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잎사귀 솟대처럼 빼곡하게 서걱거리고...
대나무 잎사귀 솟대처럼 빼곡하게 서걱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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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장승의 달인 최명순 장인

"20대 후반부터 취미 삼아 그림을 한 10여년쯤 공부했어요. 그러다가 8년 전부터 서각을 좀 했지요. 근데 별 재미가 없어요. 그때부터 가난한 민초들의 희망이 담긴 솟대와 액을 물리치고 좋은 운을 가져온다는 장승을 새기기 시작했지요. 요즘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잠이 안 오면 작업을 해요.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날밤을 하얗게 새운 적도 많아요."

야트막한 산기슭을 비집고 다닥다닥 붙은 다랑이논과 다랑이밭. 그 다랑이밭 한가운데 싯푸른 대나무 잎사귀가 솟대처럼 빼곡하게 서걱거리고 있고, 감나무 두 그루가 마른 손을 흔들며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처럼 우뚝 서 있다. 그 사이에 다슬기처럼 야무지게 붙어 있는 일곱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 하나.

저만치 금방이라도 짙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가 버릴 것처럼 우뚝 솟은 쥐빛 솟대. 솟대를 한껏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쥐빛 장승.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놓인 돌들. 기묘한 모습을 띤 채 수북히 쌓여 있는 나무. 자그마한 통나무집을 떠올리게 하는 우편함. 그 곁에 어른 손바닥만하게 붙어 있는 납작한 나무 간판 하나.

첫 눈에 보기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언뜻 이 세상과 담을 쌓은 누군가가 수도승처럼 웅크리고 사는 그런 곳처럼 느껴진다. 그래. 이곳이 바로 솟대와 장승의 달인 최명순(46)씨가 밤낮 조각칼을 들고 나무와 씨름을 하고 있는 '운재 산방'이다. '운재'(運在)란 최명순씨의 다른 이름으로 '늘 운이 있으라'는 그런 뜻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보니까 니스칠도 하고 색깔을 알록달록하게 칠하기도 하던데?"
"저는 자연 그대가 더 좋아요."
"그냥 저대로 두면 작품에 좀이 슬거나 오래 가지 못하지 않습니까?"
"실생활품으로 쓰지 않는 이상 비만 맞지 않는다면 쉬이 썩지 않지요. 게다가 저는 때죽나무를 쓰기 때문에 가만히 두어도 색깔이 저절로 변하면서 오래 가지요."

지난 19일(토) 하늘이 몹시 푸르른 날, 시퍼런 보리가 자라는 들녘에서 봄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그날 찾아간 경남 함안군 칠원면 운서리 216번지에 있는 '운재 산방'. 이 자그마한 운재산방이 나무공예가 최명순씨가 그 독특하고도 기묘한 모습의 솟대와 장승, 목어 등을 조각칼로 깎고 있는 곳이다.


운재산방의 문을 열자 벽에 주렁주렁 걸려 있는 장승들과 다가서면 금세 푸더덕 하고 날아가버릴 듯한 솟대, 목어 등이 빼곡하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금세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아니, 마치 이 세상사람들이 저마다 간절히 원하는 꿈들이 이곳에 소롯히 모여 있는 듯하다.

안동 하회탈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미소를 띠고 사이 좋게 몸을 부비고 있는 손가락 굵기만한 장승. 이 세상살이의 시름을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겠다는 듯이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는 장승. 금세 누군가에게 뒷통수라도 얻어맞은 듯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장승. 풍경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활짝 웃고 있는 엄지손가락 크기만한 대나무 뿌리로 만든 자그마한 장승들.

그 사이를 천천히 헤엄치고 있는 것만 같은 목어. 행여 이 더러운 세상에 비늘 하나라도 떨구지 않겠다는 듯이 동그란 입을 벙긋거리고 있는 목어, 목어들. 뭇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물고 저 푸르른 하늘로 날아가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열고야 말겠다는 듯이 긴 부리를 한껏 치켜든 솟대, 솟대들.

하지만 최명순 장인은 "아무 것도 볼 게 없어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마치 아무에게도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비밀한 그 무엇을 보여주고 있다는 투다. 디카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 하자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사진까지 찍으려고 하느냐, 부끄럽게"라며 손짓으로 부른다. 얼른 이곳으로 와서 차나 한 잔 마시란다.

"이 차는 제가 직접 딴 버섯을 말려 끓인 버섯차예요. 향과 맛이 다른 차에 비해 조금 독특할 거예요."
"근데 이건 뭐죠?"
"버섯 말린 건데 한번 드셔 보세요. 쫄깃쫄깃한 게 그럭저럭 먹을 만 할 거예요. 저는 나무를 깎다가도 입이 심심하면 그걸 하나씩 주워먹는답니다."
"손바닥만한 저 장승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하루 정도면 충분해요. 하지만 규모가 크거나 섬세한 작품을 만들 때는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하지요."

그이가 내는 버섯차는 그의 작품처럼 맑고 향기롭다. 말린 버섯을 물에 촉촉하게 적셔 나무 토막으로 찍어 먹는 버섯도 쫄깃쫄깃한 게 혀 끝을 간지럽히는 은근한 감칠맛이 끝내준다. 하지만 빈 찻잔에 찻물을 부어주는 그이의 손은 여자의 부드럽고 고운 손이 아니다. 아마도 오랜 시간 나무와 조각칼에 몹시 시달렸기 때문이리라.

근데, 그이의 몸짓을 보면 무언가 조금 불편한 듯하다. 마주 보며 차를 마시면서도 새악시처럼 자꾸만 고개를 수그렸다가 돌리기를 반복한다. 왜 그러냐고 묻자 탁자 위에 올려진 디카를 은근슬쩍 곁눈질한다. 카메라에 찍히기가 싫다는 표정이다. 아니, 날뛰는 사람들이 하도 많은 세상인데 자기까지 그렇게 날뛰고 싶지 않다는 투다.

너무나 겸손하다. 그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더 숙인다고 했던가. 올 봄에 개인 전시회를 한번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최명순 장인은 "아직 멀었어요. 제 나이가 육십쯤 되면 몰라도"라며 손사래를 마구 친다. 그 손사래질에 놀란 듯 벽에 주렁주렁 매달린 장승 하나가 눈을 크게 뜬다.

"이 주변에 때죽나무가 좀 있나요?"
"네. 제법 있어요. 저는 때죽나무를 채취하면 70% 정도 말린 뒤에 작업에 들어가요. 그래야 변형도 없고 칼도 잘 들어가거든요."
"사포를 쓰나요?"
"저희 스승님(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아 박찬수)은 사포를 절대 쓰지 못하게 해요. 하지만 저는 얼굴은 그대로 두고 몸은 사포로 다듬어요. 얼굴은 미세한 칼집이 있는 그대로가 훨씬 더 보기 좋거든요."


독특한 삶과 나무를 통한 희귀한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는 나무공예가 최명순. 1959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그이는 목조각장 목아(木我) 박찬수 선생(1대)의 2대 제자로 목공예에 입문했다. 그 뒤 제7회 경남서각회 회원전과 제33회 경남 공예품 경진대회에 솟대와 장승을 출품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무와 살고 나무와 함께 죽겠다는 최명순 장인. 그이는 오늘도 시골의 자그마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홀로 나무와 씨름한다. 그 누군가와의 타협도 없이, 그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은 채 나무만 바라보며 세월을 깁고 있다. 그가 늘 손에 쥐고 매만지는 그 나무가 곧 사랑하는 사람이며 토끼 같은 자식들이다.

하지만 너무 외골수다. 그의 몸짓을 찬찬히 살펴보면 죽는 날까지 이 세상과 결코 악수를 나누지 않겠다는 투다. 그이가 겸손을 훌훌 털고 이 세상 밖으로 나올 날은 언제쯤일까. 운재산방 뒷뜰에 서 있는 마른 감나무 가지에서 파아란 움이 틀 때쯤 그이와 그이의 작품을 이 세상 밖에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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