 안돼”
‘책임론’의 몸살을 가장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은 대통합민주신당이다. 범여권 단일화의 깃발을 들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지 않느냐는 비판을 호되게 맞고 있다. 총선까지 책임론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몸집을 지키는 것마저 힘들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당은 시민사회세력, 이해찬·유시민·한명숙·강금실 등으로 이어지는 친노파와 정동영·김근태 등의 비노파, 손학규, 민주당 계열 등 범여권 단일화 과정에서 모여든 수많은 이들의 이해집산이어서 총선까지 수많은 분열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당의 발목을 잡는다.
당장 정치권 일각에서 “이번 대선에서 ‘반노정서’가 한나라당으로의 표쏠림을 도왔다”는 말과 ‘노무현 책임론’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신당의 양대축을 형성하고 있는 친노와 비노가 격돌할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나라당이 이번 대선에서 과반을 넘지 못해 총선에서의 과반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마저 흩어지면 끝”이라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연신 강조하고 있다.
이미 대선 전 ‘이명박 특검법’을 통과시킨 후 “국민의 꼭 닫혀진 마음, 응어리진 마음이 풀릴지 자신이 없다”는 말로 당의 암담한 미래를 점친 당 최고 원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흐트러지지 않고 같이 굳게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동영 후보도 “국민이 저희의 손을 붙잡아주지 않았지만 저희는 하나가 돼 열심히 했다. 저희가 생각하는 가치와 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선거기간 내내 하나가 되어 싸웠다. 선거과정에서 단합했듯이 더 단단하고 진실해지고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가 국민으로부터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당이 하나로 뭉칠 것을 강조했다.
대선 털고 “총선 앞으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1백37만5천여 표, 5.82%를 얻었다. 당초 목표였던 10%대보다 저조한 성적이다. 하지만 문 후보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민의 숲’으로 들어가 국민 여러분과 함께 다시 뛰겠다. 저 문국현이 그 최선두에 서겠다”며 총선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후보는 “‘창조한국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를 저 문국현과 함께 실천해갈 창조적 미래 세력을 하나로 모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입문 넉 달 만에 얻은 130여 만의 밑천으로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끝내 후보단일화를 거부한데 대한 반감은 그에게도 ‘책임론’을 덮어 씌우고 있다. 문 후보측은 총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분열 움직임을 적절히 이용한다는 속내지만 신당에서 창조한국당으로 몸을 움직이는 세력은 적을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창조한국당과 신당의 단일화 협상이 깨진데다 창조한국당에 돈과 조직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창조한국당은 15%의 득표를 하지 못해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사용한 선거비용(선거비용 제한액인 4백65억9천3백만원 이하)을 한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대선 비용 대부분을 문 후보 사재로 사용한 당으로써는 앞으로 총선을 준비하는데 난제로 작용할 수 있다.
당 쇄신, 자성 “바뀌어야 산다”
쇄신과 자성을 통해 당을 뜯어고칠 기세를 보이고 있는 곳도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당은 대선 후 당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자리에서 최고위원을 포함한 임명직 당직자 전원이 사퇴하기로 결의했다. 박상천 대표도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대표가 후속대책 없이 사퇴할 경우 당이 표류한다는 이유로 회의 참석자 전원이 반대, 박 대표를 만류했다.
대신 민주당은 당 쇄신을 위해 당쇄신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표의 거취(전당대회 개최)를 포함해서 성역 없이 당 쇄신방안과 진로 등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박상천 대표는 “쇄신위원회에서는 나의 거취를 포함해 성역 없이 모든 것을 원점에서 검토해 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 “당 쇄신 없이는 총선도 위태롭다”
민주노동당 패배 원인 분석…새 바람 예고?
민주당의 당 쇄신 움직임은 ‘마지막’을 피해보려는 처절한 움직임이다. 선거 결과 그동안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이라 자부하던 호남지역에서의 참패가 당의 변화를 촉구했다는 것. 광주 1.1%, 전북 0.7%, 전남 2.4% 득표에 당직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총선이 문제가 아니라 당의 근간이 흔들리는 ‘최대 위기 상황’이라는 위기의식이 당을 흔들고 있다.
이인제 후보도 전국 16만7백8표, 0.68%라는 득표로 충격에 빠졌다. 이 후보는 “오늘의 이 시련을 견뎌내고 다시 재기해야 할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 백의종군하면서 당을 재건하는데 벽돌 하나를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거듭된 당내 후보단일화 촉구와 탈당에도 이 후보가 단일화에 응하지 않았다는 ‘책임론’으로 적잖은 충격을 떠안게 됐다.
박상천 대표는 “이번 대선 결과가 민주당의 지지기반 붕괴는 아니다. 첫째, 신당 후보가 호남 출신이라는 점 둘째, 선거 막판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후보사퇴 권유설 유포 셋째, 한나라당 후보와 신당 후보의 오차범위 접전설 유포 등으로 호남지역을 비롯해 선거막판에 신당으로의 표쏠림 현상이 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호남민심이 민주당을 떠났다는 분석은 사실과 다르다. ‘대선은 고향사람을 찍고 총선은 민주당을 지지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며 당이 총선에서 재기를 노려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노동당도 권영길 후보도 71만2천1백21표, 3.01%라는 저조한 득표율을 보인 것을 두고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노회찬 의원은 “민노당도 이젠 국민들이 책임을 묻는 대상이 됐다. 자신들을 대변해 줄 것으로 믿었던 국민들이 ‘민주노동당 밀어줬더니, 내가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고 자기들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고 느끼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창현 공동선대본부장은 “대선 결과가 워낙 좋지 않아 원인을 찾고 있다. 서로를 탓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당의 운명이 걸린 위기를 돌파하려면, 서로 마음을 열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며 대선 패배 후 책임론으로 당의 진로가 흔들릴 수 있음을 경계했다.
민노당은 총선 비례대표 후보 등록을 무기한 연기, 대선평가위원회를 만들어 대선 참패의 원인을 찾기로 했다.
권 후보의 부진으로 당내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당 경선에서 권 후보와 팽팽한 대치를 보였던 노회찬, 심상정 등 젊은 피가 당을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