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햇볕이, 가느다란 먼지처럼 가라앉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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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안개 1

홍영희 선생은 자신의 연구실로 다시금 내려왔다. 고요와 햇볕이, 가느다란 먼지처럼 가라앉은 방이 자신을 맞아 주었다. 인터폰을 눌러 학과 사무실의 조교에서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커피를 옅게 타서 블랙으로 마셨다. 학과의 선생들은 오후에 얼굴을 내밀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을 기다린다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책상 위와 서가 속의 먼지를 털어내면서 책을 정리했다. 이제 다시 한 학기가 시작됐으니, 이들 책과 씨름하면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 새삼스럽게 주연식 교수가 소포로 보내준 선물이 시선을 끌었다. 왠지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자기를 잊지 않고 이렇게 근질기게 선물을 보내주는 그가 조금은 고마운 것이다.

주연식이가 듬직한 인간미와 완숙한 인격을 갖추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이런 호의가 결코 싫은 것은 아니었다. 대략 주변을 정리해 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다시금 강물 위에 반사된 광선이 연구실 유리창을 뚫고 자신의 책상 위로 번지고 있음을 느꼈다. 알 수 없는 고독감이 큰 신비로운 광선을 따라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다.

자신이 고독감을 느낄 이유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이 삶을 꾸려가기 위한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구조로 보아 자신은 고독을 느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고독감은 그렇게 절실하달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폐부를 찌를 듯한 고독감은 절대 아닌 듯했다. 순간 순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고독감일 것이다.

그녀는 잠시 이번 학기에 강의해야 할 과목을 생각하고, 강의의 내용과 방법을 검토했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과목을 맡아 정성껏 강의하고, 학생들이 또 잘 따라주면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었다.

선생이란 역시 가르치는 사람이고, 그리고 잘 가르치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이다. 선생 노릇하는 사람이 가르치는 일과 연구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이미 선생이라 할 수 없으리라. 신학기에는 또 어떤 젊은이들의 얼굴이 나타날 것인가. 홍 선생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해가 바뀌면 언제나 떠나가고, 또 새로운 학생들이 나타나는 것이지만 새삼스레 기대가 되었다.

자신이 이제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기 때문일까. 가족과의 일상이 이제는 왠지 가끔가다가 풀려 버린 허리띠처럼 느슨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것이 귀하지 않다거나, 정겹지 않아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한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떤 때는 오히려 이 가족의 존재 앞에서 절벽을 느낄 때도 없지 않았다. 한 여자가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건 지아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그들을 키우면서 늙어가는 것, 그것은 가장 정형적인 삶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실 자체에 이질적인 감정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결국 인간의 운명에 대한 몸부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부부가 자식을 잉태하여 출산하고 자신들의 죽음 사이에 별다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넓고 길게 보면, 결국 인간은 자손을 출산하면 자신들은 죽어가게 마련이다. 금방 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조금 그 죽음이 유예될 뿐이지 출산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이 땅덩이 위에서 절멸하지 않고, 그 생존을 계속할 수 있다.

더더구나 이런 자손 잉태와 출산의 직접적인 모태인 여자의 경우, 자신의 임무를 다 치르고 났을 때 인생의 알 수 없는 공허감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깃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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