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연말 특별사면 받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인물탐구> 연말 특별사면 받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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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재건’으로 명예회복 나선다

김우중(71) 전 대우그룹 회장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연말 특별사면을 받은 김 전 회장의 경영활동 재개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71세라는 고령과 5년여에 걸친 해외체류로 인한 건강악화로 한동안 건강 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주창했던 그였던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경영활동에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계 일각에선 정·관계에 포진하고 있는 전직 대우맨들이 ‘해쳐 모여’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분식회계 사건 등에 연루돼 사법 처리된 대우그룹 계열사 전직 임원들도 대부분 사면됐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김 전 회장의 재기를 도와 ‘대우 재건’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 재계에선 지난 연말 특별사면을 받은 김무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경영활동 재개에 주목하고 있다.
“부패 꿈꿔 본 적 없다”

특별사면이 발표되던 지난해 12월31일 김우중 전 회장은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백기승 전 대우그룹 전무는 대우 사태 10년이 법률적으로 종결된 데 대해 남다른 감회를 전하며 “김 전 회장은 한국경제와 국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일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김 전 회장이 이전의 은둔생활에 벗어나 재기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재계에서도 이 같은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김 전 회장의 오랜 기업 경영 경험을 살려 명예회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풍비박산나기 이전까지만 해도 김 전 회장은 명석한 두뇌와 발빠른 추진력, 천부적인 상술로 재계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때문에 김 전 회장은 해외를 떠돌던 시절 해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부패를 꿈꿔 본 적이 없으며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야심이 너무 컸다는 것”이라며 “남들이 15년 만에 한 것을 5년 만에 이루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외환위기 당시는 금융위기였지, 산업의 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과잉부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대우의 탓으로 떠넘겼다”고 설명했다.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은 1961년 한성실업에 입사했고, 그로부터 6년 뒤 31세의 나이로 5백만원의 자본금과 5명의 직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창업 원년에 트리코트 한 품목으로 58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리며 화려하게 재계에 데뷔한 김 전 회장은 대우실업 창업 1년 만에 국내 수출기업 서열 1백41위를, 창업 2년째에 들어서는 36위로 끌어올렸다. 1978년에는 1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70년대 초기 건설업 진출을 서두른 김 전 회장은 당시 중동 건설 붐을 생각해 에콰도르에서 해외 첫 건설공사 수주를 따내며 해외건설 공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중화학 분야에도 진출했다. 한국기계공업과 대한보일러공업, 옥포조선과 새한자동차 등을 속속 인수한 김 전 회장은 사업다각화를 꾀하는 동시에 부실기업을 골라 인수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로 인해 1993년 1백85곳에 불과했던 해외 네트워크를 1998년 말 5백89곳으로 늘렸고, 1998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며 사업 확대를 꾀했다.

그해 연말 대우그룹은 계열사 41개, 종업원 10만5천명, 해외사업장 외국인 종업원 22만명, 해외법인 3백94개 사를 보유한 한국재벌로 성장했다. 당시 자산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대우는 재계 2위였다.

뿐만 아니다. 1995년 첫 남북한 합작투자회사인 민족사업총회사를 북한 남포에 설립한 것도 김 전 회장의 작품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대우그룹이 몰락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현재 현대그룹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북사업이 김 전 회장을 중심으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영전문가들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함께 김 전 회장을 1세대 CEO로 많이 거론하고 있다. 다만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6개월,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천2백53억원의 형을 구형받은 것이 김 전 회장의 오점으로 남았다.

IMF로 경제위기가 닥치자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사업장을 가졌다는 대우그룹은 오히려 비수가 되어 기업의 위기로 되돌아왔다. 해외 채권자들로부터 극심한 상환압력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부채비율 2백% 기준이 설정되면서 사실상 신규 차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환율까지 폭등해 68조원대 부채를 안고 있던 대우그룹은 공적자금 29조7천억원이 투입되면서 주요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이 시작됐다. 그때가 1999년이다. 대우실업을 시작으로 재계 서열 2위까지 오르던 대우그룹이 32년 만에 해체됐다.

전직 대우맨 뭉치고 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1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재계에서는 여전히 김 전 회장의 행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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