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문의 맏며느리 하정임 여사가 지난 1월9일 오전 6시39분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인 고(故) 하 여사는 LG가문 맏며느리가 된 이후 평생을 자식들이 형제간의 우애와 근검절약 속에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키우는 데 힘써온 자상한 어머니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맏며느리로서 시부모와 8명의 시동생을 극진히 보살피며 집안의 화합에 늘 앞장섰다는 게 LG그룹 안팎의 전언이다. <시사신문>은 12일 경기도이천 LG인화원 인근 봉안당에 영면(永眠)한 고인의 지난 온 삶을 되돌아 봤다.
형제간 우애와 근검절약 가르친 ‘LG家 어머니’
조용하지만 든든한 내조, 집안 제사 직접 준비

구 명예회장의 아버지인 고 구인회 LG창업주는 당시만 하더라도 사업에 틀을 잡지 못하고 고생하던 시기였지만, 구 명예회장이 장손이라는 점에서 선비 집안의 장녀인 하 여사를 종부로 삼기로 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어머니로, 며느리로 헌신
이렇게 LG가문의 맏며느리가 된 하 여사는 구 명예회장과의 슬하에 1945년 장남인 구본무 LG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미정씨,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 등 4남 2녀를 뒀다.
하 여사는 자식들이 형제간의 우애와 근검절약 속에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키우는 데 일생을 헌신한 그야말로 자상한 어머니였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은 평소 “엄격한 가르침과 따뜻한 사랑으로 자식을 바르게 키우는 부모의 모습을 엄부자모(嚴父慈母)라고 하는데, 바로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그런 가정교육으로 우리 여섯 남매를 길러주셨다”라고 말했다.
특히 맏며느리로서 시부모와 8명의 시동생을 보살피는 ‘종부’의 역할에도 최선을 다했다. 재계에 따르면 일례로, 하 여사는 재벌가 맏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제사를 한번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제수용품과 음식 등을 일일이 자신이 직접 준비했다.
자신의 자식들뿐만 아니라 범LG가(구씨·허씨)의 화합에도 늘 보이지 않게 버팀목이 됐다. 든든한 내조를 몸소 보여줬다는 게 LG그룹 안팎의 전언이다.
특히 구 명예회장이 기업인으로서 어려운 결단을 해야 하는 고비마다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LG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큰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 희수(77회 생일) 축하모임에서 “지난 60년 동안 일생의 반려로서 묵묵히 내조해 준 집사람에게 정말 고맙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밝힌 바 있는 구 명예회장은 장례식장에서도 조문객을 맞으면서 눈물을 흘렸는가 하면, 부음 기사를 읽으면서도 오열한 것으로 전해져 고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짐작케 했다.
자녀 명망가 집안과 성혼
여성의 경영참여를 불허하는 LG가문의 특성상 기업경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자식의 혼사는 LG가문을 국내 재계의 중심에 세운 초석이 됐다. 구본무 회장을 김태동 전 보사장관의 딸 영식씨와 결혼시킨 것을 비롯해, 6남매 결혼시키면서 대한보증보험, 대한펄프 등 명망가 집안과 사돈관계를 맺었다.
한편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된 GS, LS그룹도 고인의 소식에 깊은 슬픔에 잠겼다. 빈소가 차려졌던 서울대병원에는 허씨(許氏)가 중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가장 먼저 와서 조문했고,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 허명수 GS건설 사장, 허태수 GS홈쇼핑 사장 등이 잇따라 애도의 뜻을 표했다. 또한 구자홍 LS그룹 회장과 구자열 LS전선 부회장 등 범LG가문 일원들의 조문행렬도 이어졌다.
고인은 12일 가문의 뜻에 따라 화장된 뒤 장지인 경기도 이천의 LG인화원 인근에 마련된 봉안당에 안치됐다.

고 하정임 여사의 빈소에는 장례식 내내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노무현 대통령 등은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고,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 권오규 부총리, 전윤철 감사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이 조문했다.
재계 주요 인사들의 조문 행렬도 이어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조화로 예를 표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박용오 두산그룹 명예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등은 빈소를 직접 찾아 애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정의선 기아차 사장도 직접 빈소를 찾았다.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은 구 명예회장과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생전 친분이 깊었던 인연으로 빈소를 찾았고, 박해춘 우리은행장과 신상훈 신한은행장 등 금융계 인사들도 조문했다. 이밖에도 많은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한편 LG그룹에서는 강유식 LG 부회장과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등 계열사 경영진과 임원 등 2백여명이 빈소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