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면접〉, '세련스런 화법으로 현대 경쟁심리 묘파'
〈최종면접〉, '세련스런 화법으로 현대 경쟁심리 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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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어디까지 비열해지며 강해질 수 있느냐는 문제

▲ 왼쪽부터 배우 김정은, 안 현, 우승권, 이우진. 1시간40분 동안 거의 등퇴장 없이 진행되는 이 연극에서 배우들 연기 조화는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큰 힘이었다.
만일 그 면접만 통과하고 부와 권력을 거머쥐게 될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닐 수 있다면, 당신은 비장한 각오로 경쟁을 위한 싸움에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인격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존심과 존엄까지 짓뭉개며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한투쟁을 벌일 것이다.

거대한 다국적 기업 데끼아 코리아에서 고도의 정서적 압력을 견뎌야 하는 영업 부장을 채용하려고 한다. 네 명의 응시자가 이 채용면접에 지원할 자격을 갖춘다. 모날 모일 모시 이들은 호화로운 빌딩의 한 사무실 안에 모이게 된다.

현재 한국은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그 이상으로 늘어만 가는 답답한 상황이다. 오죽하면 면접에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기술을 다룬 책자들이 쏟아져 나올까.

사람은 선택의 동물이라고 믿고 있다. 자유로운 처지에서 나오는 선택이야말로 참다운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선택이 결국은 조작이었음을 알게 될 때 자유 감각에 기만당한 자신에 대해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스웨덴의 유명짜한 심리학자가 고안한 “그뢴홀름 방법” 면접 방식에는 인간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뭔가가 있다. 그런데 '그뢴홀름' 심리전문가들은 모르모트로 변한 면접 응시자들에게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극이 종국을 향해 나아가면서 관객들이 예측하던 생각들은 하나 둘 빗나가기 시작한다. 관객이 무엇을 추측하든 빗나갈 우려가 높은 의외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작품이 극단 「주변인」의 <최종면접>이란 작품이다.

극단 「주변인」의 상임연출가 서충식의 유연한 연출력과 개성적인 배우들의 앙상블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이번 연극은 면접 과정에서 불거지는 현대인의 생존투쟁에서 기본 모티브를 얻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조르디 갈세란(Jordi Galderán, 1964-)의 『그뢴홀름 방법론 El Método Grönholm』의 한국판인 <최종면접>은 이제는 더 새로울 것도 없는 경쟁관계로 맺어진 현대인의 현실을 유쾌하게 때론 날카롭게 비틀고 풍자하는 연극이다.

▲ 현대의 직장인은 어디까지 비열해지면서 강해질 수 있을까 라는 문제, 또는 서로 무한 속임수에 말려들어가면서 누가 진정한 승자로 남느냐의 문제. 정보를 독점한 자가 결국은 현대사회의 승자가 될 것인가!
우수한 원작의 힘도 있겠지만 이 연극의 최대 미덕은 배우로 나선 네 명의 배우들의 갈등과 대립의 끊임없는 변화다. 배우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한다.

연극의 면접 장면에선 무대의 옆 작은 우편함을 통해 여러 문제가 나온다. 처음 문제가 네 명 중의 한 사람이 회사 직원인데 10분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라는 것이다. 이에 네 명은 가짜 응시자를 찾아내려 서로 함정과 비수를 감춘 대화를 나누지만 어쩐지 공허하다. 왜냐하면 면접 주관자의 이 질문의 정답은 정말 이 네 사람 안에 회사 직원 한 명이 위장해 들어왔느냐 하는 것이 확실해질 때 정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키아 코리아는 응시자들의 비밀스런 사생활과 감추고 싶은 질병들까지 알고 있다. 정보를 독점한 자 : 정보가 공개된 자의 싸움은 해보나 마나다. 이런 상황에서 취직에 목숨을 걸고 프라이버시까지 포기해야 하는 응시자들의 모습은 누군지 연상되는 모습인 것 같아서 애처롭다. 그런 동병상련의 처연함을 이기고 <최종면접>을 끝까지 볼 수 있다면 당신은 그뢴홀름이 연출한 혹독한 면접을 통과할지도 모른다.

<최종면접>은 2월3일까지 대학로 블랙박스 씨어터 극장에서 상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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