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대통령'과 불교계의 숙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이자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박광서 교수는 정치와 종교의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글을 <시사포커스>에 보내주셨다. 특히 대승불교의 '보살'을 언급하며 종교는 '낮은 자'의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은 되새겨볼 만하다.
올해에는 안티기독교와 기독교 사이의 공식적인 토론을 시작한 해로 훗날 사가들은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대화는 편견의 확인'이란 김용옥 선생의 말을 새삼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앞으로 안티기독교의 <안티성>이 단순한 기독교 비판을 넘어 '기독교를 넘어서' 라는 새로운 종교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이 글의 게재를 요청한 기자에게 선뜻 허락해준 박광서 교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김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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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은 실종
정말 다사다난했던 정해년(丁亥年)을 대선으로 마감했다. 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도 없고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알아볼 겨를도 없이 기싸움만 구경하다가 투표한 기분이다. 그러다보니 분풀이하듯 ‘묻지마 투표’를 한 사람도, 찜찜하지만 대안이 없다며 투표한 사람도 상쾌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또 많은 사람들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상관없다며 투표 자체를 외면해버린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시대정신’은 실종되고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대통령이란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매우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그래 주길 바란다. 특히 “위기에 처한 경제를 반드시 살리고, 분열된 우리 사회의 화합과 국민통합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다짐했다. 추진력과 도덕성 사이를 아찔하게 줄타기했고,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당선자이기에 반드시 해줘야 할 그의 몫이다. 그동안 공사(公私)의 엄격한 구분이 지도자로서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알아차렸을 것이고, 빠른 머리 회전보다 한 숨 거른 신중한 말이 필요하다는 것도 절감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러나 한 가지 믿음이 가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있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당선자의 말대로 자신을 낮춰야 하는데, 종교문제만큼은 낮은 자세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된다. 독선적인 기독교와 무책임한 정부를 생각할 때 이명박 정부에서 더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란다면 지나칠까. 그동안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 봉헌’ 등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종교편향적 언행을 했던 전력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보수 기독교계의 ‘장로대통령 만들기’ 움직임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을 감안하면 당선자의 행보가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단순한 기우만은 아닐 수도 있어서다.
'마땅히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불교계는 시대흐름을 차분히 지켜보고 사회와의 관계설정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여 불교계에 간절히 바란다.
첫째, 교단내부 정리가 시급하다. 교단 내 권력싸움으로 날이 샌다면 불교의 앞날엔 희망이 없다. 배는 기울고 있는데 자기 보따리만 챙기고 있는 격이다. 교계 안에서는 자리다툼으로 출가자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언행마저 마다하지 않으면서 정작 사회로부터 오는 부당한 대우나 불의에는 반짝 대응 아니면 관용이니 무애(無碍)니 하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소위 교계지도자들의 위선은 슬프기까지 하다. 불자들이 위축되어 기를 펴기 어려운 이유다.
둘째, 세상을 껴안으라. 피해의식과 자폐증에서 벗어나야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산중에 갇혀 있거나 경전 속에 묻혀 있어서도 안 된다. 불교는 사회와 호흡하고 소통하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 사회의 고통과 구조적 모순은 불교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누군가 나서서 해주겠지 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노예근성이요 무임승차에 다름 아니다. 특히 불교가 종교인권의 침해와 종교적 차별을 방관해온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이 될 수 없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정치보살 경제보살 통일보살 인권보살 환경보살 복지보살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전파라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위해서 뿐 아니라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연기(緣起)의 법칙이고 동체대비요 공업중생(共業衆生)의 가르침 아니겠는가.
셋째, 정치권과 거리를 두라. 종교지도자의 오해받을 행동은 금물이다. ‘무심’(無心)과 ‘의식 없음’이 혼동되고 ‘겸손’과 ‘비굴’이 구분되지 않으면 지혜롭고 용기 있는 종교지도자가 아니다. 권력의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며 떳떳치 못한 이익이나 챙기려 든다면 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정치인이 찾아오는 것을 품위 있게 물리칠 줄 알아야 하고, 더구나 자청하여 만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 종교 입장에서 보면 정치권력은 ‘꿀’이기보다 ‘독’이기 십상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국민과 함께 하라. 2007년은 유난히 종교가 사회문제인 한 해였다. 우리 사회의 이념과잉 못지않게 종교과잉이 국민을 피로하게 만든 감이 없지 않다. 강의석씨 사건의 승소로 종교자유와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을 재확인한 성과도 있었지만, 사립학교법 공방과 아프간 피랍사건으로 기독교의 오만과 권력화에 분노했고 동국대 신정아 사건과 주지선거와 관련된 돈거래와 패거리문화로 불교계는 국민을 얼마나 실망시켰는가. 불교만의 입장에서 벗어나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바르게 판단하고 당당할 수 있어 사회적 신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종교로 세상을 말해 왔지만 이제는 세상으로 종교를 말해야 할 시대인지도 모른다. 무자년(戊子年) 새해에는 ‘머무르는 바 없이(應無所住) 그 마음을 내(以生其心)’, 세상을 껴안는 불교, 국민의 행복과 고통을 함께하는 불교로 거듭나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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