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얘기인가, 조직적 은폐인가

조 특별검사 수사팀은 지난 1월16일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27층 비자금 보관용 비밀금고의 실체 확인에는 실패했다. 특검팀 공보관인 윤정석 특검보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비밀금고의 실체는 확인된 게 없다”고 밝혔다.
비자금 보관용 비밀금고는 당초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리 의혹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얘기로, 핵심은 27층 재무팀 관재담당 임원의 방안에서 벽으로 위장된 비밀의 방이 있고, 그 안에는 로비용 현금과 장부, 유가증권 등이 보관돼 있다는 주장이었다. 삼성그룹이 계열사로부터 비자금을 모아, 이 비밀금고에 보관해 왔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의 이 같은 주장은 당연히 이번 특검수사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다. 비자금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단연 핵심 단서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비밀금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검팀은 “치밀하게 확인하고 왔지만 현재로서 확인된 것은 없다”는 말로 건지지 못한 소득(?)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비밀금고의 존재 여부를 줄곧 부인하던 삼성그룹의 주장을 액면그대로 놓고 보면 특검팀은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비밀금고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한 격이다.
하지만 여전한 의문은 남아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김 변호사가 폭로한 뒤 2달여가 지난 상황이어서 삼성측이 이미 금고를 없애버렸거나 다른 곳으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당연히 특검팀이 뒤늦은 수사에 나선만큼 비밀금고를 찾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런 맥락에서 비밀금고에 대한 삼성 최고위층 인사의 5년전 검찰 진술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논란은 더욱 가열되는 형국이다. 16일 <KBS>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전략기획실 김인주 사장이 5년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삼성 본관에 이건희 회장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 금고가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보도의 주요 내용을 보자면, 김 사장은 ‘이 회장 개인 재산을 어디에 보관했느냐’는 검찰 질문에 “주식은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증권예탁원에 보관, 위탁을 하는데, 가지고 있을 때는 ‘창고 겸 금고’에 보관한다. 현금과 예금, 부동산 관련 서류도 이곳에 보관한다”라고 진술했다.
또한 그 구조에 대해서는 “사무실 옆에 시건(잠금) 장치가 잘된 방이 있다. 구조는 보통 사무실로 보면 된다. 열쇠는 한 개인데 박재중 구조본 상무(2005년 사망)가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후임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김 사장의 이런 진술 내용은 김 변호사의 주장과도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만약 삼성측에서 조직적인 구조변경 등을 통해 비밀금고를 없애버렸다고 한다면 ‘증거인멸’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모양새다. 더구나 삼성측이 조직적인 ‘보안지침’ 명목으로 특검수사에 대비하기 위한 자료폐기 등을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어 논란은 더욱 가열된 전망이다.
이제 막 수사를 시작한 특검팀이 어떻게 비밀금고의 실체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 혐의를 밝혀내게 될지 특검팀 안팎의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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