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묵은해를 보내는 저의 마음이 새삼 감동되어 새해를 맞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힘들고 아픈 시간들이 많았고, 다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힘겨운 날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저 자신을 돌아보며 채찍을 하고 반성을 하면서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작년, 그러니까 지난 말이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남은 달력의 남은 하루를 어머니와 함께 보내기 위해 고향집에 들렀습니다.
그동안 가까우면서도 먼 곳처럼 느껴졌던 고향집,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자주 왕래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신년 연휴를 좀 알차게 보내고 싶었던 저의 마음이 통했는지 그날 아침, 출근한 저에게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어머니는 연말이라 자식 중 누군가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셨겠지요. 그 자식 중 누군가이라면 바로 막내딸이길 바랐던 모양입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엔 기운이 없었습니다.
바쁜 농사철이 지나고 겨울 농한기엔 심심하고 따분할 정도로 적막한 곳이 시골입니다. 농사철이라 바쁘다면 전화 수화기를 들 시간조차 없으실 시간에 어머니는 이 자식 저 자식에게 전화하고 행여나 들릴까 기대를 하십니다. 평소 잘 찾아뵙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닌데 유독 이 농한기엔 어머니의 전화기는 바쁘십니다.
유독 저의 어머니만의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둔 자식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마운 고충(?)일 테지요.
마지막 날, 학생들도 없는 학교에 출근하여 서류정리를 하고 한 해를 보내는 마음으로 힘들었던 지난날을 돌아봤습니다. 그런 힘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밝아오는 새해는 더 희망차고 한동안 약해졌던 마음도 더 단단히 굳어져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그러니 좋은 기억으로 값진 경험으로 삼자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치 새해를 빨리 맞이하고픈 제 마음을 아는 듯 말입니다.
퇴근을 하면서 저는 남편, 딸아이와 적당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시골에선 가게가 없어 마땅히 먹을 게 없어서 뭐든 준비해야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겨울날엔 어머니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간식거리가 많았지만 요즘은 사실 어머니의 연세가 있으셔서 시골이라 해도 없습니다.
솥뚜껑 뒤집어놓고 구워먹던 부침개, 호박죽에 호박부침, 군고구마, 일명 ‘술빵’이라고 부르는 술떡이며, 팥을 으깨어 만들어 먹던 '주걱떡‘, 시루떡… 뭐 이런 것들은 어머니의 잠깐 손만 거치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먹고 돌아서면 또 다른 먹을거리들을 내놓으시던 어머니였습니다. 이젠 저희가 재료를 사다 나름대로 흉내를 내보지만 옛날 그 맛은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맛있다며 드시는 어머니를 보면 괜히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요.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들로 몇 가지를 골랐습니다. 가게가 없어 다시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에 새해 첫날 어머니와 함께해 먹을 반찬거리를 사고 있는데 느닷없이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의 전화였습니다. 아침에 전화 통화를 한 후 여태 점심도 드시지 않고 기다리신 모양이었습니다.
찬거리를 사고 있다고 하니 어머니는 순대가 먹고 싶다 하셨습니다. 순대라곤 모르셨던 어머니, 언젠가 딸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였습니다. 용돈을 넉넉히 드리지 못하던 제가 그나마 어머니를 향한 마음은 또 간절해 그냥 고향집에 들르지 못하고 차비 아껴 순대를 푸짐하게 사들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드시지 않으셨던 것을 뿌리치진 않으실까 걱정하면서 조심스레 어머니 앞에 내 놓았던 순대, 어머니는 뭐 이런 게 있냐며 한 점 드시곤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생전 처음 먹어보지만 생각보다 맛나다고 말입니다.
그 뒤로 어머니는 늘 저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인지 뭐 필요하거나 먹고 싶은 거 없냐고 하면 ‘순대만 쪼매 사온나’ 하십니다. 맛도 있거니와 막내딸 주머니에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그러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전 지금까지 순대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넓은 집에 적막하니 조용합니다. 어머니는 기름을 아끼신다고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으셨는지 집안은 냉기가 스며들었고, 어머니는 전기장판 하나에 몸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늘 직장에 다니면서 지나쳤던 고향집, 손수 차를 운전하고 다녔으면 수시로 들렀을 텐데 괜히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더 들었습니다. 사들고 간 반찬거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는데 노란 양푼이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양푼이 위에 덮힌 접시를 들춰보니 아, 지난 동짓날에 절에서 얻어놓은 팥죽이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니는 집에서 손수 팥죽을 하지 않으시고 근처 절에서 한 그릇 드시는 걸로 한 해를 마무리하셨지요. 먹을 사람도 없고 가마솥에 하려면 힘에 부쳐 못하겠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동짓날 되지 전 며칠 전에 팥죽을 먹고 싶다고 통화한 것을 어머니는 기억하셨던 모양입니다. 절에서 막내딸 한 그릇 준다고 얻어놓았지만 제가 퇴근을 하고 시간 내서 가기로 했지만 자꾸만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에 언니들이 몇 번 들렀다는 말에 당연히 언니들한테 주었거나 주위 분들과 나눠 드셨겠지 했습니다. 한데 양푼이 안에 빨간 팥죽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언니들이 먹겠다고 들춰내는 걸 못 먹게 했다고 말입니다. 언니들이 먹겠다고 꺼냈던 걸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러길 몇 차례 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언니들 간의 논쟁이 안 봐도 보는 듯 생생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차게 먹으면 탈난다고 어머니는 가스불에 다시 데워주셨습니다. 동짓날이 지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팥죽이 있었다니…. 생각할수록 그 팥죽을 떠먹는 내내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새알이 퍼져 그 형체를 알 수 없었고, 약간 쉰 맛이 느껴졌지만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비록 배가 아파 응급실로 실려 갈지언정 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그릇을 먹고 저녁에 또 먹고 해서 양푼이 한 그릇을 다 먹었습니다.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말을 얼마나 했던지…. 먹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혹 내년에도 그렇게 저 먹으라고 팥죽 한 그릇 남겨두시겠지요.
그동안 저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가 생활의 전부를 차지했습니다. 역시 어머니는 저의 뒤에서나 그 어디에서나 저를 위해 힘을 남겨두고 계셨습니다. 올해는 어머니 가까이서 예전보다 더 보살펴드리고, 순대를 많이 사 드려야겠습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전 올해 시작합니다. 그동안 못다 한 많은 말들을 이제 조금씩 풀어가면서 그렇게 올 한해 보람되고 알차게 보내야겠습니다. 팔죽 한 그릇을 지켜주신(?) 어머니의 그 마음, 그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 건강하시길…,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