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자유의 문제는 개인의 중요한 인권문제로서 세밀한 점검을 통해 우리 사회에 종교로 인해 부당하게 대접받는 사례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종교가 정치와 결탁해서 권력화 되거나 제도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특정종교를 우대함으로써 그 종교에 소속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을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행위가 있는지 살펴보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국민의 공복인 공직자들이 자신의 종교색깔을 지나치게 표출하거나,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공공재산이나 공공장소를 특정종교가 부당하게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 20조 2항의 정교분리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에서 정교분리가 처음 확립될 때에는 주로 정치가 종교의 고유영역을 침범하여 활용하거나 유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종교가 국가권력과 밀착하여 순수목적을 뛰어넘어 주도력을 행사하거나 세속적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특정종교를 우대해서는 안 되며 공직자나 공인의 종교편향적 언행이나 국가기관과 공공시설에서의 종교행위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여러 분야에서 특정종교가 정치권과 밀착되어 갖가지 특권을 누려오고 있고,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서구열강의 문화적 침략과 사회지도층의 역사의식 부재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수백 년 간 유교가 불교를 누르고 유교 스스로도 활기를 잃고 피폐해져 종교적 진공상태가 된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종교를 무시하는 서양종교의 오만한 입성을 부추긴 셈이 디고 말았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서양종교에 대응할 유일한 고등종교인 불교마저 사회성을 상실하도록 만든 상황은 서양종교가 아무런 거름장치 없이 모래땅에 물붓기식으로 빨려 들어오도록 빌미를 제공하였고, 서구문물, 특히 교육과 의료 부문 속에 묻혀 들어오는 과정에서 친서구적 사회지도층들에 의해 각별한 역할과 위상을 인정받으면서 그동안 초법적, 위헌적 선교행위를 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 잘못된 관행은 무소불위의 기득권처럼 굳어져 이제는 그런 행위들이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게 만드는 사회병리로까지 발전하여 종교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의 씨앗으로 남게 되었으니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 국가이다. 특히 지난 20여 년 간 ‘민주화’를 통해 참정권, 의사 표현의 자유 등 국민 주권을 확인하였고, ‘투명화’를 통해 부정부패의 고리를 차단하는 장치가 뿌리내리기 시작했으며, ‘평등권’ 확보를 통해 남녀평등, 노사관계와 인권의식의 발전 등 자유ㆍ평등ㆍ인권 등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온 결과 사회에 누적되어 왔던 어두움을 걷어내며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어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교육자, 종교문화인, 시민운동가 등 사회지도자들은 그동안 ‘민주화와 투명화, 그리고 평등사회’라는 거대담론에만 매달려 온 나머지 오히려 국민의 의식 수준과 요구 수준이 높아진 사실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개인적이고 은밀한 자유 평등 과제인 종교자유 문제와 그에 따른 심각한 인권유린 현상, 그리고 종교집단의 권력화에 밀린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의 훼손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감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큰 틀에서 방향은 잡혔다고 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불평등하며 독선적인 분야가 버젓이 남아있는 것을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종교문제이며, 사회흐름과 무관하게 특권층 의식을 버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변화가 더딘 곳이 종교계이다. 정부도 종교계와는 가급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상책으로 알고 있는 반면, 일반사회에서는 오히려 종교계의 반시대성, 반인권성에 대한 비판이 날카로워지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종교 문제가 우리 사회가 개혁해야 할 마지막 분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같이 남북ㆍ지역ㆍ이념ㆍ계층ㆍ세대ㆍ빈부ㆍ남녀 등 각종 갈등구조가 중층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에서 잠재적 폭발 가능성이 많은 종교 갈등마저 미리 예방하지 않는다면 더 큰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종교과잉의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종교로 세상을 말해 왔지만 이제는 세상으로 종교를 말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진정한 행복과 내실 있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그동안 ‘민주화와 투명성’ 등의 사회적 과제에 가려져 잠시 미루어져 왔던 종교자유와 같은 개인적 양심과 인권의 문제, 그리고 정교분리와 같은 다종교 사회의 공존원리에 대한 추구를 우리 사회의 진지한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다.
헌법 20조2항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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