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줄의 글로 간단히 묘사되어지는 그의 인생편력이었으나, 당사자들이 겪은 여러 가지 내면적 외면적 고통이야 어찌 쉽게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사람의 일생이란 긴 것 같지만, 몇 고비 사건을 치르고 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빠져 버리고 늙어 버리는 것이다. 박찬우 교수에게도 요즈음 늙음이 완연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백발은 한결 신비롭게 비치는 것이었다.
"아이구, 홍 교수님, 길고 긴 겨울방학 잘 지내셨습니까?"
박찬우는 가벼운 발걸음을 내쳐 옮겨 놓으며 인사를 했다. 그의 태도와는 달리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표정은 밝지를 못했다. 그것은 어느면 찌들어 있기도 했다.
식사를 잘 담은 식판을 들고 잠시 주춤거렸다. 홍 교수에게로 다가오기가 조금은 쑥스러운 듯했다. 사실 그럴 이유란 조금도 없는데도 말이다.
"박 선생님, 이리루 오세요."
홍 교수는 그에게 용기를 주고자 한마디 던졌다.
"아, 네."
그제서야 그는 쓸쓸한 미소를 흘리면서 홍 교수 맞은편으로 다가왔다. 그의 백발에 햇살이 내려와 신비로운 광채를 내며 반사되었다. 출렁거리는 백발을 이고 있는 얼굴은 핼쑥하게 느껴졌다.
맞은 편에 앉은 박 교수에게는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경련이 이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너무 긴장한 탓인 듯했다. 이 사연 많은 사람은 어떻게 지낸 것일까.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면서 식당이나 다방을 기웃거리며 지냈겠지. 쏟아지는 햇살에 신비로운 광채를 발하는 그이 백발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박 선생님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네 그냥 조금 허위적거리면서 지냈습니다. 홍 선생은 줄곧 서울에 계셨나요?"
"그럼요. 서울에서 꼼짝을 않았어요."
"좀 어디든 다녀오시질 않으시구. 난 사실 한 2주 가량 미국엘 다녀왔습니다."
"무슨 볼일이 있으셨던 모양이죠?"
"그냥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쓸쓸히 웃었다. 그의 웃음은 신비로운 백발의 광채와 결합되어 알 수 없는 고독감을 풍겼다. 그는 백발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얼굴의 구석구석이 잘 다듬어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결코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으나, 섬세하고 깨끗한 얼굴이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있고 난 후 그의 사생활이 어떤 누구나가 다소간의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으나 본인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간만에 만났기에 반가웠고, 그래서 동석을 했지만 역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였다.
한국의 대학사회란 것이 이렇게 조금은 묘한 데가 있었다. 자유롭고 한껏 이상과 진리의 욕망으로 차 있어 구성원들 상호간에 깊은 인간적인 우애가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도 적지 않다. 더구나 전공학과가 다르다거나, 종합대학의 경우 단과대학 별로 컴퍼스가 다를 때는 동료의식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