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의 삶과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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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의 시조(고, 양, 부) 솟아나온 성지 '삼성혈'

신화의 섬 제주.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 제주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게 되었을까? 지난 7월 1일 특별자치도란 새로운 행정구역을 갖춘 제주에 맨 처음 생긴 나라 '탐라국'은 누가 세웠으며, 왜 고려와 하나의 국가로 합쳐졌을까?

김종서(1390~1453), 정인지(1396~1478)가 지은 <고려사>와 서거정(1420~1488)이 지은 <동문선>, 그리고 제주의 삼성신화를 담고 있는 옛 문헌 <영주지>(瀛州誌)에 따르면 탐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으며, 기이하게 빼어난 산이 하나 있는데 한라산이라 한다고 씌어져 있다.

그 한라산이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 년 앞에 불기운을 내려 제주 북쪽 기슭에 있는 모흥에 삼신인(三神人)을 탄생시키면서 비로소 제주에 사람의 모습이 처음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삼신인이 태어난 곳을 모흥혈(毛興穴)이라 하는데, 삼신인이 솟아나왔다 하여 삼성혈(三姓穴)이라 하며, 3개의 지혈(地穴)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제주도의 고(高), 양(梁), 부(夫)씨의 시조인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梁乙那), 부을나(夫乙那)라는 세 신인(神人)이 이때 나타나 탐라국을 세웠다는 것. 근데, 삼신인이 땅에서 솟아나왔다는 신화가 좀 독특하다. 대부분 우리나라 신화에 나오는 시조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한라산에서 활을 쏘아 생활터전 나눈 삼신인

신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시조 환인, 환웅도 하늘에서 내려왔고, 북부여의 해씨, 고구려의 고씨, 삼한시대 진한의 6부촌의 조상, 신라의 박혁거세와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 등도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제주의 시조 고, 양, 부씨는 특이하게도 땅에서 솟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기록에 나오는 제주 신화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하루는 가죽옷을 입고 수렵생활을 하던 삼신인이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동쪽바다를 바라보니 자주색 흙으로 막은 목함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삼신인이 지금의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 이르러 목함을 여니, 그곳에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이 있었고, 자주빛 옷에 관대를 한 사자가 있었다.

그 사자가 옥함을 열자 푸른 옷을 입은 아름다운 공주 세 명이 있었다. 이때 공주 세 명이 소와 말, 오곡의 종자를 삼신인 앞에 내놓았다. 삼신인이 말하기를 '이는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이다'라며 기뻐하자 사자가 두 번 절하며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올시다, 우리 임금님이 세 공주를 보냈으니, 배필로 맞아 나라를 세우시옵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이에 삼신인은 세 공주와 결혼하여 연못 옆 동굴에 신방을 차렸다. 이어 삼신인은 서로 살 곳을 정하기 위해 한라산에 올라 활을 쏘아 탐라를 제1도와 제2도, 제3도로 나누었다. 이때부터 삼신인은 정해진 땅에 오곡을 심고 소와 말을 기르며 촌락을 이루기 시작했고, 그 자손이 크게 늘어나 탐라국의 주춧돌을 만들었다." (글쓴이 고쳐 씀)

품(品)자 모양의 세 개 구멍은 바다로 이어져 있을까

제주에는 지금도 자주빛 목함이 올라온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를 연혼포(延婚浦)라 부르고 있으며, 세 공주를 따라온 말의 발자국들이 해안가에 남아 있다. 그리고 삼신인이 목욕한 연못을 혼인지(婚姻池, 제주기념물 17호), 신방을 꾸몄던 굴을 신방굴(神房窟)이라 부르는데, 신방굴 안에는 실제로 3개의 굴이 있다.

게다가 삼신인이 활을 쏜 지역을 '서시장을악'(射矢長兀岳), 활이 박힌 돌을 한데 모은 것을 '삼사석'(三射石)이라 부른다. 삼사석은 조선 영조 11년, 서기1735년에 김정 목사가 삼신인의 활 솜씨에 감탄, 이를 기념허기 위해 '삼사석'(三射石, 제주기념물 제4호)이란 비를 세우고 비에 시를 지어 추모하기도 했다.

그 뒤 탐라국 왕손들은 신라에서 작호를 받았으며, 백제, 고구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과도 독립국가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문물을 교류하며, 탐라왕국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고려시대에 이르러 탐라국은 고려로 합쳐진다. 그때 무슨 까닭으로 고려와 탐라가 하나의 나라로 합쳐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확실치 않다.

근데, 왜 제주의 삼신인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고 땅에서 솟았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삼신인과 결혼한 세 명의 공주는 왜 동해 속에 있다는 전설의 용궁나라 벽랑국에서 왔다고 하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예로부터 바다로 둘러쌓인 제주의 환경에서 비롯된 듯하다. 제주민들에게는 바다가 곧 삶의 터전이자 희망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도 제주민들은 삼신인이 나왔다는 '품'(品) 자 모양의 세 개의 구멍(삼성혈)이 바다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섬에 살고 있는 제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땅과 바다가 하늘보다 더 귀하다고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문에 삼신인이 바다와 땅에서 솟아났다는 신화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저 새의 시조는 태초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을까?

올해 초. 그러니까 지난 1월 3일 오후 3시, 나그네는 제주의 신화가 고스란이 깃들어 있는 삼성혈(三姓穴, 제주시 이도동, 사적 제134호)을 찾았다. 아름드리 송림 속에 "탐라의 발상지"라는 한문이 크게 씌어져 있는 건시문(乾始門)을 지나 성역 안으로 들어서자 빼곡히 우거진 숲속 곳곳에 정전, 숭보당, 전사청, 모성각, 홍상문 등이 듬성듬성 서 있다.

상큼하다. 문득 삼성혈을 향해 머리를 한껏 조아리고 있는 8백년 된 곰솔나무와 1백여 년 안팎의 소나무, 녹나무, 조팝나무, 머귀나무, 조록나무 등 70여 종의 나무들이 나그네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마치 삼신인이 탄생한 곳을 보려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가 내뿜는 맑은 공기에 이 세상의 속된 마음을 깨끗하게 씻으라는 투다.

저만치 숲속에서는 나그네가 처음 들어보는 맑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린다. 투명한 유리 위에 옥구슬을 굴리는 듯한 고운 소리를 내고 있는 저 새는 언제부터 저 숲에서 살았을까. 저 새의 조상은 태초에 제주의 삼신인들이 땅에서 솟아날 때에도 지금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굴리고 있었을까.

삼성전을 지나 삼성혈이 있는 잔디밭 앞에 다다르자 은빛 쇠줄이 나그네를 가로막는다. 삼성혈이 있는 곳은 출입금지다. 나그네가 세 개의 구멍을 보기 위해 아무리 발돋움을 해도 삼성혈 자리는 안으로 움푹 꺼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때 문득 나그네의 눈에 삼성혈을 둘러싸고 있는 기와담장이 보인다.

아무리 많은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쌓이거나 고이지 않는 삼성혈

옳커니. 밖으로 나가 저 담장 위에 올라가면 제주의 탯줄을 제대로 볼 수가 있겠구나. 서둘러 담장 밖으로 나그네가 나오자 아름드리 고목이 '거긴 올라가면 안 돼' 하는 듯하다. 하지만 뭍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곳 제주까지 와서 제주민들의 시조가 태어난 곳이라는 삼성혈을 보지 않고 어찌 그냥 돌아설 수 있겠는가.

삼성전 반대편 바깥에 있는 나지막한 기와담장 위에 나그네가 옹라서자 저만치 잔디밭에 두 개의 시커먼 구멍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머지 하나의 구멍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의 구멍은 고, 양, 부씨 삼성 중 어느 성씨의 탯줄일까? 위쪽 구멍 둘레 6자, 아래 두 구멍 둘레 3자.

그래. 저 곳에는 하늘에서 눈이 아무리 많이 오거나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쌓이거나 고이지 않는다고 했다. 더욱 신비스러운 것은 저 품(品)자의 구멍 세 개가 제주 앞바다까지 뚫려있다고 했다. 참일까? 하긴 그 말이 참이 아니라 해도 또 어쩔 것인가? 신화는 신화 그 자체로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가지 않겠는가.

그래. 어쩌면 삼성혈 주변의 아름드리 고목들이 모두 삼성혈 자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도 꼭 따지자면 삼성혈을 경배하기 위해 그렇게 가지를 뻗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삼성혈 자리에만 유일하게 큰 나무들이 없어 햇살이 잘 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 따진다면 이 땅에 신화가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아름다운 제주의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지구촌의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아니, 우리나라의 신화와 제주의 신화도 계속되어야 한다. 특히 제주의 삼성혈에 얽힌 신화는 다른 그 어떤 신화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흔히 인류의 역사는 통치지역이나 권력을 중심으로 한 투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주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였던 듯하다.

삼성인이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솟아나왔다는 것이나, 삼성인이 세 공주를 맞아 아내를 정할 때에도 아무런 다툼이 없었다는 것이나, 삼성인이 서로 생활의 터전을 마련할 때 한라산 중턱에 올라가 화살을 쏘아 정했다는 것이나, 그 뒤에도 삼성인의 자손들이 서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을 한번도 벌이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제주민의 탯줄 삼성혈. 그날 나그네는 제주의 신화가 새록새록 숨쉬고 있는 삼성혈을 바라보며 새삼 제주민들의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웠다. 제주의 시조에 얽힌 신화가 다른 신화들처럼 그렇게 신비스럽고 웅장하지도 않고 그저 소박스러운 것은 아마도 파도와 억세게 싸우며 살아가는 제주민들의 삶이 그대로 신화가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가는 길/ 서울-제주공항-서문로터리-중앙로-시민회관-KAL호텔 사거리-좌회전 100m-사적 제134호 '삼성혈'.

※제주공항에서 버스(36, 37, 100, 500)를 타고 KAL호텔 사거리에서 내려도 된다.(동쪽으로 100m 지점, 삼성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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