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고향 사량도에서 하릴없는 놈팽이가 되어있던 시절이 있었지요.
매일 현대문학과 현대시학을 옆구리에 끼고 파도가 철썩이는 섬마을 해변가에 누워 미래 없는 문학쟁이의 꿈만 꾸고 있는 나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대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나(?) 나온 녀석이 ...하며 저주성 눈길을 보내고 있을 때 사량도 바닷가는 그야말로 잿빛 하늘이었지요.
대학도 갈 수 없는 망해버린 선주집안, 홀어머니의 공무원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면서기 대망론>이 그야말로 나를 미치게 만들었지요. 그러나 그럴 수 없었지요. 나는 귀한 내 젊음을 앞뒤가 막혀 있는 듯한 면서기에 바칠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어머니는 내보다 못한 친구녀석들이 순경이 되고 면서기나 조합서기가 되어 시골길을 으스되며 걸어다니는 것이 미치도록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그 간절한 소망을 무시하고 직업 문학인이나 기자가 되는 것에 미쳐 있었으니 이 얼마나 부질없는 망상가로 보였겠습니까.
인문대학을 나와도 될뚱말뚱한 당시로서는 너무도 고급스러웠던 하늘 같은 계급을 꿈꾸고 있었으니 마을사람들이나 무식하고 순박한 섬마을 지인들은 내 몰꼴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겠습니까.
그러든 말든 나는 애써 그들의 눈길을 피하여 값싼 환희 담배를 맛있게 피워대며 때로는 마산 무학 댓병 소주에 환타를 타서 술취함의 적당한 타락상을 마을 사람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곤 했지요.
아아... 그 당시의 싸구려 환희담배의 맛이란... 어떤 맛에도 비길 수 없는 환희의 구름과자였지요. 그런데 저는 불행하게도 그 싸구려 환희담배를 맛있게 사 피울 수 있는 경제적 형편이 전혀 되어있지 않던 날건달이었지요.
어떤 땐 방위병 친구들에게 한 갑 얻어 피기도 하고 국졸 출신 선원 친구들에게 몇 개비 얻어 피우기도 하는 가련한 신세였는데 하루는 저녘 무렵 누나에게서 가련한 실업자의 눈치밥을 얻어먹고 마을 정자나무 밑에서 환희담배 한 개비를 피고 싶어 호주머니를 뒤졌으나 아ㅡ아 환희담배는 커녕 담배가루도 만져지지 않던 그 처절함...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식후 불연초>의 그 고통 속에 <슬픔의 도>를 그날 득도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웬 어둠속의 인기척이 있은 후 내 옆에 다가온 분이 있었습니다. 이웃에 살고 있던 5촌 큰어머니였습니다.
<자ㅡ 받아라> 그때 큰어머니의 입이 떨어지자말자 그분의 손위에 놓여 있는 비상한 물체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아아 환희담배 한 갑... 담배 골초인 큰어머니가 조카의 처지와 고통을 단번에 읽어내고 당신에게도 거금이었을 담배 한 갑을 내게 선뜻 내밀던 그 놀라움이란...
나는 그날 밤 이 세상에서 최고 맛있었던 환희를 눈물을 찔끔거리며 빨아 당겼지요. 아ㅡ 그 맛이란 <중략>
그 후 나는 평생동안 그날 큰어머니께서 그날 밤 주신 환희담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었지요. 기껏해봤자 고향을 찾으면 용돈 몇푼 드리는 것으로 그날의 고마움을 표해야 했지요.
섬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든든한 나의 후원자였던 <유적시절>의 나의 5촌 큰어머니!
그런데 8월 달섬 시낭송회가 있던 날, 그날은 이윤재 시인의 시집으로 출판을 기념하겠다던 집행부의 공시가 있던 날이었지요.
<이윤재시인>의 시집에 대한 지독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을 때, 갑자기 날아든 사량도 친척으로부터 날아온 비보 ! 사랑하는 내 추억의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지요.
아, 참으로 슬펐습니다. 나는 당장 내려가리라... 장례를 봐야지... 만조백관이 되어 큰어머니를 보내드려야지...하고 비행기편을 알아보고 있는 데 그날이 이윤재 출판기념 시 낭송회 날이라는 것이 전광석화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순간적으로 참으로 갈등에 휩쌓였습니다. 오늘 이윤재 시집을 잘근 잘근 부드럽게 가을전어회 씹듯 맛있게 씹어보리라 했던 그 기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큰어머니의 장례식장으로 걸음을 옮기며 위대한 부면장 시인의 <참고:이윤재는 공무원부면장 급수임>기념시 낭송회를 가슴으로 짓밟으며 떠나야 했습니다.
저는 그날 큰어머니의 영전에서 큰어머니의 추억에 취하여 이제는 나를 신비스러운 동물쯤으로 바라보는 섬마을 사람들에게 큰어머니의 추억담을 들려줌으로서 웃음과 울음이 교차되었던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담을 회고할 수 있었지요.
아아, 큰어머니 환희 담배에 파묻혀 가버린 나의 큰어머니. 큰 정을 주셨던 큰어머니 환희 담배 빚은 돌아가셨어도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영원한 빚임을 올라오는 길에 깨달을 수 있었지요.
나의 환희 연초! 나의 큰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