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에 시달리는 당신, 나에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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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광기의 해방감,〈닥터 이라부 〉

부하 직원에게조차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를 두려워하는 회사 고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회사 선배는 사는 게 영 죽을 맛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것까진 그런 대로 봐줄 만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너무 심하다. 바람난 자신의 아내에게 “너 왜 날 배신했냐?”며 당연한 분노를 표출할 줄도 모른다. 어쩌다 이 남자는 이 지경이 됐을까? 성격 탓일까? 전형적인 A형인가.

하긴 A형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이 남자의 고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A형 피를 다 뽑고 B형이나 O형으로 바꿀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면 이 남자는 여생을 이토록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하나.

데츠야(최병모)는 지독한 소심증 때문에 제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안으로 지그시 눌러놓기 일쑤다. 당신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외견상 정신병자보다 더 환자 같은 닥터 이라부(구도균)는 데츠야에게 화가 나면 그 화에 자신을 맡기라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이라부는 데츠야에게 아내를 찾아가서 따귀라도 한 대 시원하게 갈기라고 말을 한다. 허나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 아내를 본 데츠야의 마음은 다시 한없이 약해진다.

▲ 현대인은 이제 의사로부터 분노하는 법을 배울 정도로 의존적인 존재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동경의대에서 연락이 온다. 데츠야의 병을 알고 치료해주겠다는 것이다. 데츠야는 마지막 희망을 품어 본다. 하의를 내린 데츠야의 지속발기증에 걸린 ‘그것’을 보던 의사는 간호원에게 사진을 찍으라며 증상을 묻는다. 데츠야는 묻는 말에 있는 그대로 답변한다. 그리고는 갑자기 진료가 끝이 난다. “이게 뭡니까?”라고 묻는 데츠야의 질문에 대해 의사는 “내 학생들에게 표본용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럼 치료해 주려고 날 여기까지 부른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라면서 의사의 진료 카드를 빼앗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데츠야는 짐승의 울부짖음을 토해낸다.

다음날 구치소를 찾아온 이라부는 데츠야에게 두부를 건네준다. 데츠야는 이라부의 손을 잡고 “선생님 제 병이 다 나았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원상태로 돌아갔단 말입니다”며 기뻐한다. 발작적인 분노의 폭발이 성기로 몰린 피의 흐름을 분산한 결과 데츠야는 긴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다.

공연예술 전문제작/기획사인 <투비컴퍼니>의 <닥터 이라부>는 남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심리적 문제로 고통을 받는 현대인들의 이상심리를 고쳐주는 닥터 이라부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원작은 베스트셀러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인더풀>의 에피소드.

김동연의 스피디한 연출로 무대에 오른 <닥터 이라부>는 뾰족한 것만 보면 오금을 못 펴는 야쿠자 중간보스 세이지(김구경)와 모든 남자를 스토커로 착각하는 27살의 도우미(김채린)의 강박증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인의 어두운 이면을 간헐적인 웃음으로 풀어놓고 있다.

이라부 박사와 간호원 마유미(박아인)가 이들 환자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긍정한다는 점’에 있다. 자신의 결점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며 자신의 장점은 서슴없이 자랑하며 흐뭇해한다. 억압받는 심적 에너지가 마음 어디에 고일 데가 없다.

매혹적이며 다소 무자비한 느낌의 마유미 간호원은 사계절 내내 초미니 간호사복 차림으로 손에는 ‘굵은 주사기’를 들고 설치며 돌아다닌다. 할 일 없으면 소파에 벌렁 누워 록(Rock) 잡지를 보는 게 취미다. 별 말도 없다. 이라부가 시키는 대로 따를 뿐. 일견 아무 생각 없는 자동인형 같은 이미지도 풍기지만 그 어떤 그늘진 욕망의 억압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어떤 컴플렉스도 느껴지지 않는다.

▲ "어떻게 모든 남자가 나를 스토킹할 수 있어요?"
간호복만 입히고 마유미를 깊은 산 속 옹달샘 근처에 갖다 놔도 혼자서 물 마셔가며 잘 놀 것만 같은 사람. 이런 부류의 사람은 초탈(超脫)한 사람이랄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 안에서 쉽게 옮겨붙을 수 있는 마음의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결국 이라부 박사가 우리들에게 깨우쳐주고 싶었던 것은 ‘삶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어떻게 삶을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각자의 절실함에 달려 있다.

만화적인 캐릭터와 빠른 무대 전환, 원작의 등장인물의 비정상적이고 광적인 특징을 잘 살린 배우 캐스팅(특히 구도균과 박아인) 등 흥행성공 요인이 돋보인 <닥터 이라부>는 2008년 1월13일까지 대학로 상상화이트 소극장에서 환자들을 진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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