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프리즘 4> 간판급 CEO 줄줄이 교체한 현대그룹
<재계프리즘 4> 간판급 CEO 줄줄이 교체한 현대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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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현대맨’ 현정은 회장이 팽 시켰다?

현대그룹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수 십 년간 현대그룹에 몸담았던 간판급 CEO들이 잇따라 사퇴하고 새사람으로 교체되고 있어서다. 지난해 전인백 현대그룹 기획총괄본부 사장에 이어 올해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마저 임기 1년여를 남겨두고 돌연 사퇴했다. 재계에서는 특히 노 사장의 퇴임을 두고 엇갈린 시선을 보이고 있다. 올해 55세를 맞이하는 노 사장은 아직 경영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을뿐더러 노 사장이 재임 중인 지난 6년여 간의 현대상선 경영성과 역시 뛰어나 퇴임시기가 이르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에서 재계에서는 노 사장이 현 회장에게 ‘팽 당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정은 회장 결과적으로 ‘친정체제 강화’ 발판 마련한 셈
적통성 중요시하는 노정익 사장 ‘현씨家’와 마찰 예고된 일

▲ 현대그룹을 이끌어오던 주요 사장단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현정은 회장은 친정체제 강화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사진/맹철영 기자>
지난 1월11일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의 퇴임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임직원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노 사장이 공식적으로 밝힌 퇴임 사유는 “제2의 인생을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하지만 재계에선 노 사장의 퇴임을 이해할 수 없는 처사로 보고 있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경영성과를 올렸고, 경영활동을 하기에 건강상 무리가 따르는 것도 아닌데 퇴임 시기가 이르다는 것.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굳이 서둘러 퇴임을 강행할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노 사장의 ‘현대사랑’ 역효과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노 사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팽 당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대그룹의 적통성을 두고 서로 의견충돌이 있었을 것이란 게 재계의 설명이다.

지난 30년간 ‘현대맨’으로 살아온 노 사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적통성’을 중요시 해왔다. KCC와 현대그룹이 경영권 분쟁을 벌일 당시 KCC측에서 노 사장에게 러브콜을 보냈으나 묵묵부답으로 대응할 정도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답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가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에 노 사장은 현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 사장의 ‘현대사랑’은 역효과로 작용했다. 현 회장의 아버지 현영원 회장은 1984년부터 2006년 11월 타계하기 전까지 현대상선의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고 현영원 회장은 국내 해운업계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해온 해운업계의 거목. 현 회장이 현대그룹을 맡으면서 경영 일선에선 손을 뗐지만, 그동안 현대상선에 대한 원로역할을 해오면서 노 사장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후문이다.

현대상선이 ‘현씨’ 일가의 오랜 지배를 받아왔고, 2004년 현대상선 이사회 의장에 오른 현 회장이 2006년 4월부터는 현대상선 경영을 각별히 챙겨오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현대그룹의 색깔은 지워지기 시작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적통성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노 사장은 ‘현씨’ 일가보다 ‘정씨’ 일가의 계승을 바라는 언행을 은연중에 드러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2003년 ‘시삼촌의 난’에 이어 2006년 ‘시동생의 난’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현 회장으로서는 노 사장에게 섭섭해 할 수밖에 없었고, 노 사장과 현 회장의 마찰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현대상선은 현정은 회장과 노정익 사장과의 불화설에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노 사장의 퇴임은 결과적으로 현 회장은 친정체제 강화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노 사장을 끝으로 고 정몽헌 회장 때부터 현대그룹을 이끌던 주요 사장단이 모두 그룹을 떠났고, ‘현 회장의 사람’으로 교체됐다.

취임 초기에는 주요 계열사 사장들에게 상당 부분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취임 5주년에 들어선 현 회장에게 그룹 경영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결과라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재계에선 현 회장이 신임하고 있는 이승기 그룹 기획총괄본부장과 장녀 정지이를 중심으로 그룹 재정비에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퇴임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일”

하지만 현대상선은 재계에 떠도는 이 같은 소문에 “억측”이라고 밝혔다. 현 회장과 의견충돌은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노 사장의 퇴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일이며 그 동안 퇴임 시기를 두고 그룹과 조율을 해왔다”면서 “지금이 물러나기에 적기라고 판단해 퇴임을 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관계자는 이어 “현 회장의 취임 후 서로 뜻이 맞아 지난 5년 동안 함께 일해오지 않았겠냐”고 반문하면서 “노 사장이 건강상의 문제는 없지만 특별한 활동은 현재까진 계획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임기 1년여를 남겨두고 퇴임한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
▶ 노정익 전 현대상선 사장은 누구?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은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맨’으로 현대그룹을 대표하는 간판 CEO다. 2001년 7월 현대캐피탈 대표를 끝으로 그룹을 떠났다가 2002년 9월 유동성 위기에 처한 현대상선 사장으로 복귀해 그룹의 안정화를 도왔다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노 사장이 현대상선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현대상선은 대북송금 파문에 휩싸여 관리종목으로 지정돼 주가가 1만원대에서 1천원대까지 곤두박질할 정도로 위기에 휩싸였다. 복귀한 지 1년여 만에 정몽헌 회장은 유명을 달리했고, 이에 따라 현대가에서는 경영권 다툼이 재현됐다.

노 사장은 그룹의 존폐위기 속에서도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해 취임 3년 만인 2006년 3월 1만3천3백원까지 현대상선 주가를 올렸고, 한때 조 단위를 넘어섰던 단기차입금은 모두 상환했다.

뿐만 아니다. ‘호프데이’ 등을 통해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직원들 송년회에서 색스폰을 연주하는 등 직원들 사이에서도 노 사장의 인기는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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