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살려면 마음이 시골을 닮아야 합니다. 시골 같은 마음, 어울려 사는 기쁨과 방법을 알면 도시에 살아도 시골에 사는 게 되겠지요…. 내가 행복하려고 하기보다 남을 행복하게 해서 그 모습을 보고 나까지 행복해지는 삶. 그걸 당신의 마음속에서 일구어나가시기 바랍니다. 거기가 시골입니다."
2000년 초여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오랜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거제도 남단의 작은 마을 저구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튼 시인 이진우(39)가 2003년 2월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산문집 <저구마을 아침편지>(열림원)를 펴냈다.
이 책은 제1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에 '풍경', '이발사', 쑥국', '소풍', '봄비' 등 25편, 제2부 '학교나 집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을 아이들은 자연과 뒹굴면서 알게 됩니다' 에 '조개잡이', '까치둥지', '우물', '장마의 추억', 상추 솎기' 등 25편을 포함, 모두 50편의 산문이 갯내음과 흙내음을 폴폴 풍기고 있다.
돼지 아홉 마리가 산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저구리'.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 아버지의 소유인 '집 한 채와 거기에 딸린 몇 평 안 되는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삶은 생각처럼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다. 글을 써서 인세라도 받으면 밭뙈기라도 조금 사려고 했지만 땅값이 너무 비싸 엄두를 못냈다.
그래서 이씨는 사는 집을 개조해 민박업을 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스로 시골 사람이란 명함조차도 함부로 못 내민다. 왜냐하면 "시골에 살고는 있으나 도시에서 수입을 얻고 있으니, 시골 사람들이 봐도 한심하고, 도시 사람들이 봐도 한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집 바로 앞으로 농로가 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마을의 논과 밭이 쭉 펼쳐져 있습니다. 새벽부터 마을 어른들이 일하러 가는 바람에 잠귀 밝은 아내는 새벽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농로 바로 건너에 있는 폐가에서 닭을 키우고 있는데, 장닭 목청이 대단합니다.
부산 하나 바쁘거나 시끄럽지 않은 시골 마을의 하루는 노을과 함께 저물어갑니다. 경운기가 줄 이어 털털거리며 마을 쪽으로 몰려가면 부엌에서 저녁밥 짓는 냄새가 풍겨 오지요. 밥상을 물리면 어두운 창밖은 벌써 적막강산입니다. 막차가 도착하면 마을은 마음을 놓고 잠이 듭니다. ('풍경' 몇 토막)
시골에 살면서도 시골 사람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씨. 그의 네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은 저구마을의 입구이자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다. 그들은 연료비를 아끼느라 한방에 모여 잔다.(<가족 잠자리> 중)그러나 행복하다. 왜냐하면 가족끼리 사랑을 주고 받는 일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
또한 시골에서의 삶은 도시에서의 삶처럼 무언가에 쫓기는 듯 늘상 바쁘지가 않다. 게다가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겪어야 하는 혼돈과 혼란도 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인사를 해도 그를 같은 마을 사람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도회에서 내려온 그의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 민박업을 하고 조그만 텃밭까지 열심히 가꾸고 있지만 그의 가족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언젠가 저구마을을 떠날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와 그의 가족은 진정한 시골 사람이 되기 위해 텃밭을 만들며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쓴다.
사흘 만에 텃밭이 완성되었습니다. 사흘 내내 아침부터 노을 질 무렵까지 삽으로 흙을 나르고 축대를 쌓았지요. 몸은 고단하였으나, 밭이 조금씩 모습을 갖춰가는 것을 보니 멈출 수가 있어야지요. 꼭 그릇을 빚는 것만 같았습니다. …평소에 별 인사 없이 지내던 건넛집 정 선생께서 두릅 두 그루를 갖다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텃밭을 둘러보고 한마디씩 거들었고요. 마을 사람에게 시멘트 위에 만들어놓은 그 밭은 거대한 화분이었지만, 바로 그 못난 점 때문에 우리는 그 밭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텃밭' 몇 토막)
하지만 오랜 도시 생활을 한 이씨와 그의 가족에게 시골 생활은 아직은 서툴고 부족한 게 너무나 많다. 그러나 "바로 그 못난 점 때문에" 그는 그의 가족이 정착한 저구마을과 이 마을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 그의 표현대로 스스로 시골을 닮아가고, 시골 같은 마음, 어울려 사는 기쁨과 방법을 알기 위해서.
그래서 그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텃밭을 일구고, 마을 앞 바닷가에 나가 낚시를 하고, 마을 밭둑에서 자라는 쑥을 캐내 쑥국을 끓여먹고, 집 뒤편에 있는 오래된 우물을 청소한다. 그리고 봄비를 바라보며 그 비가 채 녹지 않은 땅의 품속까지 스며들어야 게으른 씨앗들이 봄이 온 줄 알고 싹을 틔운다는 것을 새롭게 깨친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시골로 와서 살게 되면 모든 게 낯설기 마련입니다. 서울에서 거제도 남단에 있는 이 마을로 올 때는 이사 가는 게 아니라 이민 가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도시는 번잡하고 찌들고 각박하지만 시골은 한가롭고 평안하고 정감 넘친다는 관념 조차도 지웠습니다."
이씨의 산문집 <저구마을 아침편지>는 오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 시골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가족들의 삶과 그 마을 사람들의 자잘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시골일기'이다.
이 일기를 통해 이씨는 가난하지만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시골사람들의 모습에 동화되며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아름다움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