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가(家)의 갈등을 표출한 이른바 ‘형제의 난’은 두산그룹에겐 깊은 상처다. 그룹의 이런저런 비리 문제가 표면화된 탓도 있겠지만 가족간 우애가 철저하다 못해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오너 가문에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더 깊은 상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현재 경영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쌓인 앙금을 털어 내고 ‘제2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잇따른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의 체질 자체를 송두리째 바꿨고, 글로벌 행보에도 날개를 달았다. ‘형제의 난’ 이후 지배구조개선 로드맵을 발표했던 만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중심이던 오너 일가의 앙금은 깨끗이 해소된 것일까. 또 경영에서 손을 뗐던 오너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시사신문>이 두산 오너 일가의 어제와 오늘을 좇아봤다.
박용성·박용만 등 오너 일가 모두 ‘경영복귀’
박용오 부자는 여전히 가문과 결별 ‘독자행보’
두산그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1886년 두산상회가 출발점이다. 1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업 활동을 하면서도 오너 일가의 갈등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때문에 재계에선 지난 2005년 불거졌던 ‘형제의 난’이 그만큼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해석한다.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가족간 우애가 돈독한 것으로 유명했던 만큼 이런 해석이 따라붙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은 두산가문의 오랜 가풍이다.

이런 맥락에서 ‘형제의 난’은 오너 일가에게 앙금으로 쌓일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시선이다. 말 그대로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가족 내부의 다툼에 머물지 않고 외부적으로 표면화된 첫 사례라는 점 때문이다.
‘형제의 난’은 2005년 당시 두산가 2남인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3남인 박용성 당시 회장을 그룹회장으로 추대한 인사에 반발해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5남) 부회장의 1천7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이런 폭로는 곧바로 검찰 투서로 이어졌고, 박용성 회장 등이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맞섰지만 이내 검찰 수사에서 비자금 조성 단서가 포착돼 파문이 일파만파 확대됐다.
당시 두산그룹은 검찰 수사와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2천8백여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을 자진 공시하는 일종의 고해성사를 하기도 했고, 두산신용협동조합, 두산포장 및 삼화왕관 등의 그룹 전반적인 문제들이 속속 터져 나왔다.
결국 박용오, 박용성, 박용만 등 오너 일가는 ‘형제의 난’ 이듬해인 2006년 법원으로부터 특가법상 횡령과 증권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 및 집행유예 등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그룹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잠시, 오너 일가의 경영참여가 속속 이루어졌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 등에선 경영컴백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족벌경영의 치부를 드러냈던 오너 일가가 2년도 되지 않아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이 그룹 투명성과 도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형제의 난’ 중심에 섰던 박용성 회장은 당시 전문경영인 체제 등으로 투명한 경영을 하겠다고 그룹 안팎에 공표까지 했지만 2007년 초 단행된 특별사면 직후 기다렸다는 듯 ‘경영참여’(두산중공업)를 공식 선언했고, 동생인 박용만(2007년 12월30일 회장으로 승진) 부회장도 특별사면 이후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을 맡으며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로 인해 두산 오너 일가 형제들은 폭로를 시작했던 박용오 전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그룹 핵심 계열사를 다시 접수한 셈. 의학박사이자 연강재단 이사장인 박용현(4남) 회장까지 두산건설을 통해 경영 전면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 아들 박정원(두산건설), 박지원(두산중공업)과 박용성 회장 아들 박진원(두산인프라코어), 박용현 회장 아들 박태원(두산건설) 등 창업주 4세들도 경영에 두루 포진해 있다. 이들은 사실상 지주회사로 꼽히는 (주)두산의 꾸준한 지분매집에 나서고 있어 재계 일각에선 ‘후계승계를 준비하는 모습’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폭로 당사자 집안은 배제
두산 오너 일가의 경영행보가 이처럼 물살을 타고 있지만 ‘형제의 난’을 촉발시킨 박용오 전 회장은 아직 두산과 관련된 어떤 행보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두산 오너 일가와 사실상 결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문으로부터 완전히 제명당했다’는 얘기까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박용오 전 회장의 두 아들도 두산 경영에선 완전히 배제된 상태다. ‘형제의 난’ 이전에 이미 두산 경영과 결별하고 독자행보를 걸었던 장남 박경원(전 전신전자 사장)은 그렇다하더라도 두산건설 상무에 있다 ‘형제의 난’ 여파로 부득이하게 해임 당했던 차남 박중원(전 뉴월코프 사장)은 사촌형제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박중원은 2006년 3월 자신이 보유하던 두산산업개발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2007년 코스닥업체인 뉴월코프를 인수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회사경영권을 넘기고 ‘와신상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