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사 온 후
친구들에게 안부전화를 하니
똑 같이 하는 말
아, 그것 참 좋겠네
맑은 공기 마시고
심심하면 냇가에서 고기도 잡아먹고
아들 놈 손잡고 메뚜기 잡아 구워먹고
복날은 잊지 말고 친구 불러 똥개 삶아먹고
그것 참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마시고
잡아먹고
구워먹고
삶아먹고
.........
그것 참 할 말이 없네
입 안이 쓰네
-63쪽, '그것 참 할 말이 없네' 모두
노동운동 속에서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꿈꾸었던 시인
지난 1989년, 장편연작시 '불매가'로 제1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노동자 시인 정인화. 몇 해 앞부터 울산 웅촌의 한적한 시골마을로 거처를 옮긴 그가 지난 1992년 네 번째 시집 <나팔수에게>를 펴낸 뒤 무려 14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열망>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바라는 그 열망은 바로 평화통일.
노동시를 쓰거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겠지만 정인화는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꽃 같은 청춘을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중전기에서 바쳤다. 하지만 그는 그 열악한 현장노동에서도 줄곧 시의 끄나풀을 놓지 않았다. 그가 1980년대 초, 진보적 무크지 <마산문화>와 <삶의문학> 등에 시를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인화는 처음부터 시에 노동을 걸었다. 현장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밑거름으로 삼아 시의 속살에 노동해방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정인화는 결국 공장에서 쫓겨났다. 그때부터 그는 노동운동에 목숨을 걸었다. 노동운동을 통해 시를 썼고, 노동운동을 통해 이 땅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꿈꾸었다.
노동자 시인 정인화가 시골로 들어간 까닭
"나의 하잘것없는 문학은 물신숭배의 탐욕적인 계급사회가 존재하고 그 체제의 그늘에서 고통당하는 기층 다수의 민중들과 자연생명들의 아픔이 있는 한 그들의 노래일 수밖에 없다. 그 노래는 그들의 기쁨과 환희, 슬픔과 애환 특히 저버릴 수 없는 희망을 담은 것이다." -'시인의 말' 몇 토막
그렇다. 시인 정인화가 시골로 들어간 까닭은 노동운동을 포기해서가 아니다.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앞에 시인 스스로 무릎을 꿇은 것도 아니다. 시인은 시골 텃밭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키우고,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아들을 키우면서도 마음은 늘 노동 현장에 머물러 있다.
"양파 파동이 뭔지 몰라도/ 고추 값 폭락이 뭔지 몰라도/ 뙤약볕 아래 풀을 뽑던 밭두렁에 앉아/ 썩어 문드러진 푸성귀를 보다/ 새삼 허허로운 하늘을 보니/ 눈물이 선뜻선뜻 어리더라"('썩어가는 푸성귀를 바라보니')나 "선남아, 비정규직 선남아/ 민주화가 됐다고/ 다들 돈벌이에 열심이고/ 나 또한 늦둥이 아들놈의 재롱에/ 세월 가는 줄 모르는데/ 또 무슨 놈의 감방이냐"('면회1')도 그러하다.
시인은 "오전 내내 제법/ 땀방울 송글송글 맺어가며/ 고추 심고/ 토마토"(어느 날)를 심으면서도 "환갑을 넘기신 유선생님께서/ 서울 노동자대회 어쩔 거냐고/ 참석할 거냐, 말 거냐고"라는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때 가서 보자고 통사정하는"(전화) 시인의 목소리는 자책감에 자꾸만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25도짜리 닝게루로 맞아야 정신이 번쩍 들것다"
"내 나이 오십고개를 넘어
육십을 바라보니
나 자신이 우습고 가소롭구나
땅을 일구는 농민이 되었나
망치를 든 노동자가 되었나
추운 겨울 노점에서
시린 손 호호 불며 돈을 버는
착한 가장이라도 되었나
아니면 그도 아니면
민중의 삶에 터럭만큼이라도 도움 되는
삼류시인이라도 되었나
오늘 밤도 하릴없이 술 마시고
잘난 체 혼자 떠들다가 잠이 들고
내일 아침이면 어이없는 절망감에
황당해하는 어쩔 수 없는 좀팽이가 아니냐"
-96쪽, '나이 육십을 바라보니' 몇 토막
강소주는 25도짜리 링겔(링거), 맥주는 7도짜리 링겔로 여겼던 정인화 시인. "오늘은 마음이 뒤숭숭해서 25도짜리 닝게루라도 맞아야 정신이 번쩍 들것다"라며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시인. 시와 삶이 어긋나는 시인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독설을 마구 내뱉는 시인. 언뜻 바라보면 70대 노인처럼 폭삭 늙어버린 시인.
시인의 자책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깊어만 간다. 술도 더욱 늘어만 가고 이 힘겨운 세상을 향한 쓴소리 잔소리도 자꾸만 많아진다. 아침에 술을 깨고 나면 그런 자신이 좀팽이처럼 여겨진다. 고추밭에 앉아 "뽑아도, 뽑아도/ 피터지게 사랑을 절규하는 풀을/ 사정없이, 매몰차게 갈라서게 하는"(불한당 같은 놈은 아닐까) 자신이 얄밉다.
"술이나 마시고/ 벌건 얼굴/ 감홍시 냄새, 퀴퀴한 음식 찌꺼기 냄새/ 풀풀 날리며 골아 떨어진 나에게" 아내는 "그 꼴이 뭐냐고/ 그 꼴로 무슨 시를 쓰냐고/ 비웃듯이 쏘아"본다. "죽어지면 썩을 몸뚱아리/ 어머님 말씀 팽개치고/ 요리조리 험한 길 피해/ 이제까지 살아남은"(난 그렇고 그런 놈일까) 시인은 자신이 버러지보다 못한 놈 같다.
게다가 그동안 농사를 짓느라 "철창에 갇혀 있는 동지이며/ 노동현장에서/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까맣게 까맣게 아주 새까맣게 잊고" 살아온 것만 같다. "하잘 것 없는 87년 옛 무용담이라도/ 또 씹을 수밖에 없는/ 이 비참한 세월"(안부)이 너무나 서럽다. 하지만 시인은 그렇게 자책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빠져나온 '닭알'에는 분노가 섞여 있다
"부리를 잘린 채
죽을 수도 없는 쇠창살에 갇혀
밤이 없어 잘 수조차 없는
그 지옥의 공간에서 쏟아져 나온
닭알을 봅니다
아무래도
이 닭알에는 분노가 섞여 있을 것이라는
얼마쯤은 광기도 서려 있을 것이라는
그래서 이 닭알을 먹는
우리 인간도 나날이 분노하고
조금, 조금씩 미쳐가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72쪽, '닭알을 보며' 모두
시인은 앞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다 둥지에 들어가 알을 낳는 닭을 바라보며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더듬는다. 저 닭은 세상이며, 저 닭의 몸에서 쑤욱 빠져나오는 알이 행여 자신은 아닐까. 저 '닭알'이 "부리를 잘린 채/ 죽을 수도 없는 쇠창살에 갇"힌 억울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아닐까.
시인의 눈에 비치는 '닭알'에는 분노가 섞여 있다.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고 쓰린 시인의 몽우리 진 분노와 비정규직 노동자, 감옥에 갇힌 노동자들의 분노가 '닭알'에 숨어 있다. 어쩌면 시인이 술만 마셨다 하면 기인처럼 행동하는 것도 "지옥의 공간" 같은 이 세상에 대한 광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집 염소/ 밥 때 되면 딱 알아요/ 밥 달라고 '메헤헤헤헤~ 메헤헤헤헤~" 하는 것이나 시인 스스로 "염소를 닮았는지/ 손님이 오면/ 뭐 맛있는 것 사오나/ 그 사람 얼굴보다 손부터 먼저 봐요/ 솔직히 빈손이면 섭섭해요/ 쓴 소주라도 한 병 사오지 그냥 오나 싶어/ 은근히 화가 나요"(염소이야기)도 어쩌면 그 광기가 빚어낸 것일 수도 있다.
문득 시인의 눈에 소가 보인다. 그 소는 "사람들이 우유를 생산하는 기계쯤으로/ 스테이크 재료가 되는 원료쯤으로 보는" 그 소다. 그 소가 시인에게 커다란 눈빛으로 속삭인다. "인간의 아기들이/ 인간의 젖이 아닌/ 성장호르몬이 첨가된 우리들 소의 젖을 잘 먹고/ 아무 탈없이 잘 큰다니/ 인간의 아기들이 참 안쓰럽고/ 불쌍"(참, 불쌍합니다)하다고.
"이 세상이 미친 것은 미국식 폭력문화 탓"
시인 정인화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온통 분노와 광기로 그득하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들 미쳐 있는 것만 같다. 시인은 이 모든 것이 "전쟁을 먹고 사는 미국식 폭력문화"가 한반도에서 분탕 쳤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꼬부랑글씨로 도배가 된 옷을 걸치고/ 영어 나부랭이를 지껄이"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부추김에/ 엉덩이 흔들며 노래하고/ 람보식 게임의 총과 살인에/ 혼마저 마비"된 것 같은 한반도 남쪽은 이미 "미연방의 한 주가 되어버린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시인은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다. 언젠가는 미국식 폭력문화를 물리치고 "윗녘 아랫녘 부모형제 두런두런 둘러앉은/ 평온한 저녁밥상 같은"('열망1') 평화통일이 올 것이라 믿는다.
시인 정인화의 다섯 번째 시집 <열망>은 사회적 약자가 없는 세상, 차별 없는 노동자들의 세상, 남북이 하나 되어 알콩달콩 살아가는 살가운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가 시집 속표지에 쓴 "우짜먼 사람이 그리 모지노? 기별 한 번 없이... 얼굴 잊자뿌겠다"라는 글에서도 그의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듬뿍 묻어있지 아니한가.
이 시집의 해설을 붙인 문학평론가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는 "정인화는 고통 받는 이들, 소외된 이들, 가난한 이들의 연대를 갈망한다"고 말하고 "그의 시는 이들의 삶을 조건지우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이들에 대한 사랑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