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내 ‘빅3’로 불리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재오·정몽준 의원 사이에 ‘삼각전선’이 급속도로 형성되고 있다. 이른 바 4·9총선을 앞두고 서둘러 불거진 ‘post 이명박’을 향한 한 치 양보 없는 한랭전선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며 ‘빅3’의 팽팽한 ‘자리다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빅3’측에서는 ‘post 이명박’을 향한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난 것으로 보고 4·9총선 공천권과 특사, 국무총리, 최고위원직을 둘러싼 ‘해법찾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한나라 ‘빅3전선’ 배후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있다. 이 당선자는 지난 경선 때부터 껄끄러운 상대였던 박 전 대표보다 지난 대선에서 ‘양 날개’ 역할을 했던 이재오·정몽준 의원에게 당권과 차기대권을 맡기고 싶은 듯한 눈치다. 이는 이 당선자의 4강 외교의 축인 미·일·러·중에 파견할 특사 임명과 국무총리직 제안 등에서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당선자가 박 전 대표에게 미국특사가 아닌 중국특사를 맡긴 것은 공천권 잡음 해소와 더불어 당권·차기대권을 지키기 위한 사전포석일 수도 있다”고 가늠한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을 박 전 대표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중국특사를 ‘OK’한 것은 ‘국익’이라는 큰 틀을 지켜 대국민에게 공천권 다툼만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자의 국무총리직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함으로써 당권과 차기대권만큼은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정 의원은 당권과 차기 대권을 향한 ‘이명박표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토의종군’을 외치며 2선으로 물러났던 이 의원은 한반도 대운하 상임고문과 러시아 특사를 꿰찬데 이어 최고의원직 복귀까지 서두르며 당권장악을 꿈꾸고 있다. 정 의원도 마찬가지다. 정 의원은 4강 외교의 ‘핵’인 미국특사에 이어 최고의원직 내정으로 이번 4·9총선에서 한나라당 과반의석 확보의 주춧돌이 되어 차기 대권을 확실하게 틀어쥐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4강 외교’의 첫 걸음마가 될 특사단장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중국)와 이재오 의원(러시아), 정몽준 의원(미국), 이상득 국회부의장(일본)을 내정했다. 이와 함께 이 당선자는 ‘이명박 정부’를 강력하게 이끌어 갈 국무총리를 비롯한 조직 인선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수’ 숨긴 특사, 국무총리직
이 당선자의 4강 외교 ‘비책’은 한·미 동맹 강화와 일본과의 관계 회복, 중국·러시아와의 자원외교 강화다. 이 당선자는 이를 위해 취임 전 특사파견과 정부 부처 조각 및 인선을 통해 국정을 확실하게 틀어쥐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띠는 인사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중국특사 내정과 국무총리직 제안이다. 이 당선자가 박 전 대표에게 ‘알짜외교’인 미국특사를 맡기지 않고 중국특사를 맡긴 까닭은 무엇일까. 더불어 총리감이 줄을 서있는 이 당선자 측에서 굳이 박 전 대표에게 국무총리직을 제안한 숨은 뜻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박 전 대표의 중국특사 내정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이방호 총장의 ‘40% 공천 물갈이론’에 따른 당내 공천 잡음을 최소화하고 공천 연기에 따른 당내 ‘親朴’세력의 독자적인 행동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둘째, 박 전 대표를 ‘앙코 없는’ 중국특사에 내정하고, 정 의원을 ‘알짜 있는’ 미국특사에 내정한 것은 차기대권을 꿈꾸는 정 의원에 대한 배려라 볼 수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당권과 차기 대권을 거머쥐려는 박 전 대표에게 보이지 않는 ‘비수’를 들이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가늠한다.
특사단장, 총리제안 속내…‘공천권’ ‘당권’ ‘차기대권’ 지키기
박근혜 ‘중국특사’ OK=국익차원, “국무총리 ‘땜질’ 어림없어”
이 당선자가 박 전 대표에게 국무총리직을 제안한 것도 최근 당내 갈등 조짐과 새 정부 출범 이후의 밑그림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즉 이 당선자가 보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정을 원활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박 전 대표보다 ‘양팔’인 이·정 두 의원이 당권과 차기대권을 확실하게 거머쥐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거나 이회창 후보와 힘을 합쳐 영남과 충청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때문에 이 당선자로서는 박 전 대표를 국무총리로 붙잡아둬야 집단 탈당 움직임도 막고, 압도적 총선 승리를 통해 당권과 차기대권까지 지킬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의 속셈을 모를 리 없다. 때문에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자의 총리직 제안을 ‘무 자르듯이’ 잘라버렸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총리직을 수락하게 되면 이번 4·9총선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문제다. 당권과 대권을 노리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불투명해지는 것은 물론 자칫 ‘무게중심’이 사라져 親朴세력 자체가 와해될 수도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당선자의 속셈은 당권과 차기 대권을 놓고 겨룰 ‘2인자 그룹’을 동일 출발선상에 묶어 경쟁케 하여 종국엔 이 의원에게 당권을, 정 의원에게 차기대권을 맡기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며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의 ‘거미줄 승부’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내다봤다.
국무총리 ‘NO’ 중국특사 ‘OK’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이명박 당선자가 내민 ‘당근’ 두 개 중 하나는 먹고, 하나는 매몰차게 짓밟았다. 이 당선자의 중국 특사단장직 내정은 수락하고 총리직 제안은 “정치 발전과 나라 발전을 위해 당에서 할 일이 많다”며 ‘단칼’에 자른 것이 그것.
박 전 대표가 중국특사를 쉬이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국익’ 때문이다. 이는 박 전 대표의 평소 소신이 공천문제 등은 정치의 영역이고 국익을 위해선 정치적 계산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듯하다. 게다가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의 특사 제안을 거절하게 되면 ‘공천권 땜에 새 정부 국정 운영을 가로 막는다’는 국민정서법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중국특사를 수락했다고 해서 공천 문제에 대한 입장이 변한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예민한 시기에 국익을 위해 중국특사를 수락한 것인 만큼 차후 공천 갈등에서 일정한 명분을 확보한 것일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국무총리직 제안을 ‘단칼’에 자른 까닭도 중국특사 수락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 전 대표의 국무총리직 제안 거절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박 전 대표가 총리직을 수락할 경우 이번 4·9총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선거일 60일 전에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총리직을 맡게 되면 親朴세력의 ‘구심점’이 사라져 이번 총선에서 대거 탈락할 수도 있다.
둘째, 박 전 대표의 총리직 수락은 이번 4.총선 공천권 포기나 다름없다. 따라서 박 전 대표의 공천권 포기는 곧 ‘당권포기’와 같다. 이와 함께 당권을 잃게 되면 ‘박근혜의 용꿈’도 ‘일장춘몽’이 될 수도 있다.
셋째, 차기 대권을 꿈꾸는 박 전 대표가 의원직을 포기할 수 없다. 총리 수락으로 이번 총선에서 의원직을 잃게 되면 당내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게다가 총리직이란 것은 임명권자의 입장에 따라 언제든지 물러나야 한다는 것.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로서는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여 국정 경험을 쌓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박 전 대표가 총리직 제안을 거절한 까닭은 총리직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뒤에 ‘당권과 차기대권 포기’라는 숨겨진 ‘비수’를 미리 읽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토의종군’ 이재오, 화려한 컴백
‘토의종군(土衣從軍)’을 외치며 2선으로 물러섰던 이재오 의원이 ‘화려한 옷’을 입고 1선으로 컴백했다.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 포스 상임고문에 이어 러시아 특사단장에 최고위원직 복귀까지 서두르고 있는 것.
이 의원이 러시아 특사단장을 맡게 된 배경에는 이 당선자의 당권 장악에 따른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즉 이 의원을 박 전 대표?정몽준 의원과 동일 선상에 올려놓음으로써 이 의원이 사실상 ‘당권 적임자’라는 사실을 이 당선자 스스로 공인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안팎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근데도 이 당선자가 이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차기 정부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어가야 할 이 당선자로서는 親朴세력과 親李세력으로 양분되어 있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확실한 자기 지지 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날개 단 이재오, 대운하 상임고문, 러시아특사, 최고의원까지
차기 ‘대권주자’ 꿈꾸는 정몽준… 4·9총선 승리 주춧돌 자임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당선자로서는 ‘이명박 정부’의 기본이 되는 정부조직 개편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 초대 조각 인선안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당과의 한 판 힘겨루기를 벌이려면 ‘힘 있게’ 밀어붙힐 수 있는 이재오 의원 같은 인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둘째, 4·9총선 공천 갈등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박 전 대표 진영과 치밀한 ‘수 싸움’을 벌여야 한다. 때문에 이 당선자의 ‘깊은 뜻’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 의원이 확실한 적임자다.
이 당선자가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 포스에 이 의원을 상임고문으로 임명한 것도 반대론자들을 설득하고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역할을 이 의원에게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당선자로서는 이번 4·9총선 공천과 오는 7월에 있을 당권투쟁에서 親李세력이 반드시 주도권을 쥐어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물론 당권과 차기대권을 이 당선자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내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이 의원이 당권을 거머쥘 적임자임을 내비쳤다.
‘어부지리’ 정몽준
‘朴·李’싸움에 정몽준 의원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 의원은 대선기간 중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고, 최근 미국특사 내정에 이어 당 최고위원직까지 내정되어 있다. 따라서 정 의원이 최고위원에 선출되면 박근혜 전 대표를 ‘축’으로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치열한 ‘post 이명박’ 자리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 당선자가 한·미 동맹을 아주 중요시하고 있는 데다 이 당선인의 첫 정상회담이 한·미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정 의원의 천정부지로 치솟는 ‘몸값’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이 당선자가 박 전 대표와 이 의원 사이의 경쟁자로 정 의원을 내세웠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는 박 전 대표의 ‘당 장악’을 끊임없이 견제하다가 행여 박 전 대표의 ‘자리’를 이 의원이 차지하게 될 것에 대비, 이 의원으로의 ‘힘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무게중심추’가 정 의원이라는 것.
여기에 정 의원의 ‘경제 이미지’와 폭넓은 해외 인맥, 현대가라는 점도 이 당선자의 눈에 들었다는 게 정치권 일반의 분석이다. 이른 바 정 의원은 이 당선자에게 박 전 대표와 이 의원의 ‘힘쏠림’ 현상을 막아주는 일종의 ‘히든카드’인 셈이다.
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은 ‘총리’니, ‘차기’니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당에 안착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한다. 정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4·9총선 지원유세 등을 통해 당 과반 의석 확보에 주춧돌이 되어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넘보겠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적 출범과 총선 압도적 승리는 정 의원의 향후 진로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정 의원이 이번 총선에서 얼마만큼 큰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권의 향방도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나라당 관계자도 “정몽준 의원이 최고위원에 단독 입후보할 것으로 안다. 이는 이명박 당선인의 의중과도 관계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정 의원의 차기 ‘대권주자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