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밥 먹여주니?
친구가 밥 먹여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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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마음에 세상을 밝힐 촛불 하나 지녔는가!

▲ 세상은 혼자 가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 강기희

겨울 같지 않은 푸근한 날이 이어진다. 올 겨울은 큰 추위없이 푸근한 나날들이다. 내일부터 조금씩 추워진다는 일기예보도 있지만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다.

조금은 나른한 오후다. 이런 날은 친구들과 매운탕에 소주 한잔 나눴으면 싶다. 직장 얘기며 사는 얘기 다 접어두고 지난 일들 추억하며 마음 편하게 술잔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내게 있을까.

친구가 밥 먹여주니? 밥 먹여 준다!

그런 친구 내겐 있다. 하나도 아니고 많다. 매운탕 생각을 하니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한동안 연락을 못했다. 다들 잘 지내리라 믿지만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동안의 안부를 전하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밖에 할 말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폭이 좁아진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친구가 밥 먹여 주냐'며 놀러가는 걸 막을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이면 반발이라도 하듯 '그럼, 밥 먹여 주지!' 라고 소리치며 집을 나온 적이 한두 번 아니다.

당시만 해도 배고프면 밥을 나눠 먹었다. 가진 것을 나누면서 어려움을 함께 겪기도 했다. 그래도 아깝지 않은 시절이었다. 돈이라는 걸 빌려주고 돌려받는 관계가 아니었기에 친구라는 이름이 아름다울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는 친구라는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못 보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친구들과의 멀어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이다.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때부터 진정한 친구 하나 꼽으라면 딱히 누굴 꼽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망설여지는 이유는 '진정한'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친구는 많되 진정한 친구를 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진정한 친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옛날이야기 하나 보탠다.

어려울 때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

▲ 어둠을 밝혀줄 빛 하나가 필요한 세상이다. ⓒ 강기희

옛날, 친구를 좋아하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친구들과 지내는 일을 즐겼다. 하라는 일은 않고 친구들과 놀러만 다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나무랐지만 그는 아버지의 말을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아들이 온 몸에 핏자국을 묻힌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들은 사소한 싸움 끝에 사람을 죽였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지 않았냐고 물었다.

"친구들은 내가 사람을 죽이자 다들 도망쳤습니다."

아들의 말을 듣던 아버지가 "네가 친구를 잘 못 사귀었구나"라며 자신을 따라오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인 시신을 수습하고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어깨에 멨다. 그리곤 한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여보게, 내가 어쩌다 사람을 죽었네. 어찌하면 좋겠나."
"아니, 자네 같은 사람이 그런 실수를 하다니. 내가 도와줌세. 자네는 경황이 없을 테니까 집에서 기다리게. 내가 처리함세."

아버지의 친구는 돼지를 손수 메고는 산으로 갔다. 아버지의 친구가 돼지를 땅에 묻는 모습을 보며 아들이 눈물을 쏟았다.

"진정한 친구란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기꺼이 나서주는 친구를 말한단다. 너 또한 친구의 어려움을 보고 그냥 지나친다면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없단다."

옛날 이야기는 아들이 그때부터 인생을 제대로 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끝난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거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버릴 줄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친구를 두는 일이다.

▲ 저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 하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 강기희

14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시절 나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펴야 할 30대, 대책 없이 나이만 먹는 일이 두려웠다. 몇 년간 하던 출판기획 일을 과감하게 접었다. 그리곤 마음에 담아두었던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작심했다.

하지만 작품을 쓰는 일에 몰입하기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무모한 작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면서 행복해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가, 하고 반문할 정도였다.

생활은 곤궁했다. 원고지 살 돈도 떨어지고 말았다. 담배는 거리에서 주워 피워야 했다. 그런 일이 비참하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으로서는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 인생은 피어나지 못했다

그 무렵 내겐 친구들이 있었다. 다들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며 가정도 있는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이 내 딱한 처지를 알고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며 쓴 소주를 샀다.

그들은 가끔씩 종로로 날 불러냈다. 좋은 글을 쓰려면 고기라도 먹어야 한다며 삼겹살을 샀다. 헤어질 때는 택시비 하라며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었다. 만만치 않은 돈들이었다. 하지만 그 돈으로 편하게 택시를 탈 수는 없었다.

새벽 첫 차가 다닐 때까지 거리에서 잠을 잤다. 첫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잠이 들어 서울의 지하를 빙빙 돌기도 했다. 친구들이 준 돈으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주머니가 든든했다. 담배도 생기고 쌀도 생겼다.

겨울철 기름이 떨어지면 보일러에서 어김없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내 글을 더 강하고 깊게 만들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면 돈이 부쳐졌다. 한 번도 거절하지 않는 친구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친구들은 3년간이나 나를 도왔다. 아무 조건도 없는 도움이었다. 내가 '고맙다'라고 말하면 오히려 화를 내는 친구들이었다. 소설가가 되고 첫 책을 출간했을 때 가장 먼저 친구들이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출판사에 찾아온 따끈따끈한 책을 건넸다.

"고맙다, 이 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니들이다."

그렇게 소설가가 되어도 내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가 않았다. 어쩌다 인세를 받아 친구들에게 술이라도 한잔 사려 하면 막았다.

"짜식, 연봉 180짜리가 까불어."

친구들은 그렇게 내 주머니를 지켜주었다. 당시 받은 인세는 180만원이었고, 그것은 곧 나의 연봉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친구들은 나를 '연봉 180'으로 부른다. 그 무렵 한 친구가 술을 마시더니 내게 주정 아닌 주정을 했다.

왜 내게는 그런 전화 하지 않느냐고. 내가 쌀값이나 기름값 보내라고 전화하지 않은 게 못내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부터 꼭 전화하겠노라 약속까지 했다.

친구들, 너희들은 내 생의 은인이라 해도 부족하다

▲ 그대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함께 걸어 주는 이 있는가. ⓒ 강기희

언젠가 힘든 날이 왔을 때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돈을 보내주었다. 확인하니 20만원이나 보냈다. 너무 많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가정 있는 사람이 선뜻 그 돈을 만들기는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적게 보내 미안하다. 담엔 더 보내 줄게. 암튼 좋은 작품 써. 알았지?"

전화를 끊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무렵 현실과 조금만 타협하면 힘들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고집스레 힘든 길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런 내 삶을 친구들은 좋아했다. 그게 친구들이 선뜻 도움을 주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 친구들의 면면을 보면 다들 평범하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이다. 한 친구는 문화관광부에 근무한다. 지난 해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늦게나마 축하인사를 보낸다. 그 친구 이름은 최장헌이다. 이름을 밝힌다 해서 부끄러울 일 하나 없는 친구다.

또 한 친구는 지금 중국에 있다. 요즘 중국에서 사업을 한단다. 한국에 있을 땐 '엘지에드'란 광고회사에 근무했다. 멋진 녀석이다. 이름은 최병동이다. 내 별명을 '연봉 180'이라 지은 친구이기도 하다.

마지막 친구는 '이랜드'란 회사에 근무하는 김상훈이다. 왜 내겐 전화하지 않냐고 주정 아닌 주정을 했던 친구다. 착하고 여린 친구다. 내가 책을 내면 몇 권씩 구입해 동료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잘한다. 다들 고맙고 미안한 일이다.

내가 지금껏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이 친구들 덕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생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격려가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고, 내 단단하고 곧은 삶을 결정지을 수도 있었다. 내 생의 은인들이라 칭해도 아무 거리낌이 없다.

"고맙다, 친구들!"

고향에 온 요즘에도 내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은혜를 갚는 일은 가던 길 열심히 가는 것뿐이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챙겨주는 이들이 있어 살아가는데 힘이 난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다는 약속밖에 할 게 없다. 다들 고맙고 또 고맙다.

▲ 그대 마음에 세상을 밝힐 촛불 하나 지녔는가.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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