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 바 ‘뒷간정치’를 끝장내고 새롭고 맑은 ‘피’(인재)를 수혈하기 위한 각 당의 ‘물갈이 쓰나미’가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4선 이상 원로급 의원들과 중진의원들은 ‘제18대 공천 살생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갈이 쓰나미’의 뿌리는 3김 시대의 ‘사당정치’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정치권은 ‘인맥정치’ ‘계파정치’ ‘줄서기 정치’로 얼룩져왔고, 총선 때마다 그 ‘여진(餘震)’으로 어김없이 ‘물갈이론’이 터져 나왔다. 제18대 총선정국 ‘물갈이 쓰나미’의 원조는 한나라당 이방호 총장의 ‘공천 40% 물갈이’ 발언과 범여권의 ‘대선패배 책임론’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공천권을 둘러싼 ‘親李’ ‘親朴’ 사이의 갈등이 폭발 직전에 있다. 대통합민주신당도 ‘대선패배 책임론’을 둘러싼 ‘핵분열’이 가속화하고 있다. 신당은 특히 김한길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과 정계은퇴,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탈당 등으로 각 계파별로 살 길 찾아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물갈이 쓰나미’에 휩쓸리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공천혁명론’과 ‘조순형 대안론’까지 맞물려 당 존립 자체마저 흔들리고 있으며, 민노당은 이념논쟁으로 분당의 위기에 몰려 있다. 이에 반해 창조한국당과 자유신당은 한나라당과 신당의 ‘물갈이 쓰나미’에 휩쓸린 인사들을 대상으로 ‘이삭줍기’, ‘뺏지우선주의’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에 ‘물갈이’라는 북풍한설이 휘몰아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탄핵 직후였던 17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43%의 ‘새 피’를 수혈한 바 있고, 16대 총선 때도 약 35%의 현역 의원을 ‘물갈이’ 한 바 있다.
이상득 부의장 ‘암초’
한나라당 내 “공천혁명에 가까운 물갈이가 있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親朴계 의원들과 4선 이상 의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들 의원들은 공천 탈락 조짐이 보이면 언제든지 ‘새둥지’를 찾아 떠날 각오까지 다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는 親朴계 의원들을 공천에서 무더기로 탈락시킬 가능성에 촉각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당 원로인 親朴계 김용갑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당내 4선 이상, 60대 중반 이상의 원로ㆍ중진들도 공천 탈락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새 피’가 될 뉴라이트 등 외부 인사들과 호남, 충청 등 서부벨트 지역 인사들의 대거 영입설도 30%대 이상 ‘물갈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번 총선 물갈이가 17대 총선과 다른 점은 한나라당 내 원로·중진을 포함한 현역 의원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는 성취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 30% 이상 ‘명박 피’ 수혈… 親朴계, 4선 의원들 “새둥지 찾아라”
손학규號 ‘망망대해’ 닻 올려…‘친노’ ‘정동영계’ 줄줄이 보따리 싼다
현재 한나라당 내 4선 이상이거나 60대 중반 이상인 현역 의원은 모두 12명. 그중 “3선 의원이면 국회의원으로서는 환갑”이라는 말로 총선 불출마 입장을 밝힌 인사는 김용갑 의원 1명뿐이다. 이들 중 당내 최다선인 5선 의원 5명은 강재섭 대표와 이상득 국회부의장, 박희태, 김덕룡, 정몽준 의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대선 공신들이어서 물갈이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상득 부의장의 6선 출마다. 이 부의장은 73세의 고령에다 이 당선자의 친형이란 점이 한나라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 당선자 측에서 親朴계 현역 의원들을 대폭 물갈이하려 한다면 이 부의장이 가장 큰 ‘암초’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 지도부가 親朴계 의원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킨다면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이들을 ‘물갈이’ 표적으로 삼아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자칫 ‘물갈이’를 하는 쪽이 이번 총선에서 ‘물갈이’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 떠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당, ‘아름다운 마무리’?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암초’가 곳곳에 널려 있는 대통합민주신당號의 새로운 선장이 되어 4ㆍ9총선이란 망망대해를 달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신당 안팎에서는 지난 대선의 참혹한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소 40%대 이상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친노’ ‘정동영계’ ‘초·재선의원’ 등 여러 계파가 이리저리 뒤섞여 있는 신당의 ‘물갈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신당에서 ‘대권패배 책임론’을 통감하며 스스로 불출마 선언을 한 중진급 인사는 김한길 의원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손학규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며 신당을 탈당, 친노파 의원들의 탈당 도미노 가능성도 짙다. 따라서 신당은 친노파 의원들의 대거 탈당이 곧 정동영계 탈당으로 이어지면서 대폭적인 ‘물갈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손 대표는 한나라당 전력 등 정체성 논란을 안고 당 대표로 선출된 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공천권을 행사해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친노, 정동영계 등이 잇따라 보따리를 싸게 되면 손 대표로서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 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손 전 지사는 이에 대해 “우리는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새로운 진보세력을 준비할 수 있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며 ‘새로운 진보론’으로 ‘反 손학규’ 계파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손 대표의 ‘물갈이’는 결국 반대세력의 반발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결론날 것”이라며 “문제는 그 정도 물갈이로 최상위법이라는 국민정서법을 제대로 통과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한다.
손 대표의 ‘물갈이’에 따른 고민이 여기에 있다. ‘대선패배 책임론’을 안고 있는 친노파와 정동영계를 버리자니 신당의 ‘색깔’이 옅어지고, 그대로 두자니 이번 총선 대패는 불 보듯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 대표가 친노파와 정동영계란 ‘계륵’을 어떻게 주무르느냐에 따라 이번 총선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 ‘공천혁명’, 민노 ‘이념논쟁’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물갈이’에 따른 ‘연합공천론’과 ‘조순형 대안론’,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이념논쟁’ 등으로 ‘좌표’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0.7%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물겨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박상천 대표는 18대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범여권 ‘연합공천론’을 펴고 있고, 김민석 쇄신위원장은 ‘조순형 대안론’을 내세우며 ‘물갈이론’을 펴고 있다.
박 대표의 연합공천론의 골자는 호남지역에서는 범여권 각 당이 후보를 내 자유경쟁을 하게 하고, 수도권 등에서는 연합공천을 통해 한나라당의 ‘총선 싹쓸이’를 막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는 계산에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의 연합공천 제안은 이번 총선에서 호남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생존전략이라고 여기고 있다.
김민석 ‘조순형 대안론’… 민주노동당, 이념 논쟁 격화 ‘분당설’까지
창조한국당, 자유신당…물갈이 따른 ‘이삭줍기’ ‘뺏지우선주의’ 회귀
이에 반해 민주당 김민석 쇄신위원장은 “당의 정체성 정립과 지지율 회복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쇄신 작업의 급선무”라며 “국민들이 원하는 물갈이 대상은 신당”이라고 못박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와 함께 “조순형 의원이 당에 돌아오는 것은 매우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조순형 대안론’으로 ‘물갈이 쓰나미’를 몰아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3.0%의 지지율을 얻은 민주노동당도 물갈이에 따른 극심한 이념논쟁을 겪고 있다.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NL)가 평등파(PD)의 종북(從北)주의 청산 요구를 정면 비판하면서 양대 계파 간 이념논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자주파 핵심인사 김창현 울산연합 대표는 “정치력으로 풀어야 할 사안에 대해 굳이 명문화를 요구함으로써 상대방을 제거시키려 한다는 불신감을 줬으며 (평등파의) 분당론에 대해 보다 단호하게 일갈했어야 했다”며 평등파를 꼬집고 나섰다.
하지만 김 대표는 평등파가 요구한 비례대표 포기에 대해서는 “대선패배에 책임이 있는 당권파로서 비례대표 불출마를 흔쾌히 생각하고 있다”며 ‘화합의 물꼬’를 틔웠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민노당은 대선 참패에 따른 후유증이 날이 갈수록 당내 이념논쟁으로 심화되고 있다”며 “민노당은 물갈이가 아니라 자칫하면 분당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삭줍기’ ‘뺏지우선주의’ 회귀
창조한국당과 자유신당(가칭)은 ‘물갈이’가 아니라 ‘이삭줍기’와 ‘뺏지우선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창조한국당은 특히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당의 진로와 방향을 놓고 문국현 대표 측근과 당 핵심인사 사이에 갈등이 분출되고 있다. 당 안팎에서 “이렇게 가다가는 자칫 4월 총선도 치르지 못하고 당이 공중분해 될 것”이라는 말이 떠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당내 유일한 현역 국회의원인 김영춘 의원과 김헌태 전 정무특보, 고원 전 전략기획단장, 김갑수 대변인 등 대선을 진휘했던 인사들이 당사에 아예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들은 “문 대표가 아직도 시민단체나 기업 운영하듯이 정당을 운영하고 있다”며 문 대표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창조한국당은 신당의 ‘물갈이’와 ‘탈당’ 등에 따른 ‘이삭줍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이번 총선에서 마땅한 후보가 없는 창조한국당으로서는 막판에 신당 내 친노파와 손을 잡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반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가칭 ‘자유신당’ 창당 발기인대회까지 마치고 본격적으로 창당 작업에 나섰다. 이와 함께 자유신당은 한나라당 공천과정에서 탈락하는 현역의원의 영입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모시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야말로 ‘뺏지우선주의’로 한나라당의 독주를 꺾고 이번 총선에서 원내 제1당으로 거듭난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미 신당의 충청권 의원 절반 정도가 자유신당행을 고민하고 있으며, 수도권 출신의 한나라당 의원들도 자유신당행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번 총선에서 ‘자유신당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칠 것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