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쟁이'가 수필집은 무슨!"
"'전기쟁이'가 수필집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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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강수찬 첫 산문집

"'전기쟁이가 수필집은 무슨!' 하며 뜬금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이란 여러 빛깔의 조화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제겐 전기쟁이로서의 삶도 있고, 또다른 무엇인가를 추구해 보고 싶은 욕구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사람은 밥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다. 직장은 우선 밥벌이의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강수찬처럼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주어진 일정한 일을 하면서도 "또다른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삶의 빛깔이란 그 사람이 어느 분야에 탁월하고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특정한 한가지 색깔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거다' 라고 단정지을 수만은 없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까닭에 사람살이란 게 교과서처럼 그렇게 살아지는 게 아니지 않겠는가.

..."그 놈의 아카시아 향기에 꼬이가!"

30년 가까이 같이 살아온 아내의 푸념이다. 아카시아 향 탓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아내와 나의 청춘 시절을 거슬러 따라가면 그 언덕배기 어느 곳에 낯익은 오월향이 그리워진다. 그곳은 우리 둘이서 미래를 설계하고 초록빛 떨림에 한껏 정겨워지던 무대였다...

동갑내기 사촌누이의 친구로 만나 일년 가까이 사귀는 동안, 우리 둘 사이도 신록의 푸르름 만큼이나 깊어져 갔다. 늘 퇴근시간을 기다려 만나던 직장의 지하다방, 그곳에서 완월폭포까지는 오르막 시오리 길이었다. 아카시아 꽃잎이 하얀 솜이불같이 펼쳐진 아름다운 숲은 그 향기만으로도 청춘남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추억은 길을 멈추지 않는다' 몇 토막



오랫동안 마산문화방송 기술국에서 전기 관련 일을 하다가 지금은 문화전기사 대표직을 맡고 있는 '전기쟁이' 수필가 강수찬(55)이 자신의 삶의 흔적을 솔직하게 기록한 첫 산문집 <추억은 길을 멈추지 않는다>(고요아침)를 펴냈다.

'그리운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눈시울이 젖는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산문집은 말 그대로 추억 속으로의 여행을 통해 자화상을 더듬어가는 과정이다. 아니, 한마디로 잘라 말하자면 강수찬의 '사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 '사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힘겨웠던 날들을 곰곰이 되짚어 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읽는다.

...두 칸 방 초가집의 새벽은 여덟 식구들의 세숫물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집 근처 공동 세미(우물)에서 이웃들과 차례를 기다려 두레박으로 양철동이에 물을 퍼 온다. 그 한 양동이의 물이 온 식구의 세숫물이지만, 그나마 하나뿐인 연탄화덕에는 한 대야의 물을 데울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물은 부지런한 이의 차지였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찬물에 손을 담궈야만 했다. 손이 시렵기도 하고, 바쁜 시간에 쫓기기도 하여 고양이 세수를 할라치면 "야 이놈아, 모가지 좀 씻거라"하는 어머니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땅 속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샘물은 바깥 기온과의 온도 차이 때문에 미지근함을 느끼지만, 빨래비누로 머리라도 감으려 하면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아 세발은 열흘에 한 번 정도였다...

우물에서 퍼올리던 세숫물과 샤워기에서 힘차게 뿜어 나오는 따뜻한 목욕물은 변화의 단면을 한 마디로 보여준다. 그도 모자라 이제는 찜질방이다, 콜라목욕이다 하여 종류도 많고 현란하다...

물지게에서 샤워기로 변화되는 동안,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변화되었지만 결코 물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마음도 그랬으면 싶다. 언젠가 따뜻한 정감을 담은 지갑 속에서 나온 '목욕값'의 소중함이 그리워진다...

인용한 글은 '그리운 목욕값'에 나오는 이야기 몇 토막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던 이야기와 명절 때 한 번 정도 하는 목욕, 여름날 완월폭포에서 묵은 때를 벗기는 이야기를 더듬는다. 그리고 전기쟁이로 일할 때 사장이 고생했다며 주는 목욕값을 떠올리며, 그 목욕값이야말로 서로서로 기름때를 씻어주는 소박한 인정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새삼 되새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어떠한가. 서로 발가벗고 앉아서 등을 밀어주던 인정 어린 목욕탕, 그 목욕탕이란 이름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목욕탕 간판이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온통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사우나', '찜질방' 등의 이름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목욕탕이란 이름이 사라지면서 사람 사이의 인정도 함께 사라져 버렸지 아니한가.

...비 내리는 선창가, 전봇대의 가로등 불빛 아래 우산을 받쳐 든 두 연인의 그림자가 다정하다. 그들 맞은 편으로는 한 취객이 연인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민망한 소변을 본다. 이 대조적인 광경은 전봇대가 아니면 연출되기 힘들다.

흔히 키 큰 사람을 전봇대 같다고 하고, 숫개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전봇대이기도 하다. 우리 어릴 때는 검정색 나무 전봇대가 주를 이루었다. 이 비스듬히 서 있는 전봇대와 전봇대에 연결된 전선에 앉은 제비들의 모습이 지난 시절의 사진처럼 선명하다...

비 오는 날, 전봇대 아래서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이 왠지 위험해 보인다. 누구나 고전압 전선을 연결한 전봇대를 지날 때는 괜히 소름이 돋기도 한다. 혹시 누전으로 인하여 금방이라도 감전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모든 전봇대는 대지와 맞닿아 있어, 피복이 없는 전선에 가까이 접근을 하지 않으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전봇대' 몇 토막

전봇대.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 곳곳에 우뚝 우뚝 서 있는 전봇대에 얽힌 추억 한 토막쯤 있을 것이다. 저자 또한 그런 기억을 슬며시 들추어낸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전기쟁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전기 역시 위태로운 세상살이처럼 위험하지만 잘 다스리고 이용한다면 충실한 친구가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정말 '전기쟁이' 답게 꼬집는다. 안전과 미관을 이유로 전봇대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그리고 기존 배전선로의 전봇대를 없애고, 지하 케이블을 매설하면 열 곱절이 넘는 시설비가 든다고. 그런 까닭에 저자는 전봇대의 설치를 통해 남을 위해 살지는 못해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일깨운다.

이처럼 강수찬의 첫 수필집 <추억은 길을 멈추지 않는다>는 추억과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삶의 본질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그리하여 물질만능으로 흥청대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꼬집기도 하고, 그 모순의 근원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모순의 본질을 해체시키면서 전깃불처럼 환한 삶의 뿌리를 찾아낸다.

"난생 처음 한 권의 책을 냅니다. 늘 사서 보던 것이었고, 제 생애엔 잡히지 않을 무지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틈틈히 써둔 글에 선배문인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첨삭을 하고, 퇴고를 하였습니다."

'전기쟁이' 수필가 강수찬은 194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2002년 계간 <문학사랑>에 '단상3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품활동 이전에는 오랫동안 마산문화방송 기술국에서 전기와 관련된 관련된 일을 했으며, 지금은 전기공사업을 취급하는 '문화전기사' 대표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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