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의 대표적인 일출하면 형제섬의 일출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 황홀한 일출을 두 번이나 보았다. 형제섬은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해안가에서 500m가 채 안되는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바위섬으로 무인도다. 섬을 꼭 두 개로 잘라놓은 듯한 형상으로 서 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개수가 달라지는 것이 신비롭다. 작게는 2개에서 많게는 10개로 보인다고 한다.
이 곳은 갯바위낚시터로도 인기 있는데, 갈라진 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 또한 유명하다. 검은 섬 주변의 바다와 하늘을 한번에 물들이는 일출 풍경이 비경을 만들어낸다. 섬 사이로 해가 고개를 내밀면 하나의 섬이 더 생기는 듯하다. 해가 섬이 되고, 그 일출을 맞이하는 나 역시 섬이 되어버린다. 형제섬에서는 감성돔과 뱅어돔이 잘 잡힌다. 특히 5~7월 사이가 낚시하기에 좋다.
형제섬 앞의 해안가는 현무암 지대라 이 일대도 아름답다. 이곳에서도 삼방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삼방산 전경사진을 촬영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 해안에서 삼방산과 형제섬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형제섬이 있는 바다의 앞쪽에는 가파도와 마라도가 함께 떠 있는데, 이로 인해 형제 사이에는 돈을 가파도(갚아도) 좋고, 마라도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 온다고 한다.

형제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송악산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드라마 <대장금>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진지동굴이다. 장금(이영애분)이가 의녀수련을 하던 동굴로 나왔던 곳이며, 마지막 장면에서 산모를 발견하고 제왕절개수술을 하던 동굴이 바로 송악산의 진지동굴이다. 진지동굴은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의 송악산(104m)아래 모슬포 해안에 자리한 인공동굴이다.
진지동굴은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각종 무기와 잠수선 등을 숨겨두기 위해 제주도의 대정지역 주민들을 강제 징용해서 만든 인공동굴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슬픈 역사는 온데 간데 없고, 동굴 입구에는 '대장금 촬영지'라는 표지판만이 진지동굴을 대변해주고 있어 더 슬프게 한다.
드라마 한 편이 아픈 역사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진지동굴의 동굴은 모두 15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성인 4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동굴이 15개라서 '일오동굴'로도 불린다.
진지동굴은 송악산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마라도행 유람선이 출발하는 송악산포구의 선착장에서는 잘 보인다. 마라도행 유람선을 타면 좀 더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데, 배에서 바라보는 진지동굴이 인상 깊다.


진지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바다쪽을 바라보면 동굴 사이로 형제섬의 모습이 보인다. 형제섬이 진지동굴 안에 제대로 들어오게 잡으려면 4번째, 또는 5번째 동굴에서 촬영하는 것이 좋다.

형제섬과 진지동굴을 돌아보았다면 송악산도 빼놓을 수 없다.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의 모슬포 해안에 자리하고 주변경관이 빼어나다. 99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 이루어진 산으로 일명 99봉이라고도 한다.
영화 <연풍연가>를 보고 저기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인데, 이후에 SBS드라마 <올인>, MBC드라마 <아일랜드> 등이 촬영된 곳이다. 송악산은 해발 104m의 나지막한 언덕배기 산으로 제주도의 오름 중 하나이다.
송악산 해안 절벽의 파도 울음이 인상적이어서, '절울이오름'이라고도 불린다. 이 일대의 파도가 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진지동굴이 슬퍼서 가슴앓이를 하며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송악산 정상에 서면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는 물론이고 멀리 산방산(395m)과 한라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시원스럽다. 시간이 남는다면 유람선을 타고 마라도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유람선이 선착장을 벗어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형제섬과 진지동굴, 송악산의 풍경 또한 잊지 못할 비경이다.
제주만의 다양한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형제섬과 진지동굴, 송악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