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점차로 달라지는 '북한'에의 시각, 그러나 여전히 공격적이다
최근 트레이 파커 감독의 인형 애니메이션 '팀 아메리카: 월드 폴리스'를 놓고 국내 문화계는 물론 정치계에서까지 여러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먼저, '사우스 파크'로 잘 알려진 풍자와 조소의 '제왕' 트레이 파커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미국의 영화배우가 북한에 침투하여 싸운다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가 '북폭 위협을 명시한 영화'로 오해되는 일이 벌어졌었고, 이어 '북한'을 '조소의 대상'으로 삼는 미국인들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가 솟아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영화 속 배경으로 삼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분명 '팀 아메리카: 월드 폴리스'가 탄생하기까지 미국의 영화인들이 북한을 바라본 시각에는 모종의 '흐름'이 있었을 법도 한 일이다.
한국전을 다룬 헐리우드 영화들
기묘하게도,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헐리우드가 만들어낸 한국전 영화들에는 단 한가지 공통점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북한'을 절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 영화들은 오직 남한의 국군들만을 다루고 있으며, 인민군을 다룰 시에는 오직 '적', '상대편' 정도의 장치적 요소로서만 북한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정치체계도, 전쟁의 목적도, 여러 갈등상황도 모두 헐리우드에선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한국전을 다룬 첫 번째 반전영화인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매쉬'('70)의 경우에는, 아예 '북한'과 '인민군'을 다루고 있지 조차도 않다 - 사실 이 영화는 우리 '국군'도 다루고 있지 않다. 오직 6.25 전쟁시 야전병원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의사와 간호사들만을 다루고 있을 뿐.
왜 이런 방향성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헐리우드와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국지적 요소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오직 '전투' 그 자체의 흥분감과 어느 전쟁에서나 터져나올 수 있는 반전 메시지를 담아내는 일만이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가, 베트남인가, 페르디난드 페어팩스의 '레스큐'
베트남전의 패배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을 지나, 마침내 '북한'이 다시금 헐리우드 메이져 영화의 소재로 떠오르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프레데터'의 각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짐 토머스-존 토머스 형제의 '북한' 소재 각본 '레스큐'가 TV계의 베테랑 페르디난드 페어팩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것.
그러나 불행히도, '레스큐'는 북한을 다룬 최악의 영화일 뿐 아니라, 당해에 헐리우드에서 제작/공개된 영화들 중에서도 최하위급의 평가를 받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레스큐'는 북한을 찬찬히 다룬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북한으로 침투해 인질들을 구출한다는 내용의 말도 안 되는 어린이용 블록버스터였고, 그나마 북한을 다루는 시각조차도 가장 기본적인 '조사'조차도 해보지 않은 채 이루어져 배경이 도무지 북한이 맞는지도 의문이 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레스큐'에서 보여지는 '북한' 주민들은 마치 베트남 주민들처럼 머리에 삿갓을 쓰고 다니며, 장교들의 모습은 2차 대전 영화에나 등장하는 나찌 장교들의 딱딱하고 경직된 모습 그대로이고, 아이들이 이들의 포위망을 뚫고 인질구출에 성공할 정도로 조악한 군사체계를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배우도 극중 태권도 사범으로 등장하는 심성술을 제외하곤 모두 비한국인 아시아계 배우들을 고용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찌됐건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의 '북한'의 컴백은 '북한'의 실제 모습과 전혀 다른 그것으로 등장했으며, 이 시기까지만 해도 헐리우드는 북한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다는 점 정도는 기억해둘 만하다.
국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007 20탄 '어나더 데이'
헐리우드가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금 기묘한 일이긴 하지만, 김일성의 사망 이후부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일이 그 뒤를 이어 권력을 얻게 된 이후, 헐리우드는 권력 세습체계의 북한과, '신비의 독재자'로 알려진 김정일에 대해 더없는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고, 점차 북한이 '테러위협이 가능한 나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에 대한 가벼운 언급들이 몇몇 스파이 액션 영화들에 등장하기도 했다. 일례로는 쟝 끌로드 반담 주연의 '더블 팀'('97),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머더 1600'('97)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또다른 테러국'으로서의 북한을 묘사하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북한이 '적국'으로 등장한 케이스는 놀랍게도 헐리우드 최장기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인 007 제임스 본드 프랜차이즈의 제 20편, '어나더 데이'에서 시작되었다.
이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는 북한에서의 임무 도중 포로로 붙잡혀 북한의 군인들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하며, 북한에서 나와 성형수술까지 감행해 서구인처럼 얼굴을 바꿔버린 군장성의 아들을 추적한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북한의 이미지는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에서 보여지는 '후진적 문화권'의 이미지와 헐리우드가 1990년대 중후반에 중점적으로 다룬 아랍권 테러국가의 이미지가 결합된 것이었다. 북한은 포로에게 기기묘묘한 고문을 일삼고,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는 세계 파괴를 꿈꾸는 망상가이며, 이 망상가는 북한의 엄격한 체계 내에서 '처리'되어 버린다.
국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적 묘사와 사찰 안에서의 섹스씬 등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으며 소리소문 없이 극장가에서 사라지게 된 영화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나더 데이'는 007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사우스 파크'의 악동, 트레이 파커의 요절복통 풍자극 '팀 아메리카: 월드 폴리스'
'팀 아메리카: 월드 폴리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우스 파크'의 두 악동, 트레이 파커와 매트 스톤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들 둘은, 정확히 말해 공화당적 성격도 민주당적 성격도 지니지 않은 인물들이며, 오히려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운 이들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공격하고 풍자한다. 미국의 정치체계를 풍자하고, 계급갈등을 풍자하고, 인종차별을 풍자하고, 성차별을 풍자한다. 심지어, 그들의 전작인 '사우스 파크' 극장판에서는 캐나다산 저질 코미디 영화가 미국의 어린이들을 망쳐 놓는다는 발상에 의해 미국이 캐나다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는 기상천외 내용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팀 아메리카: 월드 폴리스'도 이런 식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모른다. 현지의 반응을 지켜보았을 때, '팀 아메리카: 월드 폴리스'는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를 비웃는 영화이며,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을 모두 조롱하고 나섰고, 배경으로 등장하는 북한과 김정일은 모두 독재국가와 독재자의 모종의 전형으로서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트레이 파커와 매트 스톤에게 한국에서 일고 있는 '북폭 위기 조장'과 같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는 보기 힘들며, 오히려 이들은 '전쟁의 위협' 그 자체를 조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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