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산다」, '미칠 듯한 외로움'의 드라마
「너 때문에 산다」, '미칠 듯한 외로움'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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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러브스토리


▲ 나의 '소외감과 상처 받은 과거'-그걸 너는 지워줄 수 있니?
「너 때문에 산다」, 한 마디로 이 희곡은 ‘무엇’에 관한 연극이냐고 묻자, 이 작품을 쓴 신예 희곡작가 최치언 씨는 별 망설임 없이 ‘사랑 이야기’라 했다.

사랑에 외로운 이들은 ‘너’를 찾게 마련이고 그 ‘너’는 또 다른 ‘나’를 찾아 나서고 있다. 간혹 운이 좋아서 ‘나의 너’ 혹은 ‘너의 나’가 일치할 때조차 우리가 사랑의 지복감을 느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솔직하다. 서로서로 그저 잠시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을 뿐이라고. 이때 사랑은 열정적인 본능의 공유라기보다는 치유 의식에 가깝다.

아무도 몰라주던 나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너’에 대해 감사의 마음이 커가는 동안 사회적 삶에서 받은 상처들은 하나 둘 잊혀진다. 망각은 사랑과 재생의 디딤판이다.

영안실에서 상주와 친지들의 거짓 울음을 대행하는 곡소리 퍼포먼스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곡녀(길해연)가 자신의 울음소리에 반해서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목석(김준배)에게 빨간 립스틱으로 연지곤지 찍어주며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거야’라고 말한 그 밑마음에는 지긋지긋한 상처의 괴로움에 흡빨리듯 빠져나가고 있는 삶의 흐름을 ‘차단’하고 다시금 풍요로워진 현재적 삶을 살아보고 싶은 곡녀의 한 맺힌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수 없는 곡소리꾼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곡녀를 졸졸 따라다니는 목석의 감정은 ‘순수하게 좋아함’이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너’가 내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유일한 욕망이 있을 뿐이다. 상대에 대한 착취적 욕구가 맘 어딘가에서 탐욕스레 일지 않는다. 곡녀의 불면증을 낫게 해준 이는 정신과의사 박(서태화)이 아니다.

이 현대판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목석과 곡녀의 사랑은 정겹고 눈물겹고 힘겹다. 재수 없는 여자는 강간해도 된다는 관습법이라도 있는지 바람둥이 아비의 장례식을 치르는 상주(손승범)는 곡녀를 겁탈하려 한다. 폭력적 유아독존주의에 취한 대포(명규)와 그 폭력성에 경도되어 사기와 공갈과 협잡질에 손발 역할을 해주는 송양(김지원) 역시 언제라도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짓밟아버릴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

대포가 드디어 집어든 곤봉이 ‘주먹 만한 뇌종양’을 키우고 있던 목석의 뒤통수에 가―닿는 순간, 불안불안한 현실의 사랑은 죽는다.

목석의 영령 앞에 앉아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그저 답답한 신음성만 토해내는 곡녀 앞에 죽은 목석이 새하얗게 등장한다.

환상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목석과 곡녀는 일견 ‘사랑의 영원함’을 일깨워주는 것만 같다.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비관주의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너 때문에 산다」란 연극의 무대는 온통 하얗다. 백색 무대는 정신병원의 과도한 청결함과 영안실 특유의 망자에 대한 과장스런 청결함으로 서늘하다.

백색 무대를 빙 둘러가면서 관처럼 뚫린 문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의미한다. 한편 인간의 의식과 심리의 병리적 해결을 꾀하는 정신병원 쪽에 무게를 둔다면 정보와 감각이 들락거리는 문이기도 하다. 두 개의 메타포를 하나로 엮는다면 무대는 ‘인간의식의 죽음과 삶’이 이뤄지는 마음의 공간이기도 하다.

열 아홉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일부종사하다 평생 남편한테 성적 만족감을 느껴보지 못하고 늙어버린 음노파(김연재)와 만성 발기부전증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왕건(최경원), 게이를 싫어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정신과의사 박-이 세 사람이 정신병원의 오브제이자 존립목적이다.

정신과 의사 박에게는 섹스(또는 교감)하고 싶은 대상의 동조가 없고, 남편에 복수하듯이 솟구치는 성욕에 괴로워하는 음노파에게는 섹스의 대상이 없고, 선천적인 발기부전증으로 죽을 지경인 왕건에게는 섹스의 수단이 없다. 없다, 없어, 이 세 등장인물에겐 섹스 또는 교감의 동의와 대상과 수단이 없다. 그저 정신병원에서 그 고통을 경감하는 것으로 불만족을 ‘잊어 보겠거니’ 하는 사람들이다.

정신과의사 박은 소아애적 취향과 동성애적 성향을 억제하지 못해 괴롭다. 박에게 희망은 사랑하는 사람의 출현이건만 꽃파는 청년 불독(김세환)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경멸. 절망은 바닥을 친다.

▲ 왕건 역을 맡은 중견 배우 최경원 씨. 이번 연극에선 차마 남한테 하소연할 수 없는 사연으로 고통받는 현대 남성을 대변하고 있다.
최면 상태에서 바람둥이 자기 남편을 저주하는 음노파의 절규에 찬 욕소리를 듣다가 꿈틀거리는 성기에 환희를 느끼는 왕건이 부지런히 음노파를 쫓아다니는 장면이 이 연극에서 가장 유쾌하고 발랄하다. 회복을 감지한 환자의 감동이 인다. 흰 빛으로 죽은 세상에서 깜박이는 생명신호에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연극은 외로움 때문에 미쳐버린 사람들의 얘기다. 작가의 말마따나 ‘사랑의 몸짓이 그저 우주의 별들처럼 떨어진 거리 좁히기’에 불과할 뿐임에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우리가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 아닌지는 관객이 판단할 문제다.

외로움에서 빚어지는 광기가 빚어내는 이 엄청난 혼란은 우리 각자의 의식의 혼란이기도 하며 우리 사회의 혼선이기도 하다. 그 어디에 촛점을 맞춰 보아도 해석은 가능하다. 이 해석의 열림이야말로 생명력을 갉아먹는 일반 TV 드라마와 다른 소극장 연극만의 실험적 생산성일 것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너 때문에 산다」에서 곡녀의 사랑은 목석의 죽음으로 완성된다. 곡녀의 눈에 목석은 죽고 나서 울지 않는 장군으로 비친다. 곡녀는 평강공주가 된다. 두 사람 사이의 소망이 비로소 관통(貫通)된다. ‘너 때문에 죽는’ 순간 사랑은 완성된다는 신비주의자들의 말소리가 들려올 법하다.

연출의 기본방향은 공간의 구획을 의식하지 않은 각 배우들의 대사의 병치와 상황의 이질적인 병행을 도입, 이해되는 서사구조 대신에 '몰아붙이는' 파토스의 혼란스런 힘에 치중한 듯하다.

2000년 설립된 (주)제이티컬쳐가 제작하고 문삼화 씨가 연출한 2007 젊은예술가 지원사업 선정작인「너 때문에 산다」는 오는 20일까지 <사다리아트센타 세모극장>에서 바보스럽고 울보 같은 사랑 때문에 외로움이 사무친 관객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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