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문자에 의한 학문’인가?
문학은 ‘문자에 의한 학문’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세기의 환경과 문학 2



어느 문학평론가는 최근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참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뜻에서 ‘회통(會通)’이라는 말로 우리 문학이 지향할 전망을 피력하기도 했고 각각의 단체에 소속된 분들이 다른 단체에도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난날의 문학적 환경을 타파하고 제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은 제 오랜 친구인 김동현 시인입니다. 워낙에 화엄적 도량을 지닌 분이라 사소한 구애를 훨훨 벗어나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저를 이 자리에 불러 세웠습니다.

문학인들의 모임인 이 자리에서,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각별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문학이란 의미는, 문학이 문자에 의한 학문, 즉, 인간 정서나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언어나 글로서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떠나, 오늘날에 있어서, 과연 그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문학 자체에 대한 규명과 함께, 오늘날에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 같은 것 말입니다. 이처럼 문학의 본질과 방향을 궁구해 보는 것이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의미를 한층 더 깊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잠시 사적인 이야기를 드립니다만 저는 지금 안산시 일동에 살고 있습니다. 일동이라는 곳은 안산에 사시는 여러분은 잘 아시겠지만 조선조의 실학의 대학자이신 이익 선생의 묘소 가 있는 곳이며 최근 성호 기념관도 지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저는 1991년에 그곳에 집을 지어 이사를 온 후 지금껏 거기서 살고 있는데 그곳이 지금 심각한 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난개발인 즉슨 무엇인고 하니 바로 다름이 아니라, 기존에 지어졌던 10년도 되지 않는 집들을 마구 허물고 거기에 고층 다가구주택을 짓는다는 겁니다. 저는 이 일에 반대를하고, 뜻이 같은 주민들과 연대를 하여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를 상대로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고 시정책을 강구토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일에 반대의 입장에 선 것은 단지, 교통문제, 주차문제, 상하수도문제, 전기통신문제 등 제 삶과 직접 이해관계가 대두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