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나는 마흔 아홉수에 죽은 윤중호가 / 지금 영동이라는 어는 포도 과수원 집이든가 / 공항동 이주단지 아니면 일산 아파트 / 툭닥거리면서도 서로 좋아 죽겠는 / 어느 젊은 맞벌이 부부 집에 / 방싯방싯 웃으며 벌벌 기는 갓난아기로 / 다시 태어나 있을 것만 같다. / 그렇다 / 자라면서는 축구도 좋아하고
- 「죽은 시인 윤중호 생각」 부분
윤중호 시인의 죽음을 보며 인생은 죽음 이상으로 영원한 시간속의 여행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둠과 빛을 넘나들고, 삶과 죽음을 경계 짓지 아니하며, 보는 자와 보여 지는 것들이 하나로 시적 화자와 시적대상, 그리고 시인이 낯설지 않고 스스럼없이 만나 어색하지 않은 무위자연의 편안한 시편들은 혈기 돋은 심경들을 차분히 내려놓게 된다.
어제는 꽃이 상처였다가 / 상처로 깊이 내장되었다가 / 이 봄 두껍게 굳은 살갗을 뚫고 / 내 몸 여기저기 젖은 꽃이 핀다.....(중략) .... 운명처럼 이제는 / 고통스럽지 않은 꽃이여 / 위안처럼 이제는 / 상처가 젖은 꽃으로 핀다
- 「젖은 꽃」 일부
꽃이 상처였다가 그 상처로 자신이 다시 꽃이 되는 환치와 윤회의 사유를 접하노라면 시를 읽는 마음이 흥분보다는 차분한 침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윤재철의 시는 관조觀照의 시편이지만 그렇다고 구경꾼만은 아니다. 이 땅의 선생으로서 제자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교육현장을 심각하게 바라보도록 독자의 의식을 깨운다.
1980년대 습작기를 보낸 우리 또래에게 윤재철시인은 송기원, 김형수시인과 함께 민중교육 필화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윤재철시인은 어느 학교에서나 볼만한 평교사 선생님의 모습이다. 시인으로서 윤재철은 교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의 풍경을 그대로 옮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자본과 경쟁의 대열에선 아이들의 고단한 일상을 애잔한 심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 똑 같은 20평 교실 사각의 링 위에 / 눈에 보이는 차별은 없다. 그러나 인권도 없어 / 수우는 없고 미양가뿐인 지혜는 / 설 곳이 없다. ...(중략).... 1점 에누리도 없이 서열화된 배치 기준표가 / 앞 뒤 벽면을 도배질하고 / 칠판 옆 붉은 전광 시계는 분 단위로 숫자를 바꾸며 / 수능 D-100일을 밝히는 교실 / ‘2호선 타자’고 급훈은 써 붙였지만 / 실제로 2호선에 있는 대학에 갈 아이들은 한둘뿐인 교실//... (중략)... 법으로는 평등하지만 실제로는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현실을 말해주면 / 한숨짓다가 얼굴까지 붉어지는 아이들 / 닫힌 유리창 문에 가지가 꺽이도록 자라 오른 푸른 단풍나무가 / 쏟아질 듯 창문을 넘겨다보고 있다. // *2호선 지하철역 : 서울대, 홍익대, 연세대, 서강대, 이대, 경기대, 한양대, 건국대 등이 있음.
- 「고3 교실」 부분
얼마나 기막힌 교정의 풍경인가? 하지만 시인은 교정에서 이러한 답답한 현실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시인의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