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 오는 소리에 님이 올 것 같아서
부시시 잠 깨어서 먼 길을 바라보네
바람 부는 소리에 님일 것만 같아서
살며시 귀 기울이면 들릴 듯 들리지 않네
그리운 나의 님아 언제나 오시려나
나의 기다리는 맘 그대는 정녕 모르리라
가수 이영화의 ‘실비 오는 소리에’는 호소력 짙은 창법과 시적인 가사로 사모하는 여성의 애틋한 정서를 표현한 가요다. 이 노래로 ′79년에 혜성같이 등장한 이영화는 1년 만에 신인상을 거머쥐며 가수 입명의 탄탄대로에 올랐다.
국악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영화씨는 ′81년 MBC 서울국제가요제 한국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로 선정됐다. 같은 해 국제가요제에서 미국대중음악지 『빌보드』가 수여하는 빌보드 상과 세계가요제연맹 회장단이 선정하는 휘더프상을 수상했다.
이영화의 대표곡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가사를 담고 있었다. 대중가요에 ‘주님’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이 노래는 향후 복음성가의 미래를 말해주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 지금 가는 이 길이 정녕 외롭고 쓸쓸하지만
내가 가야 할 인생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 지금 가는 이 길이 정녕 고난의 길이라지만
우리 가야 할 인생길
아무도 몰라도 좋아 내 주님 가신 이 길을…
음악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시련 극복
그런 이영화에게 ′83년 이혼과 부도라는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다. 이영화는 이 ‘수난’을 통과하며 마음의 눈이 뜬 기독교 신앙과 음악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살려 ′93년 ‘날이 날이 갈수록’란 경쾌하고 감각적인 트롯풍의 노래로 다시 인기몰이를 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둘이서 나눈 얘기 바람에 흩어져
둘이서 새운 밤은 비에 젖었네
이영화는 한편 2001년 동료 연예인들과 1년에 한 번 독거노인이나 양로원, 장애우 등에 대한 봉사활동으로 문화장관부장관 표창에 이어 음지에서 행한 꾸준한 봉사활동이 알려져 ‘효녀상’과 ‘기자단상’도 받은 바 있다.
신앙으로 맺어지게 된 이영화-정병하 부부
10년 전 전화통화가 결혼으로 이어진 묘한 인연

▲이 사람은 누군가
이 : 남편이다.
▲이혼한 뒤 쭉 혼자 살아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 작년 12월 이 남자와 재혼했다.
▲첫 만남은 언제였나?
정 : 아주 오래 전이다. ′97년 부산 하이얏트 호텔 앞 특설링에서 킥복싱 체급별 결승전을 주최했다. 모든 행사가 끝난 뒤 내 친구가 이영화씨와 전화통화를 듣게 되었다. 그때 전화를 바꿔 통화를 하게 됐다. 그리고 이영화 음반을 찾아 부산 시내를 다 뒤졌다. 그후 얼굴을 보게 된 것은 아는 선배의 중매를 통해서다. 그러다가 2006년도 오류동의 연세중앙교회 콘서트를 계기로 가까워진 것이다.
▲어떤 콘서트였나?
이 : 윤석전 당회장 목사는 5년 전부터 아는 사이다. 나는 파격적인 무대를 연출하고 싶었다. 그동안 홀로 갈고 닦은 라틴댄스와 밸리댄스를 선보였다. 반응이 대단했다.
정 : 전화 통화하고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공연이 끝나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후 날마다 전화를 100통화씩 했다. 통화료가 기십만원 대였다.
사랑의 힘으로 이영화 콘서트 성황리에 마쳐
▲2006년 9월6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단독콘서트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 : 1,800석 좌석이 매진됐다. IMF 이후 처음이라고 들었다.
정 : 가수 이영화의 콘서트 성공을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내가 공연이벤트에 대해 뭘 아나. 배낭에 표를 들고 다니면서 지인들에게 강매하다시피 팔았다. 여러 장을 한꺼번에 사준 사람들도 고마웠지만 3일 동안 5만 원 번 것으로 표를 사준 택시기사 친구는 눈물겹도록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 열정에 감동해서 결혼에 승낙한 건가?
이 : 아니다 조건을 걸었다
어떤 조건인가?
이 : 목회자가 되라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수락했나?
정 : 수락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본격적인 목회활동은 언제부터 할 건가?
정 : 내가 잘 아는 의원님이 계시다. 그 분의 총선을 도운 뒤에 하나님의 목회자의 길을 갈 생각이다.
▲그 의원이 누군가
정 : 정형근 의원이다.
▲정형근 의원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어떤가?
정 : 화통하고 솔직한 분이다. 동네 아저씨처럼 소탈하다.
▲대선을 치른 지 얼마 안 됐다. 누구를 지지했나.
정 : 이명박을 지지했다. 음양으로 애를 좀 썼다. 제17대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직능정책본부 문화예술위원회 부산지역본부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지난 대선의 이슈는 뭐라고 생각하나
정 : 두 말 할 것 없다. 경제다. 부산의 음식점의 반 이상이 망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민감한 질문을 하나 하겠다. 지난 기독교계 신문은 아프간 피납 사태를 제일 큰 뉴스로 뽑았다. 그뒤 안티기독교인들이 인터넷과 여론을 주도할 정도로 반기독교의 바람이 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 : 선교방식의 문제다. 우리나라에도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이 있는데 거기까지 갈 필요가 뭐 있었나.
이 : 안티기독교인들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듯하다.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정 : 대북정책은 좀더 내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영화씨는 대형가수로 거듭나고 있다. 오랜 세월 노래와 함께 해왔는데 요즘 가수들의 가창력은 어떤 수준인가
이 : 어떤 가수들은 노래를 전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비주얼 가수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음반시장이 죽은 것 같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이 : 불경기인 탓도 있겠으나…
정 : 선배나 중견 가수들이 노래 부를 마당이 없다. 기껏해야 7080, 가요무대다. 그 프로에 1년에 단 한 번 나가는 가수들도 있다. 그동안 그럼 뭐 먹고 사나.
이 : 다양한 목소리의 가수층이 두터워야 한다. 가수란 직업을 너무 영업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수의 목소리와 감정은 세월과 더불어 더욱더 성숙해지는 것이다. 가수의 경륜이 존중받아야 한다.
▲복음성가 음반도 많이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성가를 부를 때와 가요를 부를 때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 울리는 심금의 깊이가 다르다. 성가는 ‘노래하는 간증’이라고 보면 된다.
중증장애인을 돕는 일은 나의 사명
▲중증장애인을 돕는다고 들었다. 어떤 병인가?
이 : 근육디스트로피다. 근육이 현저히 약화된다. 결국 신체의 장애를 가져와 남의 도움 없인 살 수 없는 치명적 질병이다.
▲현재 청애원 요양원에는 몇 명 정도 있나?
이(눈물을 흘리며) : 30명 정도 있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나?
이 : 콘서트 등의 수익금을 모으고 있다 … 역부족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면 말해 달라.
정 : 이번 총선에 정형근 의원이 당선되도록 최선을 경주할 각오다.
이 : 내 가수활동의 종지부는 없다. 쉴 때는 있겠지만 노래는 계속 부를 것이다. 신곡을 준비중이며 신곡발표와 함께 대형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남편이 목회자가 되면 뒷바라지하겠다. 힘을 실어주겠다.
봉사활동도 계속할 것이다. 많이 도와달라. 그것은 우리나라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