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 쇄신과 관련한 진통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박상천 대표를 재신임하며 상처를 추스르기로 했지만 ‘새 얼굴을 내세워야 한다’는 아우성도 만만찮다. 민주노동당의 갈등도 이보다 덜하지 않다. 갈등을 수습할 것인가, 분당할 것인가가 팽팽히 맞서고 있어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됐다.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3개월여, 대선 참패의 후폭풍이 휩쓸고 있는 범여권을 찾았다.
범여권이 내란에 빠졌다. 대선 패배 후 ‘책임론’을 따지는 목소리는 그동안 당이 억누르고 있던 갈등까지 몽땅 일깨우고 말았다.
친노, 위태로운 그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폭풍’은 계파간 갈등으로 치열하게 번지고 있다. 정동계와 손학규계, 친노와 비노, 재야파 등 수많은 계파별 목소리가 내부 갈등을 촉발하고 있는 것. 이와 함께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는가 싶더니 곧 ‘참여정부 국정실패’, ‘노무현 책임론’을 필두로 친노에 대한 자성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를 의식한 듯 친노는 재단법인 ‘광장’ 준비위원회의 세미나에 모여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고 4월 총선 전략을 구상하며 당의 진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았다.
이해찬 전 총리는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 진영이 어느 길을 갈 것인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며 “우리가 패배주의에 젖어 서로 탓을 하면서 분열하고 지리멸렬한다면 그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이번 패배를 거울삼아 새로운 가치와 길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범여권 총선 앞두고 사분오열…‘비노’ ‘친노’ 제 갈길 간다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추대론, ‘집’ 잃은 정동영 어디로?
그는 “그러나 서로의 탓으로 돌리고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나선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한 소식통은 “친노는 이 자리를 통해 대선패배에 대한 문제를 민주진영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자 했다. 또한 유시민 의원은 적진인 대구 출마를 공식화해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은 다른 이들과 비교된다. 하지만 이러한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당내 친노의 입지는 좁아진 상태”라며 “당 일각에서는 친노가 새로운 당을 만드는 것이 신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친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남거나 나가는 것이다. 친노는 ‘폐족’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납작 엎드린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차하면 세 결집을 이룰 ‘광장’으로 재기를 노려볼 수 있다는 것. 이와 함께 새 지도부 구성 이후의 상황에 따라 친노는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사공 많은 배 산으로
참여정부 실패의 책임론은 새 지도부 구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참여정부 실패론에서 자유롭고 총선시 수도권에 기반이 있는 손학규 전 지사를 새 대표로 추대하자는 ‘손학규 추대론’이 흐름을 타기 시작한 것. ‘손학규 추대론’은 ‘당 지도부 경선론’과 맞붙으며 당내 갈등 2차전을 알렸다.
신당 쇄신위원회가 선택한 길은 ‘합의추대론’. 당 쇄신위는 당 대표 1인과 최고위원회를 구성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골자로 하는 쇄신안을 발표했다.
김호진 쇄신위원장은 “쇄신 이미지와 당 구심력 등을 확보하기 위해선 단일성 집단지도체제가 현실적”이라며 “당을 조기에 안정시키고 통합 및 단결력을 높일 수 있는 합의추대 방식을 채택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대철 고문은 “위기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 경선하자는 사람 놓고 경선하지 말자고 하는 데 당이 제대로 가겠느냐. 그러면 당이 깨진다”고 주장하며 당 대표 경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김한길 의원도 “합의추대는 봉합론”이라며 “그 정도의 변화로 국민들로부터 당이 새롭게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느냐. 문제가 꼬였을 때는 원칙으로 돌아가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경선론’에 힘을 실었다.
일부 초선의원들의 생각은 이와는 또 다르다. 이들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승헌 전 감사원장, 박원순 변호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을 꼽으며 대선패배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당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외부인사론’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당 내부에서는 참여정부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방안으로 ‘친노배제론’이 나온 지 오래다. 정 전 장관은 비노지만 참여정부의 실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곤혹을 치루고 있는 것”이라며 “적든 많든 참여정부와 관련이 있다면 친노든 비노든 ‘책임’을 피하지는 못할 것”으로 바라봤다.
길 잃은 민주, 민노당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민주당은 박상천 대표 재신임으로 중심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박 대표에 대한 퇴진 압박 또한 심해지고 있다.
손봉숙, 김종인, 이승희, 김송자 비례대표 의원과 김경재, 김영환, 김성순 전 의원 등은 박 대표의 2선 퇴진을 요구하며 당사를 떠났다. 이들은 신민주포럼을 구성, 박 대표가 제안을 무시할 경우 집단탈당을 감행해 총선에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의회 강박원 의장 등 민주당 소속 의원 10명은 “당 대선 후보의 득표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 데 대해 박상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어떤 형식으로든 민심과 당원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며 당 지도부의 인적쇄신을 요구했다.
민주당 ‘박상천 체제’…당내 갈등 후폭풍
민노당 뉴페이스 ‘심상정’ 새 바람 일으킬까?
이인제 상임고문도 책임론의 칼날 앞에 섰다. 그의 책임론이 별로 제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책임이 명백하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인제 정계 은퇴설’이 떠도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의 연장이다.
민노당은 ‘새 바람’ 앞에 흔들리고 있다. ‘17대 대선평가사업·당혁신사업·총선대책사업’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은 당내 양대 정파인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으로 수습이냐, 분당이냐를 가르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자주파는 권영길 대표, 평등파는 비대위원장으로 위촉됐던 심상정 의원이다. 심 의원의 ‘새바람’이 당내 묵은 감정 폭발의 계기로 작용하게 된 것.
노회찬 의원도 “지금으로서는 이대로 가면 총선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총선 자체가 우리 당에는 무의미한 상황이 될 수 있다”며 “난국을 수습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소매를 걷었다. 하지만 분당준비 그룹이 “아프지만 당을 나누는 것이 최선”이라고 나서고 있어 민노당의 탈당사태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 의원은 “수습이 안되면 파국상황이다. 그때 제가 어디에 있을지 짐작하기 힘들다”는 말로 당내 복잡한 상황을 전했다.
휘청이다 총선 자멸?
‘임시휴업’ 간판을 걸었던 창조한국당도 총선체제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내홍을 겪고 있다. 향후 당의 진로와 방향을 놓고 문국현 대표의 측근과 당 핵심인사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 당 인사들은 문 대표가 측근에 대한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서는 함께 할 수 없다며 당사에도 나오지 않고 있다.
당 관계자는 “대선을 끝내고 공당 시스템으로 가는 진통”이라며 당 정상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창조한국당이 신생정당인만큼 그 진통이 클 경우 당의 존립마저 흔들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범여권이 야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분다툼이 아니라 당 쇄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먼저”라며 범여권의 이전투구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