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인구의 53%가 종교인
전체 인구의 53%가 종교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일신 종교가 상대적으로 공격적'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쉽지 않지만,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개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 걸음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물으면 백인백답이기 십상이다. 어떤 이들은 돈이, 또 어떤 이들은 권력이나 명예가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그것들을 쫓아 살아간다.

한편 그것들만으로는 뭔가 허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기도 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종교 인구는 불교 22.8%, 개신교 18.3%, 가톨릭 10.9%, 기타 1.0%로 총 인구의 5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한다. 우주와 생명, 그리고 고통의 근원이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이겠지만, 무엇보다 우리네 삶이 각박해서가 아닐까 싶다.

궁극의 진리가 무엇인지는 종교마다 다르게 설명할지는 몰라도 사람 사는 방식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것들이 있다. ‘자신은 적게 가지되, 이웃과 생명을 돌보라’는 가르침 말이다. 그래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없는 자와 약한 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존경스럽기도 하다. 또 종교인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보기에도 좋다. 10여 년 전부터,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불교는 크리스마스에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 기독교는 초파일에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정겹게 한다. 또 1998년부터 가톨릭 수녀, 불교 비구니스님, 원불교 교무들은 삼소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달 한 번씩 기도 모임을 갖고, 지난해에는 19일 동안 각 종교 성지를 함께 순례하는 등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하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드물게는 상대 종교의 성직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기도 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평화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여러 종교나 전통이 함께 공존 가능하려면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념 못지않게 다른 전통이나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과 존중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세계는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펼쳐질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지구상 어디에도 우리나라만큼 여러 종교가 균형 있게 공존ㆍ공생하는 곳은 없다고들 하고 종교인구도 증가 추세라는데,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사회가 되기보다 증오와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학자의 말대로 우리 사회는 종교로 인해 언제든지 충돌할 가능성이 큰 ‘불안한 동거’라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돼서일까. 그것은 종교가 열릴 때는 한없이 너그럽다가도, 닫힐 때는 바늘 끝도 안 들어갈 만큼 좁기도 한 것이 또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극소수 광신도들의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행위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 일어나는 사찰 방화와 불상 파괴는 과연 종교인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은 뜸하지만 한때 목이 잘린 단군상도 초등학생들에게 보이기 거북한 장면이었다. 또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공공연히 협박까지 하고 다니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난다.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일상생활에서 가족 구성원 또는 직장 동료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갈등은 또 얼마나 소모적인가.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것은 ‘서구 역사는 4백여 회의 종교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종교가 전쟁에 직간접으로 깊숙이 개입되어 온 사실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교만한 독선의 열매는 곳곳에서 타종교인들에 대한 무례와 공격으로 이어지고 오히려 그것이 신앙행위로 치부되는 무식함이 만연하고 있다. 다른 종교에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영어에 존댓말이 없으니 예절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영어권의 사람들은 아이들이나 할아버지에게 똑같이 ‘You’라고 말하니 버릇없는 상놈들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호주에서 14년 동안 내가 경험한 그들의 예의범절은 오히려 우리들보다도 더 철저하고 엄격하다. 다만 그 내용과 방법이 우리들과 다를 뿐이다”라면서 종교 간 깊이 있는 이해와 존중이 절실하다고 역설한 호주연합교회 올드 퉁가비 목사의 말이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렇게 열린 종교인들이 얼마나 될까.

화합에 앞장서기는커녕 사회 분열을 부추기는 것이 종교일 수는 없다.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선택한 종교가 오히려 자신을 가두고 남과의 갈등을 조장한다면 종교가 과연 왜 필요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종교가 뭐길래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고 불안을 주기도 할까. 그러나 개인적인 광신적 행위보다 우리를 더 힘겹고 고민스럽게 만드는 것은 체제화ㆍ권력화 된 종교계의 독선과 공격성이 아닌가 싶다. 특히 국민 누구나 공유해야 할 공공영역에서의 종교계의 구조적인 인권침해와 종교적 차별 및 소외가 우리가 우려할 사안이며, 최근 수 년 간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오른 이 문제의 해결 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선진사회는 결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의 필자 박광서씨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이자 서강대 물리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